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S! Self Emotional eating Stop 트라우마다이어트
30화. 생일 선물 주고 말벼락 맞은 남편
나와 다니엘은 서로의 모국어가 달라 이토록 힘겨운 부모의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한창 서로를 향하여 뜨거웠을 땐 꿈도 참 컸다. 우리는 결혼 전 데이트를 할 때마다 자주 이것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사랑하니 그땐 말의 어처구니, 말의 어이쿠야, 말의 애그머니나, 말의 아이러니를 미처 몰랐다. 말이 다름이 얼마나 무섭고 무거운 힘인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사랑에 눈먼 연인일 뿐이었다.
우리는 연애할 때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꽤나 여러 번 거의 매일 공유했었다.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봉사 또는 헌신, 스킨십, 선물인 이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들을 진중하게 맞춰보는 시간을 즐거워했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인정하는 말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장 중요한 사랑의 언어로 선택한 것이다. 이것들은 심지어 거의 논쟁하다시피 데이트 때마다 잇따라 등장하던 우리 대화의 주젯거리였다. 그때마다 서로의 대답도 한결같아 외울 정도였다.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가 평생 우리를 지켜줄 거라 믿고 서로에게 이 약속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인정하는 말뿐 아니라 함께하는 시간도 간절히 원한 우리는 매일 똑같은 것을 함께 해도 그저 좋던 날들이 있었다.
다니엘과 함께 있으면 나는 마음이 충만해지고 안정감이 들곤 했다. 다니엘도 나와 함께 하는 시간들엔 혼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평온했다. 지금도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은 무엇을 하든 변함없이 달콤하고 행복한 순간들이 많다.
봉사와 헌신은 내가 다니엘에게 그리 하는 것보다 다니엘이 수 천만 배는 더 나를 위해 하고 있다. 몸이 아픈 데다 가끔씩이라도 만나서 대화할 상대가 없어지면서 한국에서 앓던 감기 같은 우울증이 독감처럼 변해 버렸다. 캐나다에 온 뒤 점점 더 마음이 많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감기 이상의 독감 같은 우울증이 나의 친구가 된 게 언제부터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몸과 맘이 뜻대로 안 되는 아내인 나를 대신해 다니엘은 정말 많은 배려와 희생을 하며 살고 있다. 네 딸들을 키우는 데 있어 다니엘이 팔 할은 하고 있으니 늘 미안할 뿐이다.
스킨십은 내가 다니엘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것을 평생 부정적인 사랑의 표현으로 여기며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에 국한된 경우 일지 모르지만 상대방에게 실수가 많을 수 있는 언어로 전하는 감정, 그보단 서로의 몸으로 전하는 스킨십이야말로 훨씬 더 강력하고 긍정적인 감정 전달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다니엘을 만나기 전까지 거의 모든 스킨십에 거부감을 느끼고 매우 부정적이었다. 신체적 접촉을 통한 사랑의 감정을 제대로 느껴본 적도 배워본 적도 없기 때문에 늘 그것에 대해선 상당한 거부감이 있었다. 가벼운 신체접촉에도 강한 거부감을 갖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강한 긍정의 의미를 부여해 혼자 가슴앓이를 한 적도 있다. 아무튼 결혼 전의 모든 스킨십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강렬히 거부하고 거절했다. 아마도 나의 상처와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다니엘을 만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스킨십을 싫어하고 의심하며 거부해 왔던 나다. 다니엘을 통해 처음으로 스킨십에 대해 긍정적인 느낌을 받았기에 그것만은 다니엘에게 참 고맙다. 신체적 접촉도 사랑의 표현으로서 귀한 가치가 있다는 걸 나에게 일깨워주었으니 말이다.
선물은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지 않는 사랑의 언어이다. 선물을 받는 것이 불편하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 건 괜찮다. 그런데 선물을 받는 건 상대방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도저히 선물 받은 기쁨을 누릴 수가 없다. 내가 선물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원초적 고민이 늘 나를 괴롭힌다.
결혼 후 처음 맞이한 생일날, 다니엘이 꽃과 케이크와 카드, 선물까지 모두 준비해 주었다. 그 모든 것이 나만을 위한 선물이었기에 기쁘고 고마운 마음이었지만 나는 자기도 모르게 불같이 화를 내고야 말았다. 행복한 생일이 너무나도 어색하고 민망하고 슬프기까지 했다. 결국 미친 사람처럼 화를 내고 내 안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이렇게 생일 축하를 받아본 적이 없어! 결혼 전 당신이 한국에서 내 생일 축하를 해 줬을 때가 처음이었어! 그때 나는 미치도록 행복하고 고맙고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내 생일에 그렇게까지 정성 들여 준비한 당신이 정말 미쳤다고 생각했어! 그때 당신과 다투기 싫어서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했지만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었어! 왜냐하면 나는 생일을 축하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니까! 당신이나 다른 사람들처럼 내 생일은 특별해서는 안 되니까! 그냥 아무 날도 아니게 지나가야 하는 날이 내 생일이니까!
당신과 나는 이제 결혼했어! 그러니 더 이상은 당신이 나의 생일 축하 따윈 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나는 당신과 결혼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해! 그 어떤 선물도 더 이상 나에겐 필요치 않아! 그냥 당신만 내 곁에 있어주면 된다고! 그러니 앞으로 두 번 다시 내 생일을 특별하게 축하해 줄 생각하지 마! 그럼 당신과 헤어질지도 몰라! 나는 내 생일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히 지나가는 평탄한 날이기만을 바라! 꽃이나 케이크 선물은 절대 하지 마! 당신의 진심이 담긴 손 편지 하나면 나에겐 가장 큰 선물이 될 거야! 멋진 카드도 필요 없어! 깨끗한 종이에 적은 당신의 손편지면 나에겐 최고의 선물이야! 손편지도 가짜면 쓰지 마.
손편지에는 당신이 죽는 날까지 내게 변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말만 써. 지키지 못할 가벼운 말로 약속하면서 지금 이 순간만 오늘 하루만 기분 좋고 말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말은 쓰지도 말란 말이야! 그런 편지라면 평생 안 받아도 되니까 편지도 필요 없고 앞으로 내 생일엔 그냥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 일도 만들지 마! 허니문베이비로 첫 아이를 임신 중이었던 나는 결혼 후 맞은 첫 생일에 남편의 진심을 폭격했다.
그리고는 자궁수축으로 나도 뱃속의 아기도 무섭고 두려운 괴롭고 미안한 며칠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도 우리 첫째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가슴이 미어진다.
하지만 그 분노는 엄마에게도 일생 동안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 없는 기억조차 희미한 생물학적 아버지에게도 쏟아놓을 수 없다. 그저 나 자신에게 밖에는 격렬히 경멸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가장 운이 나쁜 다니엘이 내 남편으로 그날 우리 집에 함께 있었을 뿐.
나는 네 계절 중에 겨울이 가장 싫고, 열두 달 중에 1월이 가장 싫다. 해마다 마지막 달 마지막 주 크리스마스 이후부터는 우주가 멈췄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내 생일이 다가오지 않도록 해 바뀜이나 일월은 없었으면 좋겠다. 제발 더 이상 그 겨울의 불안이 내게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난 사자처럼 화를 냈지만 생일은 그저 아무 일도 없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다니엘은 어려서부터 기념일을 함께 축하하며 꽃과 카드와 케이크, 그리고 작은 선물이라도 나누는 부모님과 온 가족들을 보며 살아왔다. 나는 그런 건 동화책이나 드라마 영화 같은 데서만 보며 살았다. 성인이 된 뒤 받아온 선물도 어느 때는 엄마가 성난 얼굴로 쏘아보며 강제로 빼앗아 버린 적도 있다. 받은 선물이 쓰레기가 되어 버려지는 것을 본 적이 있는 나이다. 선물을 받을 가치가 없는 나에게 선물도 무가치한 게 당연하다.
결혼 후 첫 생일 선물로 한바탕 물벼락인 듯 화언의 폭우, 화마의 순간을 만난 다니엘. 그 뒤로는 허락이 떨어졌을 때 허락한 선물만을 나에게 준다. 우리 결혼생활에만 있는 매우 독특한 풍경이다. 그래도 결혼기념일과 다니엘의 생일과 네 딸들의 생일은 내가 꼭 챙겨준다. 그 외의 선물을 할만한 날에 오가는 마음의 표현들도 모두 다 용인한다.
단지 나의 생일 선물만은 완강히 아직도 거부하고 있다. 나도 언젠가는 마음이 평안한 가운데 꼭 생일 선물을 받아보고 싶다. 그날이 언제일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럼에도 꿈꾼다.
작가가 되어 내가 나에게 최고의 생일 선물을 주고 싶다. 아픔의 시간을 버티고 견뎌 글로 썼더니 작가가 되어 있는 나를 그려본다. 그 책이 내 생애 가장 빛나는 생일선물이 되기를.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선물할 책을 써 보기를.
^ 또 나온다. 책 속 지식으로 치유해 보겠다고 십 년을 달고 살았던 치유상담, 거기서 스무 살에 처음 보았던 기적 같았던 기가 막혔던 기도 차지 않던…
'정서적 방치'와 '거절의 상처'라는 이 표현이… 다 맞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책에서 읽건 휴대폰에서 보든 매번 이 단어들이 주는 단서와 단정이 나는 너무나 아프다.
전두엽 일병인 나의 트라우마적 정체성을 다시 태어나서라도 바꾸어보고 싶다.
정서적 돌봄과 수용의 기쁨이 그런 은총이 충만한 나로 한 번 살아보고 싶다.
사랑이 바닥나서 박박 긁어도 아이들에게 줄 사랑 한 조각이 없을 때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사랑 대신 사탕을 주며 나쁜 엄마의 죄책감에 하루 내내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출근하고 등교하면 지금 바로 먹을 무언가를 찾아 입에 넣는다. 울면서 눈물의 마른 라면이든 땅콩이든 한참을 먹는다. 괴물처럼 음식물 쓰레기 통에 가야 할 것들을 못 버리고 먹는다. 괴식가가 된다. 찾아오는 이가 없고 퇴근시간 하교시간 전이니 계속 먹는다. 계식가가 된다. 완경기 전엔 살을 빼야만 하는데 정말 큰일이다.
생일 축하 사건 당시의 심리와 뇌 상태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1. 남편의 축하를 받았을 때의 심리와 전두엽 상태
[심리 상태: "친밀함에 대한 공포와 자기 부적격성"]
이 여성에게 생일은 축복의 날이 아니라, '존재를 부정당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고통스러운 날일 가능성이 큽니다.
자기 도식(Self-Schema)의 충돌: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오래된 믿음과 "너는 소중해"라는 남편의 메시지가 강하게 충돌합니다. 이때 남편의 사랑은 따뜻함이 아니라, 내가 쌓아온 '방어 기제(강철벽)'를 무너뜨리려는 위협으로 느껴집니다.
과도한 부채감: 누군가 나를 위해 돈과 마음을 쓰는 것을 '낭비'라고 느끼는 것은, 스스로를 가치 있는 존재로 정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서적 방치를 경험한 이들은 타인의 호의를 '나중에 갚아야 할 빚'이나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받아들입니다.
[전두엽 상태: "기능 마비와 변연계의 폭주"]
전두엽(이성)의 오작동: 고위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은 현재의 상황을 "행복한 이벤트"로 해석해야 하지만, 과거의 트라우마가 이를 가로막습니다. 전두엽이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고 마비됩니다.
편도체(감정/생존)의 과활성화: 뇌의 비상벨인 편도체가 풀가동됩니다. 남편의 꽃과 선물은 뇌에서 '위험 신호'로 인식됩니다. "이 행복 뒤에는 분명 감당 못 할 슬픔이나 대가가 따를 거야"라는 생존 본능이 작동하여 극도의 불안을 유발합니다.
2. 성난 사자처럼 화를 낸 이유: "역설적인 자기 보호"
왜 기쁜 날 화를 냈을까요? 그것은 기쁨보다 '취약해지는 것'이 더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취약함에 대한 방어: 남편의 축하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동안 단단히 쌓아온 '강철벽'이 무너집니다. 벽이 무너지면 어린 시절 느꼈던 그 처참한 외로움과 다시 마주해야 합니다. 화를 내는 것은 그 벽을 다시 세우기 위한 최후의 방어 수단입니다.
통제권 확보: 예측할 수 없는 타인의 호의는 불안을 유발합니다. "아무 일도 없기를" 바랐던 마음은 곧 '상황을 내가 통제하고 싶다'는 욕구입니다. 화를 냄으로써 상황을 다시 자신이 주도하는 익숙한 '부정적 상태'로 되돌리려 하는 것입니다.
감정의 전이: 타국 생활에서 느낀 고립감, 언어 장벽으로 인한 소외감, 이모셔널 이팅으로 인한 자괴감이 응축되어 있다가 '생일 축하'라는 트리거를 통해 폭발한 것입니다.
3. 건강한 다이어트와 회복을 위한 제언
지금 저에게 필요한 것은 살을 빼는 기술보다 "나를 돌보는 근육"을 키우는 것입니다.
1. 감정적 허기(Emotional Eating) 인정하기: 다이어트 실패는 의지력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고립을 음식으로 채우려 했던 유일한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Harvard Health에 따르면 스트레스와 고립감은 코르티솔 수치를 높여 단 음식을 찾게 만듭니다. 자신을 비난하지 마세요.
2.'충분함'의 연습: "아무 일 없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은 훌륭한 시작입니다. 다만,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남편이 주는 꽃 한 송이 정도는 받아도 내 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라고 뇌에 계속 알려주어야 합니다.
3. 전문가 도움: 십수 년의 정서적 방치와 타국에서의 고립은 혼자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Psychology Today 등을 통해 온라인 상담이나 한인 심리 상담사를 찾아 과거의 '강철벽'을 조금씩 걷어내는 작업을 병행하시길 권합니다.
이모셔널 이팅을 멈추기 위해 오늘 가장 힘들었던 감정 하나를 적어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못 다 쓴 글; 2026년 2월 19일, 브런치 스토리 심사를 통과했다는 메일을 받기 며칠 전에도
미친 코끼리처럼 먹었다. 언젠가 방송에서 보았던 쓰레기 먹는 코끼리처럼.
사실 그전에 며칠 식단 조절과 운동을 하며 조금 빠졌던 중부지방의 살들…
브런치 작가에 응모하고는 24시간이 너무나 느리게 가서 시계를 보며 한국시간을 확인하고 기다리고를 반복했다. 잠을 자다가도 메일을 열어보고 밥을 먹다가도 하고 또 시차를 생각하며 기다렸다.
그러다 조바심난 헌터가 되어 바삭한 친구들이 사는 우리 집 팬트리를 습격해 표적을 찾아 입에 넣었다.
맛은 상관없이 답만 상상했다.
아쉽게도 이번엔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메일을 받을까 봐 그런 상상을 지우려 먹었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지 않아 더 깊은 지하 우울 우물에 빠질 내가 그래도 상상 속에서 떠나지 않아 자포자기하고 먹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나는 다시 글을 쓰지 않겠다.
그냥 닥치는 대로 먹고 막살며 이판사판 비 뚫어지리라 생각했었다.
하늘이 내게 생애 마지막 두레박을 내려보내 주셨다.
47년 가까이 하늘에서 허락하는 안전한 구속이 절박했던 나는 냉큼 브런치 두레박에 올라탔다.
이제 글쓰기를 해도 된다는 자비와 멈출 수 없다는 자유가 내게 온 것이다.
글은 나를 결국 구원해 주었다.
나는 그동안 반죽하고 숙성해 둔 비밀 일기장을 펼쳤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구워낸다.
글의 구원을 믿으며 밤과 잠을 미루며 글을 굽는다.
미친 듯이 베이킹을 하는 글 굽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다. 행복해서 미치겠다.
이 순간만큼은 살아있고 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