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여름 Dec 29. 2020

로맨스가 필요해

결혼생활도 결국은 로맨스.

남편과 다투고 나면 로맨스 영화를 보는 습관이 있다. 이상하게도 남편과 다툰 후에는 로맨스 영화가 그리도 보고 싶어 진다. 깊은 밤 모두가 잠이든 적막한 거실에 고요히 앉아 캔맥주를 한 손에 들고서 로맨스 영화를 튼다. 사랑하는 이와 다툰 초라한 마음, 허 한마음, 공허한 마음을 달달한 로맨스 영화로 달래 보려는 무의식적인 행위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사랑이 부족해서 일 테다. 내 몸에 내 마음에 사랑의 입자가 부족해서 정말 그래서 조금이라도 채워 넣어 보려는 심산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두 다리를 가슴에 그러안고 한없이 웅크린 채 사랑이야기로 가득 채워진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언제나 그렇듯 서글프다. 사랑해서 서글프고 우리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서글프고 내가 사랑이 고프다는 것이 서글프고 오늘도 등을 돌린 채 사랑하는 이를 미워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품은 채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고 이 침묵이 언제 끝날 지 모른다는 사실이 서글프고 우리는 늘 이런 식이라는 것이 서글프고 그럼에도 아직 남편을 사랑하는 것 같아 서글프고 그저 그가 나를 꼭 안아주는 것 만으로 내 마음이 다 괜찮아질 것 같아 서글프고 그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 서글프다.


나에게 남편은 언제나 '사랑의 자리'에 있다. 결혼 6년째, 딸아이 하나를 키우면서도 여전히 남편에게 설레었다. 그다지 다정하지도 살갑지도 않은 사람이지만 이 사람에게만은 언제나 약했다. 미워죽겠다가도 말을 걸어오면 나는 어느새  웃고 있었고, 잔뜩 날이서 싸웠지만 그가 나를 안아주기만 해도 어느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는 비 맞은 강아지 마냥 불쌍한 시늉을 하며 그에게 꼭 안겨 있곤 했다. 단 한 번도 손을 내미는 그를 밀어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렇게 뜨거운 마음을 내어 준 만큼 그 사람에게만 은 유독 예민하기도 했다. 작은 일에도 더 많이 섭섭했고 더 많이 무너졌으며 더욱 화를 내고 몰아붙였다. 내게 어떻게 이렇게 하느냐고, 내게 어떻게 이런 마음을 주느냐고, 나를 어떻게 이토록 내버려 두느냐고 그를 다그치고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곤 했다. 그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대단하고 대단한 것인 양 치부하며 그에게 내 마음에 대한 보상을 바라고 바란다.


우리의 마음에 간극이 생긴 것 같은 생각이 들면 나는 그저 우울했고, 그 우울해진 마음에는 로맨스 한 방울이 간절했다. 어떤 날은 로맨스 영화 한 편으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기도 했지만 또 어떤 때에는 장편의 로맨스 드라마를 선택해야 하는 때도 있다. 한편당 천원이 넘는 드라마를 아무렇지 않게 꾹꾹 눌러 결제 결제 결제.


그렇게 미동도 없이 앉아 다른 이의 사랑타령을 본다. 사랑하는 이들이 주고받는 말들에 마음이 뜨거워지기도 무너지기도 하면서 그럼에도 결국 사랑을 애틋해하며 사랑을 간절해하며 그렇게 내 안에 사랑을 채웠다. 그러면 그러고 나면 늘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영화 한 편, 드라마 한 편에 우리의 사랑했던 그 시절이 떠올라서 일까. 아니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결말이 우리와 닮아 있을 거라는 확신 때문일까. 도무지 알 수 없지만 효과는 좋았다.


그렇듯 내겐 언제나 사랑이 문제다. 연애시절뿐 아니라 결혼을 해도 언제나 사랑이 문제다. 그를 사랑해서 문제고 그래서 아프고 그래서 탈이 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내 인생에 사랑이 문제였으면 한다.

결혼을 하여도 여전히 더 사랑할 것인가 그만 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것은 언제나 나의 선택의 영역이지 의무의 영역은 될 수 없을 것이며 언제까지고 사랑은 마음의 문제여야만 한다. 실로 그래야만 한다고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한다.

언제나 나는 사랑을 다퉜다. 늘 사랑 때문에 싸우고, 사랑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 단 한 사람과 마음을 맞추며 사는 일이 이다지도 어려운 일일지 미처 몰랐던 것은 나는 누구에게나 그렇진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잘 맞추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좋으면 상냥한 쪽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남편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이해하기 어렵지만 쉽지 않았다. 그에게 가장 좋은 사람이고 싶으면서도 가장 모질었다. 하지만 마음만은 한결같이 사랑받고 싶었고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언제라도 부끄러운 것이 될 수 없다. 열여덞이나 스물여덞이나 서른여덞이나 사랑받고 싶은 마음,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스럽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모두 오롯이 같은 색의 같은 모양의 것이다.


나의 삶을 돌아볼 때 온전히 오롯이 사랑의 빛깔로 물들기를 그렇게 나의 삶을 지탱하고 흔드는 모든 것은 언제나 사랑이었으면 좋겠다고 사랑하는 이와의 다툼의 시간 한가운데에서 나는 생각했다.


실로, 부지런히 사랑해야지 죽는 날까지 내 삶을 사랑으로 채워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에 가시가 돋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