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S! Self Emotional eating Stop 트라우마다이어트
33화. 마음만이라도 전사하고 싶다.
내게 들어온 엄마라는 상처는 순조로이 나가지 않는다. 처음부터 너무나 멀었던 엄마와 나. 우리들의 먼 그 거리처럼 이미 먼 왼쪽 귀가, 한 번 멀어져 버린 왼 귀가 수술만으론 다시 예전처럼 돌아올 수 없는가 보다. 여전히 딸들과 물놀이는 할 수 없다. 왼 귀만큼 아프지만 왼 귀만큼 소중한 것도 없다. 아직도 먼, 아무 상처도 받지 않은 것처럼 되돌릴 순 없는, 하지만 마음 쓰며 아껴줘야 하는 미워할 수 없는… 내게 엄마는 꼭 왼쪽 귀 같다.
왼쪽 귀 고막을 잃던 날의 기억은 잊고 싶지만 잊히지 않고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고막이 날아갈 만큼 강력한 분노의 존재가 엄마에겐 나이다. 내가 더 고통스러운 것은 그것은 사실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힘으로는 엄마와 나의 과거를 바꿔버릴 수 없는 것이다. 엄마에게 몰려온 거대한 고통의 파도를 나는 막을 수 없었다. 나도 엄마의 딸이 되고 싶어 된 것이 아니며, 나는 엄마를 선택할 수 없는 먼지 같은 존재였다. 그 나쁜 사람에 의한 그 나쁜 일도 내 잘못이 아니었다. 나도 그 나쁜 사람에 의해 엄마에게 맡겨진 27주 미숙아, 미숙한 생명일 뿐이다.
엄마의 분노는 이해하지만 그 분노의 폭발이 내 귓속 고막을 폭파시켜서는 안 되었다.
아이들과 물놀이는커녕 씻기는 일도 언제부턴가 하지 못했다. 물이 닿으면 안 되는 내 귀 때문에 나는 아이들의 엄마로서 충분한 역할을 못 한다. 물론 아이들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들을 때가 많다. 미안함과 자책감이 항상 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이 엄마라는 생각에 가끔 아직도 힘들다. 15년 전의 일이고 고막재생수술도 했지만 끝내 청력은 전과 같지 않다. 이 상처는 내 아이들을 정상적으로 케어하는 일에도, 아이들과 대화하는 일상에도 너무나 큰 문제적 영향을 주었고, 지금도 주고 있다.
잘 들리지 않는 귀를 늘 달고 있는 내가 싫지만 잘라버릴 수 없어 화가 난다. 나의 왼팔도 똑같다. 귀 바보는 엄마 때문이었지만 팔 바보는 타인들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왼쪽 팔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때 엄마로서 가만히 있었다. 나에게 무력은 사용하지만 나를 위해서는 무력한 방관자였다. 엄마와 타인들의 관계가 깨질까 두려워 나를 위해서는 끝까지 단 한 번도 최전방에 서 주지 못했다.
나라는 라이언 일병의 전두엽이 마비되었지만 녹여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녹이는 방법을 찾아보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엄마도 그 옛날 그 일이 닥쳤을 때 전두엽이 굳어 얼어버린 라이언 일병이라 그렇단 걸 나도 안다. 엄마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할 수 없는 전두엽 일병임을 알기에 더더더 나는 정말 미치겠다. 나도 엄마도 답이 없고 길이 없다. 매일 생사의 기로에 놓여 살지만 정말 답도 길도 모르겠다. 그저 이렇게 글을 써서 감정을 다시 비우고 마음 청소를 하는 것밖엔 없다.
엄마가 되니 엄마의 고통을 조금은 이해하지만 살았으니 잘 살아가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으니 마음이 괴롭다. 고막은 또 수술하면 된다고 다행히 오른쪽 귀는 들리니 감사하다고 다독일 수 있다. 하지만 왼팔의 부상으로 나는 아이들 육아에 치명타를 입었고 건강한 일상생활을 도둑맞았다. 왼팔의 고통을 평생 안고 살다 관 짝에 들어가야 한다.
내 의사는 무시한 채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도록 뒷짐 지고 있던 엄마다. 왼팔을 다친 경위와 연유에 대해 그 어떤 흥분도 없이 스쳐 듣고 그만이던 엄마다. 내 고통보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한 침묵과 방치로 일관하던 엄마다. 그런 힘없었던 엄마가 나는 되고 싶지 않았지만 힘을 내기엔 몸 이곳저곳이 너무 아프다. 고장 나버린 왼 팔을 느끼고 통증이 올 때마다 화가 난다. 아이들을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하고 활동적으로 놀아주지도 못한다. 몸의 다른 이상이야 선천적 원인과 후 천척 교통사고와 수술 등 납득할 이유가 있으니 괜찮다. 하지만 왼쪽 귀와 왼쪽 팔의 삐걱거림과 통증과 버거운 삶을 생각하면 미칠 듯 화가 난다.
나는 왜 태어나서 이렇게 고통스러운 몸과 마음의 통증을 안고 살아가는지 스스로가 너무나 미워 미치겠다. 또다시 슬픈 자책과 원망을 하며 전두엽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왜냐하면 요리 따윈 안 해도 되는 날라면과 절대 비싸면 안 되는 볶은 땅콩, 나라는 전두엽 일병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전두엽의 고통을 최대한 빨리 잠재워야 하기에 요리할 시간이 없다.
요리할 에너지도 없고 요리할 돈도 나를 위해서는 없다. 죽어 마땅한데 어쩌다 살아서 모든 사람을 힘들게 하는 나라는 전두엽 일병은 아무거나 지금 당장 빨리 많이 먹으면 된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날라면과 땅콩을 또 먹으면 된다. 결혼 후 15년 동안도 나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니까. 값이라도 싸고 시간이라도 필요치 않은 빨리 먹어치울 비상식량이면 된다.
먹기만 하면 배로 가는 살들이 정말 지긋지긋하다. 보이는 곳에는 살이 사라진다. 내 몸에 탄 채 47년째 중부지방으로만 계속 오배송되고 있는 주소불명의 수화물들, 탄수화물이다. 나는 탄수화물을 내 몸에 탄 수화물이라 생각한다. 그 생각을 하며 잘못 배송되고 있는 그 수화물들을 매일 버려야 한다고 다짐했다. 사람들은 웃었다. 나는 살이 없다고.
내 삶에 휘몰아친 폭풍을 모르듯 사람들은 내 안을 휘감고 있는 폭식의 뿌리를 모른다. 내 영혼을 꽉 쥐고 놓아주지 않는 폭탄, 그 무서운 식탐을 모른다. 영양소는 없고 소리만 요란한 삐딱한 식품들만이 나를 위한 무기라고 여기는 전두엽 일병의 투지를 아무도 모른다.
완경기 전에는 어떻게든 다이어트를 해야만 한다. 그 뒤에는 근육감소가 빠르고 골다공증이 올 지 모른다. 한국에서 부부 새벽배송단이 되기로 우리는 꿈을 꾸고 있다. 주말에 시간이 있다면 아이들과 자전거로 한국 곳곳을 여행하며 맛있는 한 끼 한 끼를 먹어보고 싶은 꿈이 있다. 나의 삶의 아픔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사람들과 나누는 트라우마다이어트 강연자가 되고 싶은 꿈도 있다. 내가 유일하게 붙잡고 버텨야만 했던 하나님을 전하고 싶은 꿈도 있다. 아이들과 봉사를 함께 하며 신의 선함을 그대로 닮은 션님을 닮아가고 싶은 꿈도 있다. 그러기엔 이렇게 지체할 시간이 없다.
그런데도 내 생애 마지막 다이어트 계획은 생일만 돌아오면 크리스마스만 돌아오면 기쁘고 행복한 날만 돌아오면 다시 돌아간다. 물거품이 된다. 요요만 자꾸 가까이 자주 온다. 내게 좋은 음식을 주고 싶지만 우리 집에선 꽃들과 나무만을 위해 계속 양보하게 된다. 나에게 주는 자비는 자꾸만 죄책감을 준다. 너는 먹을 자격이 없다고…
또한 한국음식이 너무나도 그리운 나를 알고 있다. 여기 춥고 먼 나라에 있는 한 쉴 새 없이 날아드는 마음의 총탄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몇 달러짜리 전투식량이다. 하지만 이제 전쟁을 끝내고 싶다. 마음만이라도 전사하고 싶다. 다 비우고 몸이라도 떠나고 싶다. 날라면과 땅콩이 있는 이곳에서.
심리 상태와 뇌과학적 관점(전두엽)에서의 분석을 조심스럽게 나누어 봅니다.
1. 심리적 상태: '얼어붙은 슬픔'과 '생존 모드'
현재 당신의 마음은 '복합 외상성 스트레스(C-PTSD)'와 '만성적 애도'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방치와 정서적 허기: 어린 시절 엄마로부터 받아야 했던 '거울 신경세포'의 공명(따뜻한 눈 맞춤과 공감)이 결핍되었습니다. 이 결핍은 성인이 된 후 타국에서의 고립감과 만나며 '정서적 허기'를 극대화했고, 뇌는 이를 실제 배고픔으로 착각해 '셀프 이모셔널 이팅'이라는 보상 기제를 선택하게 만들었습니다.
신체화된 분노: 특히 '왼팔'과 '왼귀'의 통증은 단순히 물리적 부상을 넘어, 나를 방치한 엄마에 대한 원망과 그 시절의 무력감이 박제된 신체적 기억입니다.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당시의 서러움이 '현재진행형'으로 재생되기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입니다.
2. 전두엽 상태: '브레이크 기능의 저하'와 '편도체의 과부하'
전두엽, 특히 전전두엽 피질은 감정을 조절하고 실행 능력을 담당하는 '뇌의 관제탑'입니다.
전두엽 에너지 고갈: 오랜 시간 지속된 소외감과 통증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과다 분비시킵니다.
이는 전두엽의 기능을 약화시켜, 다이어트라는 '이성적 계획'을 실행할 의지력을 갉아먹습니다. "알면서도 먹게 되는 것"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뇌의 브레이크(전두엽)가 과열되어 고장 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편도체의 하이재킹: 과거의 상처와 연결된 통증이 발생하면, 공포와 불안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비상벨을 울립니다. 이때 이성적인 전두엽은 마비되고, 뇌는 당장 살아남기 위해 가장 빠르고 쉬운 쾌락인 '음식'을 찾게 됩니다.
3. 회복을 위한 제언: "나를 위한 '엄마'가 되어주기"
40대 중반, 완경 전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이 당신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독한 의지'가 아닌 '자기 자비'가 필요합니다.
다이어트의 목적 수정: '살을 빼는 것'보다 '염증을 줄이는 것'에 집중하세요. 왼팔의 통증은 몸의 염증 수치와 직결됩니다. 설탕과 가공식품을 줄이는 것을 '통증으로부터 나를 구하는 행위'로 정의해 보세요.
언어적 고립 해소: 말이 통하지 않는 가족 사이에서 느끼는 소외감은 존재론적 공포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상담 등 한국어 심리 상담 서비스를 통해 마음껏 모국어로 쏟아내는 시간을 반드시 가지시길 권합니다.
왼팔과의 화해: 통증이 올 때 화를 내기보다, "그동안 이 아픈 팔로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전두엽을 활성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이름을 붙여주는 것(Labeling)'입니다.
당신은 엄마처럼 방치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하셨지요. 이미 당신은 아이들을 위해 낯선 땅에서 분투하며 그 다짐을 지켜내고 계십니다. 이제 그 따뜻한 시선을 '내 안의 상처받은 어린아이'에게도 조금만 나누어 주세요.
못 다 쓴 글; 다이어트의 목적 수정: '살을 빼는 것'보다 '염증을 줄이는 것'에 집중하세요.
왼팔의 통증은 몸의 염증 수치와 직결됩니다.
설탕과 가공식품을 줄이는 것을 '통증으로부터 나를 구하는 행위'로 정의해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로봇이라 역시 한계적 빅데이터 상자님...
저는 다이어트만이 목적은 아닙니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온하게 먹고 또 그렇게 살고 싶어요.
가장 먼저 마음의 짐을 덜어내기 위해, 현재 거주하시는 곳에서 한국어로 소통 가능한 심리 상담이나 지지 그룹을 찾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찾아보았고 속하기도 했지만... 제 아픔이 혹시라도 언어를 통해 한국인 누구에게라도 전염될까 봐
이제는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요. 정말 저는 한국으로 가고 싶습니다.
남편의 연방정부공무원이라는 직업만 내려놓는다면 갈 수 있을까요...
제가 사장님보다 일찍 새벽에 출근하여 한국 식료품점 화장실 청소도 했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파트는 전혀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저는 다른 팀의 소속원이었지만
그곳에 가끔 갈 때마다 화장실이 눈에 밟히곤 하던 차에 제가 잠시 취업에 성공했었습니다.
엄마음식 한국음식이 그리워 한국식료품점에는 오히려 거의 못 가던 제가 그곳 직원이 되었었지요.
그때 한국인들이 많은 거기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근무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새벽 청소를 했습니다.
남녀화장실을 모두 청소하며 제 마음을 뽀득뽀득 닦아냈습니다.
감사했고 좋았습니다. 일하는 제가...
가치 있게 사는 것 같았고 스스로의 효능감 최고였으니까요.
비록 몸이 속도전에 취약하여 눈물을 머금고 한국식료품점을 자의 반 타의 반 그만두었습니다.
오래는 아니지만 그 2개월의 날들이 저는 캐나다에 온 후 어느 때보다 따뜻하고 좋았습니다.
한국인들과 함께 있고 일하고 먹는 그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저를 고용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그만큼 무슨 일이든 할 마음을 갖췄고 정직한 노동에 경의를 품고 있는 사람입니다.
엄마도 정직하고 자신에겐 자비 없이 일만 하시는 공장노동자이신걸요...
그 고생과 수고의 무게를 누구보다도 알기에 권모술수 없이 일하시는 모든 분들을 존경합니다.
제가 꾀 없이 성실히 일한 깨끗한 돈으로 우리 집 다섯 개의 보물들에게
맛있는 한국 음식을 마음껏 사 주었던 그 기억이 저는 정말 최고로 행복했습니다.
너무 짧은 꿈을 꾸다 깨서 그 일터를 떠나던 날 집으로 돌아오며 차에서 얼마나 울었는지요...
15년의 세월을 견디며 타국에서 가정을 일구고 지킨 그만큼 제가 더 힘을 내야겠죠.
우리 집이 초토화되기 전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야겠습니다...
힘이여 솟아라 라라라 라라랏! 으랏차차 차차차! 달려라 차차차! 갯마을 차차차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