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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Mar 26. 2021

그리웠던 혼밥을 다시 합니다

소란함이 주는 행복의 빛깔.


언제인가부터 혼자 먹는 밥상을 그리워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엄마가 되고 아이가 자라면서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되고부터일 것이다. '조용히 혼자 편하게 밥 먹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고 "급하게 먹어서 체할 것 같다"는 말을 남편에게 종종 하곤 했다. 아이와 밥을 함께 먹으면 아이를 챙기느라 내 밥은 다 식어빠지기 일쑤였고 아이의 밥을 다 먹이고 내 밥을 차려먹으면 아이는 내 옆에 붙어 서서 자기도 엄마 반찬을 달라며 보챘다. 안된다고 몇 번 거절하면 우는 소리를 들으며 밥을 먹어야 했으며 그렇게 먹는 밥이 무에 그리 맛있겠는가. 입맛은 나날이 잃어갔고 그런 전쟁 같은 상황을 덜 만들기 위해 나는 자주 끼니를 걸렀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직 적응을 온전히 하지 못해서 매일 아침 울며 "싫어요"를 외치는 아이를 달래어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그렇게 소란하고 분주한 아침시간을 보내고 나면 내게 선물 같은 '고요'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리도 바랐던 '혼밥'의 시간도 주어진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며칠간은 밥을 챙겨 먹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아이가 없는데도 여유가 없었고 밀린 빨래며 청소며 집 정리를 하기에 바빴다. 미뤄두었던 옷장 정리나 냉장고 청소 같은 집안일을 몰아서 하고 약속을 정해 사람도 만나러 다녔다. 그러고 나면 또 집에 있는 날은 여전히 바쁘기만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지 얼추 3주가 되었다. 오늘 아이를 보내고 나를 위한 아침 겸 점심상을 차렸다. 전날 먹던 김치찌개와 밑반찬으로 해둔 일미 무침을 꺼내 간단한 상차림을 했다. 밥을 먹으려 식탁에 앉았는데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냉장고 소리가 이리도 컸었는지, 낮에 냉장고 소리가 들리다니. 소음 없는 고요함 속에서 밥을 먹다가 음악을 틀었다. 그러다 티브이를 튼다. 채널을 검색하다 매우 소란한 예능프로에 멈췄다. 아이의 빈자리를 이렇게 느끼고야 만다. 재잘거리는 그 소리가 내게 매달리고 비비적대는 그 살결이 없음을. 아이의 온기가 아이의 소란이 빠진 자리의 고요. 따뜻하지 않은 서늘하고 쓸쓸한고요. 안도하기보단 불안한 고요다.


 고요함이 주는 행복이 분명 있다. 고요한 가운데 나를 바로 세우고 고요한 가운데 지친 일상을 회복한다. 고요함은 우리를 머물고 여물고 일깨운다. 나는 그런 고요을 사랑했다. 생각하는 것 사유하는 것 감상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혼자의 시간을 고요한 시간을 완벽히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소란함이 주는 행복이 분명 있다. 소란함은 그 복작복작함은 따스하고 정겨우며 끝없이 관계하고 끊임없이 이어진다. 나누고 받고 잃고 얻으며 봄을 맞은 식물처럼 힘차고 분주하게 자라난다. 머물지 않으며 흐른다. 그 소란함이 달뜬 분주함이 익숙해져 고요만이 행복인 줄 착각하는 시간들을 지나고 있다. 그저 혼자가 주는 편안함과 느슨함을 동경하느라 바빴다. 그러나 소란함이 가진 행복의 색이 이제는 내겐 더 익숙한 기쁨으로 자리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아이와 재잘거리며 아이를 챙기며 분주히 먹던 그 식사의 감사를 하마터면 놓칠뻔했다. 하루한끼정도는 고요하게 식사할 시간이 다시 내게 주어짐을 감사하게 될 줄 알았는데. 아이의 부재가 내게 그저 쉼이 될 줄 알았는데 그저 해방감에 기쁠 줄 알았는데. 실은 네가 있음이 내 삶에 얼마나 큰 축복이며 네가 내게 얼마나 큰 온기인지를 깨달을 뿐이었다.


오늘도 울고 가는 걸 보니 너도 아직은 내가 더 좋은가보다. 다행이다. 나도 아직은 혼자 있는 시간보다 네가 좋다. 오늘은 조금 일찍 너를 데리러 나서본다. 네가 '사랑해마지않는 산책'을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오래 하고 집으로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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