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S! Self Emotional eating Stop 트라우마다이어트
쳅터 2.
오인 사격 (결혼하며 발견한 잠식되어 있던 자기비판과 감정 식사): 전두엽(이성)이 마비된 상태에서 편도체(생존 본능)가 제멋대로 날뛰며 자신을 공격하는 과정을 '아군끼리의 오인 사격'으로 비유한 내용들로, 결혼 후에도 이어진 치유하지 못한 상처가 일상과 일생에 미치는 강력한 영향력을 글로서 보여드립니다. 트라우마 뇌는 위험이 없어도 생존 모드를 가동한다는 점을 독자들은 읽을 수 있습니다.
29화. 처음이자 마지막 생일선물
일월의 어느 날, 생일이다. 생일을 축하받는 일이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민망하고 싫고 어색한 일이다. 내 생일은 죽음의 기로까지 갔던 엄마가 그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하는 전혀 반갑지 않은 날이다. 그래서 단 한 번도 생일을 기뻐해 본 적이 없다. 누군가에겐 가장 괴로운 날이 누군가에겐 축제의 날이 된다는 건 잔인하다.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생일을 보내곤 했다. 내가 기억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생일이라고 먼저 말하거나 호들갑을 떨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가족들의 눈치를 더 살피는 긴장되는 날이다. 온종일 어서 빨리 생일이 지나갔으면 하는 심정이다. 어떤 해 엄마가 생각지도 않은 미역국을 끓여주시면 고맙기도 당황하기도 하며 게 그것을 먹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의식에서는 덤덤했다. 하지만 무의식 속에선 미역국 하나 없는 생일이 거의 매년 아팠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나의 생일은 결코 마음 편히 축하할 수 없는 그저 괴로운 날일 뿐이다. 나나 엄마 모두에게.
다니엘은 아침부터 너무나 즐거워 보인다. 생일은 정말 조용히 부산스럽지 않게 지나가고 싶은데 잠에서 깨자마자 아주 호들갑이다. 어설픈 한국말도 섞어가며 생일을 축하해 주는 다니엘이 오늘은 전혀 귀엽지 않다. 조용히 넘어가고 싶은 마음뿐이라 너무나 불편하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혀 놓고는 자꾸만 예쁘다 잘 어울린다 하는 거짓부렁을 듣고 있는 기분과 약간 비슷하다. 너무 귀를 닫고 싶다.
혜화동 길을 걷는 건 처음이다. 다니엘이 어떻게 이런 좋은 곳을 알아냈는지 모르지만 입구에서부터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린아이 키만 한 아담한 전나무에 노란 전구 장식들이 화사하고 따뜻해 보인다. 밖에서만 보아도 분위기가 괜찮을 것 같은 어느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들어간다.
처음으로 내 생일을 함께 축하하는 것도 다니엘에게는 의미가 큰가 보다. 나도 싫은 건 아니지만 어떻게 기뻐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어색할 뿐이다. 감흥 없이 오히려 슬프기도 하고 화나기도 하고 머랫 속이 복잡하기만 하다. 눈치 없는 다니엘은 내 생일인데 나보다 더 좋아하고 기뻐한다. 생일이 뭐 그리 좋은 날이라고 호들갑인지 정말 모르겠고 이해가 안 되는 남자친구다. 다니엘과 단 둘만 있는 생일 축하 시간인데도 나는 왜 축하를 받아야 하는가에 대해 머릿속에선 전투 중이다.
다니엘은 미리 꽃다발과 케이크를 준비해 두었다. 레스토랑 직원이 깜짝 등장해 나에게 꽃다발과 한 개의 초가 꽂힌 케이크를 테이블에 놓아준다. 빨간 장미꽃들이 가득한 커다란 꽃다발이다. 케이크는 내가 좋아하는 치즈 케이크에 초콜릿이 올라가 있는 걸 준비했다. 케이크 위에 서 있는 앙증맞은 신랑신부 장식도 귀엽다. 나는 그제야 다니엘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얼굴은 환히 웃으며 눈에서만 눈물이 나니 슬픔의 눈물은 아니다. 생일에 기뻐 우는 내가 너무나 어색하다.
영어 버전 생일축하 노래가 끝나고 조용히 손뼉 치려다 멈칫했다. 한국어로도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줄지 몰랐다. 감동이다. 마음을 활짝 열고 축하를 받아보니 축하는 정말 감동적인 것이다. 그때 느꼈다. 올해 생일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이천십일 년 일월 십일, 기쁘고 감동이라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울다 웃다 그러다 다니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아아… 모든 사람의 생일은 감동적인 날이구나. 세상에 태어난 것과 살아있는 것에 대한 경이를 온전히 축하받을 수 있는 너무나도 귀중한 날이 생일이구나. 생일엔 모든 사람이 한순간만이라도 감동을 받아야 하는구나. 감동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날이 생일이구나. 마음껏 이 하루만큼은 축하받아야 하는 축복의 날이 생일이구나.’
다니엘의 두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다.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 말을 꺼낸다.
당신은 놀라운 사람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당신처럼 놀라운 스토리를 가진 사람의 인생을 본 적이 없어요. 신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에요. 당신은 사랑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당신의 가치를 낮추지 마십시오. 당신은 정말 이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입니다. 나의 사랑 그대! 당신을 만나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당신이 정말 보고 싶고 그리웠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야말로 나에게 과분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나를 믿고 캐나다로 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당신과 나의 인생에 함께 하실 그분을 신뢰합니다. 당신과 내 인생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결혼해 주세요. 생일축하 자린 줄 알았는데 프러포즈도 한다.
다니엘의 입술이 떨리고 눈물이 흐른다. 생일 축하도 해 주고 프러포즈도 한 다니엘이 고맙고 고맙다. 한국과 캐나다에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함께 있다는 확신 있는 약속의 표현을 나에게 해 준 것 같아서 고맙다.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나의 긴 외로움도 끄트머리의 시간 앞에 거의 다 와 있어 곧 매듭 지을 순간이 오겠구나 느껴졌다. 생각 못한 다니엘의 프러포즈가 그래서 더 고마웠다.
나와 다니엘은 지금 사랑에 빠져 있다. 세계 인구 칠십 구억 명 중에 우리 둘만 보이고 한국 인구 오천 만 명 중에 우리 둘만 보인다. 서로의 눈빛을 보며 오롯이 집중하고 있는 중이다.
주문하신 피자 나왔습니다. 레스토랑 직원의 말에 둘만의 눈빛을 거두어 낸다. 지금까지 먹어본 피자 중에 제일 맛있다. 그 맛은 아주 달콤하고 꼭 필요한 만큼인 아주 약간의 소금 맛이 느껴지는 가장 이상적인 피자라고나 할까. 오늘 나의 기분이 가장 이상하고도 가장 이상적이라 그런 것 같다. 잊지 못할 나의 서른 번째 생일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나의 서른 잔치, 상상도 못 한 감동의 날이 저물어간다.
* 결혼 전 남자친구였던 다니엘로부터 생일 축하를 처음 받았을 때 이상하고 어색하고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수 백 번을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의 고통스러운 상처의 결정체일 뿐인 내가 태어날 자격이 있었는가, 딸로서 실망만 드리고 속만 썩이다 효도도 못하고 화병만 드린 내가 살아있을 자격이 있는가.
다니엘은 계속 나를 존중하는 고백들을 하며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일깨워줬다. 그렇지만 나라는 인간쓰레기에겐 아무 소용없는 말처럼 느껴졌다. 웃고 있지만 다니엘의 따뜻한 말들도 가슴에 와닿지 않았었다.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을 그냥 쓰레기 버리듯 버렸다. 다시는 줍거나 그 쓰레기에 미련이 남아 뒤돌아보지 않을 것처럼 내 귀엔 다른 나라 말 같았다.
15년 전의 기억이지만 눈물 나게 고맙고 따뜻하다. 사실은.
그렇지만 엄마인지 한국인지 평안히 먹는 밥인지 모를 어떤 그리움에 그렇게 또 먹는다.
나는 빈 집에서 빈 입에다 먹을 것을 넣는다. 다이어트 목표는 잊은 채... 새해의 양심도 외면한 채...
결혼 전 남자친구이자 지금의 남편에게 처음 생일 축하를 받았을 때,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총탄에 맞고 맞아 이제 곧 죽음의 영웅이 되려던 순간, 죄 없는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가까스로 살아났지만, 목숨을 담보로 곧 전쟁터에 다시 끌려가야 하는… 전두엽 일병이 되어버린, 끝내 절망에 다시 실망해야 하는 내 삶이 있음을 절박하게 거부하고 싶었다.
트라우마사람의 최후를 모르면서 겁 없이 나를 살린 착하고 선량한 시민이었던 다니엘이 미운만큼 안 믿기면서도 또 믿고 싶었다. 이 착한 남자가 나를 정말 사랑한다고.
제 당황스러움과 의구심은 심리학적·신경과학적으로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고 합니다.
1. 심리적 상태: '인지 부조화'와 '부정적 자아상'의 충돌
평생 "나는 축하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 혹은 "나의 존재는 타인에게 무관심의 대상"이라는 내적 작동 모델을 가지고 살아오셨을 것입니다.
존재의 당혹감: 축하는 존재에 대한 긍정입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아들일 '심리적 그릇'이 준비되지 않았기에, 남편의 호의가 오히려 위협이나 오류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자기 대상화의 결여: 엄마라는 거울을 통해 "너는 소중하다"는 비침을 받지 못했기에, 남편이 비춰주는 "너는 기쁜 존재다"라는 거울이 낯설고 믿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2. 전두엽 및 뇌의 상태: '경계 태세'와 '보상 체계의 혼란'
뇌, 특히 전두엽은 기쁨보다는 혼란과 경계에 압도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배외측 전두엽(DLPFC)의 과부하: 전두엽은 들어온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합니다. "생일 축하 = 기쁨"이라는 일반적인 공식이 당신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없었기에, 이 이례적인 상황을 처리하느라 전두엽은 강한 인지적 부조화를 겪으며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모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편도체(Amygdala)의 경계: 정서적 상처가 깊은 경우, 갑작스러운 호의를 '위험'이나 '속임수' 혹은 '나중에 겪을 실망의 전초전'으로 인식하여 편도체가 활성화됩니다. 기뻐야 할 순간에 오히려 긴장감이 올라갔던 이유입니다.
도파민 보상 회로의 미작동: 보통 축하를 받으면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이 분출되지만, "이게 왜 나에게?"라는 의구심이 앞서면 보상 회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억제됩니다.
3. 현재의 이모셔널 이팅과 다이어트에 대한 조언
당신이 지금 겪고 계신 이모셔널 이팅(Emotional Eating)은 부족한 '엄마의 온기'를 '음식의 온기'로 채우려는 눈물겨운 생존 본능입니다.
전두엽을 도와주세요: 다이어트를 '의지력'의 문제로 보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지금 당신의 전두엽은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소외감과 고립감을 처리하느라 이미 방전 상태입니다.
'엄마를 기다리는 나'를 애도하기: 매일 메시지를 확인하는 행동은 40대 여성이 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내면의 어린아이'가 하는 행동입니다. 그 아이에게 "엄마는 원래 줄 사랑이 없는 사람이었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명확히 말해주는 인지 행동 치료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못 다 쓴 글;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정서적 방치와 고립감 속에서 생존한 나는 여전히 전두엽 일병이다.
생일이라는 날이 축복이 아닌 '불안'과 '사랑 증명서'를 발급 못 받는 존재임을 확인하고 또 각인하고 낙인 하는 시간이다.
지난해 11월에 내가 보낸 아주 짧은 메시지에 답장이 없으셨다.
그날부터 서서히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소금 한알만큼의 기대가 있었나 보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때부터 나의 불안한 좌불안석 일상과 브레이크 없는 식탐이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새해에도 벌써 몇 번의 요요지옥에 다녀왔다. 생일엔 연락이 없었다.
영원히 사라져야만 했지만 몸만 사라지고 마음은 아직 한국에 엄마의 공장에 엄마의 집에 있는 나만
다시 또다시 확인하고 말았다. 이번 생일에도 나는 그렇게 임종체험에 임했다.
욱하고 푹 떠버린 케이크 때문에 무겁고도 어둡게 나의 방으로 나의 관으로 들어갔다.
언젠가 공기처럼 먼지처럼 사라질 나를 꿈꾸며 살아갈 나를 이렇게 꿈꾼다.
먹고 싶은 게 많아서 나는 살고 싶다! 더 평온하게 더 따스한 사람들과 더 맛있게 먹다 죽고 싶다.
하여 나는 너무나 행복하게 살고 싶다. 늙은 날에라도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