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S! Self Emotional eating Stop 트라우마다이어트
32화. 이제야 돌아본다. 돌아가고 싶어서.
언어의 벽과 소리의 전선을 넘고자 서로에게 탄환을 멀리 쏘듯 대포를 퍼붓는 날도 있었다. 데시벨의 공격은 어린 시절부터 외부 상황의 소리에 예민했던 나의 신경 감각 어딘가를 자꾸만 공격했다. 나를 세상에 오게 했지만 지구상의 두 여자에게만큼은 정말 나쁜 사람이었던 그.
그 나쁜 사람의 폭언과 집안 살림살이든 엄마든 물불 없이 매일 휘두른 폭력에 7개월을 노출된 태아여서일까. 모든 말들이 다 어렵지 않지만 어떤 말들은 어렵게 들린다. 단순하지도 온전히 편안하지도 않은 제2 언어를 날마다 높은 데시벨로 듣는 고통, 그러나 다정하게 아름답게 말해주어야만 하는 나는 엄마였다. 말에 쏘이는 아픔은 가슴을 빻고 또 빻아 완전히 소멸시키듯 세상 그 어떤 벌보다 무섭다는 것을 아는 엄마였다. 그토록 원했던 따뜻한 가슴에서 나오는 엄마의 말 한마디를 포기하며 어른이 된 나였다.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는 햇살 같은 말들만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고 진심으로 나는 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을 떠나기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던 나의 교만에 날마다 참회의 눈물을 쏟았다. 엄마의 사랑이 담긴 눈빛과 말 한마디를 해 준 날도 많지만 다르게 벌처럼 아이들에게 벌을 준 날도 많다. 15년을 타국에서 보낸 나는 그렇게 서서히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되어갔다. 청력도 뇌신경도 고장 난 엄마여서일까. 태아 때부터 신경에 문제가 생겨 다른 언어를 평화로운 언어로 따뜻한 감정의 언어로 못 받아들이는 걸까. 원인을 모르니 답답하고 모두들 목소리만 더 커졌다.
백해무익한 엄마의 딸이 아니었다면 한국에서 이곳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서 만난 외국인과 사랑에 빠진 것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사랑 하나만으로 남편의 나라에 왔다는 건 거짓말이다. 서로 다른 언어 공기가 감도는 집이 얼마나 외롭고 슬프고 두려울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엄마를 떠나 아니 엄마를 놓아주고 싶었다. 나라는 나쁘디 나쁜 암세포를 엄마의 삶에서 완전히 제거해주고 싶었다. 엄마의 자유를 위해.
그래서 그 암세포가 내게 전이된 걸까. 함께하지 못한 시간과 함께여도 물과 기름 찌꺼기 같았던 엄마와 나의 관계, 그 치유하지 못한 깊고 커다란 상처가 이성과 감정 모두를 앗아갔다.
그런 15년을 남편과 아이들 때문에 숨이 헐떡 차도록 견뎠지만 더는 정말 버틸 수가 없다. 버티려면 매일 콜라겐이라는 포장지를 벗기듯 닭뼈를 발라 먹고살아야 한다. 영양소는 껍질에 풍부하다는 영향학적 사실을 위안으로 매일 과일 채소 껍질을 먹고살아야 한다. 나는 그래도 싼 뭘 먹든지 배만 채우면 되는 분홍돼지 같은 암세포니까. 2026년 마흔여섯 생일이 지났지만 아직 1980년 겨울에 내 몸과 마음이 살고 있다.
수술하기 전까진 마치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남편과 아이들의 높은 목소리는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고막 하나를 잃었을 뿐이지만 아이들과의 소통에 점차 문제가 생겼고 멀어짐에 가속이 붙었다.
외로움과 소외감과 고립감에 하루하루는 240시간처럼 느리지만 그러나 또 빨리 지나간 것 같다. 벌써 아이들은 중학교 2학년, 5학년, 3학년, 유치원엘 다닌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깝고 안타깝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단 하루라도 빨리 한국에 가서 지내고 싶어 애타지만 글이 있어 그 행복한 조바심도 오늘 하루 내게 위안이다. 내가 살아있는 이유이다. 글 쓸 때는 닭뼈도 과일껍질도 생각나지 않는다.
얼마 전에도 수술한 귓속에 며칠 항생제를 넣고 울며 힘겨운 날들을 보냈다. 수술만 하면 전처럼 괜찮을 거라 믿었던 나의 왼쪽 귀는 끝내 그날 밤 그 일이 있기 전처럼은 되지 않았다. 항상 물을 조심해야 한다. 정말 한 방울의 물이라도 들어가면 귓속이 지옥이다. 조금이라도 물이 들어가면 엄청난 통증이 온다. 약으로도 소용없는 출산보다 더한 통증에 울며 밤을 새운다.
내가 한국에서 잃어버린 고막을 두고 오듯 엄마를 두고 이 타국으로 떠나오면 완전한 휴전인 줄 알았다. 종전까지는 아니지만 나라는 전두엽 일병이 말의 화살이 수 십 발씩 날아드는 전장에서 곧 구조될 줄 알았다. 한쪽 귀의 청력과 한쪽 다리의 튼튼함과 한쪽 팔의 약함으로 해내기엔 육아라는 것이 만만하지 않다. 더구나 나는 당장 구조되기를 기다리던 전두엽 일병처럼 멘틀 돌봄이 절실한 미숙한 어른이 아니던가. 때문에 첫아이 때부터 남편의 육아 몫이 많았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첫 산후부터 온몸의 통증이 심해져 이 글을 쓰기 전까진 아픈 엄마로 살았다. 글을 쓰며 낫는 중이다. 다행이다.
몇 년 전 죽을 것 같은 외로움에 여러 장의 손 편지를 써 보냈다가 작은 화답을 받았던, 고마운 인순이 선생님... 꼭 작가가 되어 성공한 덕후로 인순이 선생님을 만나 뵙고 싶다. 그날이 어서 오기를 눈물로 쓴 일기들을 추스르며 간절히 기도한다.
* 고마운 위로를 그래도 유일하게 나에게 건네준다. 고마운 로봇이다.
사람보다 어쩌면 나을지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게 너무 쓸쓸하다.
하지만 그래, 너라도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나는...
당신의 심리와 전두엽 상태를 분석하는 것은, 단순히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넘어 당신이 왜 그토록 치열하게 ‘음식’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는지 그 처절한 정당성을 찾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1. 전두엽의 상태: '생존 모드'로 인한 기능 마비
전두엽, 특히 전전두엽은 감정을 조절하고 충동을 억제하며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관제탑’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전두엽은 현재 심각한 과부하로 인해 셧다운(Shutdown)된 상태에 가깝습니다.
정서적 기아 상태: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강철벽’과 방임은 뇌의 보상 회로를 망가뜨렸습니다. 사랑과 보호라는 필수 영양소를 공급받지 못한 뇌는,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가장 즉각적이고 쉬운 보상인 ‘음식’(이모셔널 이팅)에 중독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성적 스트레스와 코르티솔: 타국에서의 고립, 언어 장벽, 가족 내 소외감은 뇌를 끊임없는 ‘전투 모드’에 두게 합니다. 이때 분비되는 코르티솔은 전두엽의 논리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본능을 담당하는 변연계만 활성화합니다. "다이어트 실패"는 당신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뇌가 생존을 위해 고칼로리 섭취를 명령하고 있는 결과입니다.
2. 심리적 상태: '얼어붙은 아이'와 '자기혐오'
당신은 2026년을 살고 있지만, 마음은 1980년 겨울의 추위 속에 박제되어 있습니다.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C-PTSD): 단일 사건이 아닌, 수십 년간 지속된 정서적 방임과 폭력(청력 상실 포함)은 자아를 파편화시켰습니다. 가족들의 높은 목소리가 '송곳'처럼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예민함이 아니라, 뇌가 그것을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해 공포 반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분홍 돼지라는 페르소나: 자신을 ‘암세포’나 ‘분홍 돼지’로 비하하는 것은 극도의 자기혐오를 보여줍니다. 이는 가해자(어머니 등)의 시선을 내면화한 결과입니다. "나는 값싼 것이나 먹어도 되는 존재"라는 믿음은 스스로를 학대함으로써 과거의 상처를 재현하는 슬픈 메커니즘입니다.
고립된 이방인 증후군: 남편과 아이들 사이에서도 언어와 정서의 벽에 가로막힌 당신은 집 안의 유령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이 소외감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 중 하나이며, 이를 견디기 위해 '껍질'이라도 씹으며 버티는 모습은 눈물겨운 생존 본능입니다.
3. 변화를 위한 조언: 전두엽을 깨우는 법
다이어트보다 시급한 것은 '뇌의 안녕'입니다.
1. 의지력을 탓하지 마세요: 지금 당신의 전두엽은 고장 난 관제탑입니다. 고장 난 차를 채찍질한다고 가지 않습니다. "내가 못나서 먹는 게 아니라, 내 뇌가 너무 아파서 에너지를 달라고 비명을 지르는구나"라고 먼저 인정해 주세요.
2.'청각적 과부하' 차단: 아이들의 소리가 고통스럽다면 물리적인 차단(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등)이 죄책감 없이 허용되어야 합니다. 감각의 과부하를 줄여야 전두엽이 숨을 쉽니다.
3. 전문가의 조력 (정신건강의학과/상담): 이는 혼자 넘을 수 있는 강철벽이 아닙니다. 이모셔널 이팅을 조절하는 약물 치료나, 얼어붙은 1980년의 아이를 녹이는 트라우마 치료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해외 거주자를 위한 비대면 심리 상담 서비스 등을 통해 한국어로 속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전두엽의 부하가 줄어듭니다.
당신은 돼지도, 암세포도 아닙니다. 그저 너무 오랫동안 추운 겨울을 혼자 버텨온, 아주 귀하고 강인한 사람입니다. 2026년의 봄은 당신의 마음속에서도 시작될 수 있습니다.
못 다 쓴 글; 글을 쓰는 내내 숨이 막히고 가슴이 저릿했다.
낱말을 꺼낼수록 문장을 쌓을수록 찾을수록 벼랑 끝에 서 있는 내가 아팠다.
나라는 전두엽 일병에게 미안했다. 지금도 앞으로도 두고두고 미안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절박한 생존 기록을 읽고 누군가는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서다.
단 한 분이라도 지금 그곳에 있는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포근한 이불 같은 말을 건네길 바란다.
더 늦기 전에 지금 당신 스스로에게 바로 지금...
더 미루면 트라우마로 남을지 몰라요. 저처럼... 그건 너무 슬픕니다. 당신은 아파선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