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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Nov 15. 2020

처음 미술관

아이와 미술관에 간다는 것


20살 즈음부터 미술관을 좋아했다. 학창 시절 방학숙제나 견학 등으로 가던 미술관을 성인이 되어 꼭 가야 하는 아무런 이유 없이 그곳을 가는 것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 가족과 그런 류의 문화생활을 자주 했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엄마 아빠는 생업에 바쁘셨고 단 한 번도 함께 미술관을 가 본 적이 없다. 어쩌면 아직도 우리 엄마 아빠의 인생엔 미술관이란 곳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나는 미술관이란 곳이 나를 근사하게 만들어 줄 것 같은 판타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같다. 미술관에 가면 내가 그 공간에 있다는 그 자체로 그럴듯하고 멋진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그땐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또한 나는 언제나 감상과 사유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어쩌면 그곳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미술이나 그림 그리고 예술을 잘 알지도 논하지도 못하지만 미술관을 좋아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나의 미술 점수는 언제나 바닥이었다는 것. 손으로 하는 건 뭐든 재주가 없었고, 어릴 적 배운 피아노도 그저 그랬으며 한 번도 배워보지 않았던 그림은 더욱 엉망이어서 미술시간은 내게 고역이었다. 그런 내가 미술관은 좋아한다. 가까운 미술관의 전시일정이 바뀌는 것을 늘 꼼꼼히 체크했고 직장생활에 바빠도 주말에 간혹 미술관을 들르곤 했다. 물론 친구와 함께 일 때도 있었지만 혼자 가는 것을 더욱 좋아했다. 여행을 가도 여행지에 미술관이 있는지 알아보고 그 지역의 미술관을 들르는 것은 내게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미술관을 다니던 습관은 차츰 고착되어 어느새 미술관은 내게 취미가 되고, 습관이 되었다.


아이와 미술관은 처음이었다. 아이와 함께 미술관을 간다는 것이 사뭇 설레었다. 너와 함께하는 미술관은 어떨까. 조금도 여유롭지 못하고 허둥대기만 하다 오는 것은 아닐까. 오랜만에 가는 미술관인데 감상도 못하고 아이만 졸랑졸랑 따라다니다 마음엔 아무것도 담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면 속상할 것 같았다. 그래서 유모차에 태워 미술관을 둘러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리하면 적어도 나는 여유롭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린이 미술관도 있는 곳이기도 하고 아이의 첫 미술관을 그렇게 일방적인 방식으로 둘러보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조금은 힘들더라도 손을 잡고 함께 가자 싶었다. 하지만 가기 전까지도 너무 지겨워하면 어쩌나 드러눕거나 나를 곤란하게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미술관에 도착하니 긴장이 되었다. 주차된 차 앞에서 유모차를 내릴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 그냥 두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은 기우였다. 아이에게 미술관이 낯설기 때문인지 아름다운 것들이 아이의 시선을 사로잡아버렸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아이는 내게 충분한 시간을 선물했다. 아이의 눈은 반짝거렸고, 그 시선은 내내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들에 머물렀다. 아이가 미술관에서 대단한 것을 배우리라고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대단한 것을 느낄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한다. 미술관이라는 곳의 정서를 느끼고 그 분위기를 알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 지켜야 할 예절을 아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만질 수 없는 것을 향해 뻗어가는 손끝과 그 궁금함을 담은 표정과 놀라움이 담긴 눈동자에서 아이는 실로 많은 것들을 담고 또 수많은 것들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의 눈빛이 아이의 시선이 나를 설레게 했다. 그렇게 눈을 반짝이며 공간에 매료된 아이의 시선과 뒷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두었다. 매일 매 순간을 모든 것으로부터 배우고 느끼고 성장하는 아이가 이 곳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미술관을 사랑하면서도 내가 가진 편견이 무엇이었는지를 아이를 통해 알게 된다. 편견일 뿐이었다는 것을.


아이도 나도 미술관에서 마음을 그리고 기운을 채우는 하루가 되었고, 우리는 앞으로도 쭉 미술관에 함께 가도 좋을 사이가 되었다. 기뻤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또 하나 생겼다는 것과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며 어쩌면 아이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어서 마음이 부풀어올랐다.


미술관의 공기. 그 여유롭고 느리고 고요한 그 정서를 좋아한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것이 가득한 그곳의 감수성을 사랑한다. 그곳에 있으면 안도하게 되고 헝클어진 마음도 느슨하게 된다. 그곳은 나를 회복하게 하는 공간이고 머무르게 하는 공간이다.

이제야 작고 고유한 자신만의 우주를 채우는 아이에게 미술관은 어떤 곳이 될까. 아이는 미술관의 어떤 면모를 사랑하게 될까. 서로 사랑하게 되는 이유가 달라도 상관없다. 우리가 어쩌면 미술관 데이트를 가장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중요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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