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S! Self Emotional eating Stop 트라우마다이어트
41화. 너의 죄를 절대 사하지 않노라(당신의 죄를 절대 사하지 않노라)
어젯밤엔 한숨도 못 잤다. 오늘 그 사내를 만나기 위해 청송으로 왔다. 오늘 단 하루뿐이다. 솔직히 마음이 너무 무섭고 복잡해서 다 취소하고 싶었지만 나를 위해서 여러분들이 기도해 주시고 동행해 주셔서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인생에 딱 한 번이니까 오지, 두 번도 세 번도 다시 오긴 싫다. 한 번이면 될 것 같다. 정말 그냥 딱 한 번만 와서, 딱 한 번만 보고, 딱 한 번만 무슨 얘기든 듣고 싶다.
모래시계의 위아래가 지금 이 순간 서로 바뀐다.
그 사내는 생각보다 많이 왜소하고 작으며 굽은 어깨로 나를 맞이한다. 첫 발을 내딛기가 몹시 어려워 보인다. 작은 보폭으로 발을 질질 끄는 채 교도관의 부축을 받아 내 앞으로 오고 있다. 약간 굽은 팔은 거의 흔들지도 않고 몸 옆에 붙이고 걸어온다. 상체가 약간 앞으로 굽어졌고 무릎과 팔꿈치도 굽혀져 있다.
사실 사내는 현재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치매 다음으로 발병률이 높은 퇴행성 뇌 질환인 파킨슨병을 그 사내가 앓고 있다니 불쌍하다기 보단 기분이 좀 이상하다. 어눌한 몸놀림의 그 사내가 영 믿기지 않는다. 저 사람이 정말 아버지 같지 않던 그 거지 같던 그 사람, 그 사내가 정말 맞을까? 의심이 든다. 정말 기분이 이상하다. 괜히 온 걸까? 지금이라도 그냥 나갈까? 만나지 않겠다고 말할까? 너무나 의외인 그 사내의 모습이 낯설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다.
엄마와 나에게 추악스러운 괴물의 힘을 매일 과시하던 그 사내는 어찌하여 지금 저리도 초라한 모습의 은백발 성성한 노인이 되었을까? 그 사내가 바로 내 앞까지 왔다. 내 앞에 앉았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다. 그 행동의 의미는 사내가 나를 기억한다는 뜻일 것이다. 몇 번이나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는지 부풀었다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어깨와 가슴이 느리고 미세한 춤을 춘다. 그렇게 한참 먼지소리만이 그곳에 감돌고 있다. 처음이자 마지막 맘을 먹고 왔기에 천금보다 귀한 시간이 허공에 버려지는 게 갑자기 뭔가 와악 하고 속에서 치민다. 시한부 환자의 생애 끝 호흡처럼 지체할 수 없는 조바심이 순간 온몸과 맘을 덮는다. 눈 속에 꼭 단단히 가둬 둔 눈물이 어떤 연유에선지 얼굴을 타고 테이블 위로 뚝 떨어진다. 내 심장과 함께 뚝. 뚝. 뚝.
“하아… 하아… 어떻게… 지내셨어요? 여기 계시다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지내왔다는 뜻이겠죠? 잘… 사신 건 절대… 결코… 아니시네요.”
가면 안이라 별 다른 표정 없이 눈의 깜빡임도 거의 없고 입을 약간 벌린 채 날 쳐다보던 사내가 조금 움찔, 그의 마음에 무언가 미동이 있다. 마치 내 말에 콕. 콕. 콕… 심장을 찔린 듯 그래 보인다.
“왜 이렇게 살고 계세요? 사람처럼 사시지 왜… 왜… 왜… 왜 이렇게 지금도 여전히 짐승처럼 앉아 계세요? 엄마한테 그렇게 하셨으면… 저를 그렇게 추운 날 그보다 더 춥게 세상에 던져 놓고 가셨으면… 일평생, 일생을, 온몸이 가루가 될 때까지, 빚 갚는 심정으로, 그렇게 사셨어야죠!
다만 저희 앞에 절대로 다시 나타나지 말고 그냥 쥐 죽은 듯이, 아니 죽은 쥐처럼 사셨어야죠! 뭣 때문에 절 찾아와서 또 데려가서 얼마나 절 패대기치려고, 그 잘난 인형 하나에, 제가 고맙다고 넙죽 따라갈 줄 알았어요? 어떻게 그래요! 어떻게 그렇게, 사람으로 태어나서, 구더기만도 못한 짓을 우리 모녀에게 할 수 있냐고요!
저는 그렇다 쳐요! 저한테 직접 미치광이 짓을 하지 않으셨다고 해도! 저는 엄마 뱃속에서도 다 듣고 있었고, 다 알고 있었고, 다 느끼고 있었어요!
엄마가 죽도록 매를 맞으면 몸속에 있는 그 피가, 다 죽어 썩은 피가 저한테 왔어요! 엄마가 죽도록 매를 맞고 아파하면, 그 비명소리가 무서워 뼛속까지 제 몸을 돌돌 말아 웅크리고, 엄마의 그 따뜻하고 안온한 양수가 한겨울 칼바람에 꽁꽁 언 얼음장 같아서, 그 양수가 제 몸에 닿을 때마다 저는 도망치고 싶어 얼마나 발발발 떨었게요!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엄마의 뱃속이 얼마나 작던지, 이리저리 아무리 도망갈 곳을 찾아도 없고, 전 그 살얼음 낀 양수와 다 죽고 썩어빠진 엄마의 피눈물을 먹고, 겨우 칠 개월을 연명하다 남보다 한참 모지란 모지리의 몸으로, 그 추운 날 그 더러운 손으로 던진 돌덩일 맞고, 태어나기 싫은 세상에 너무나 태어나기 싫었던 세상에, 징그러워 볼 수 없는 몸으로 만질 것도 없이 작은 몸으로, 엄마를 죽이고 제가 태어났어요!
엄마를 죽이고 태어났다고요! 엄마를 죽이고 태어났어요! 그러니 제가 어떻게 살아요! 엄마 앞에서 늘 죽어야죠! 엄마 앞에서 늘 죽어 없어져야죠! 그래도 싸죠! 그래도 싸요! 엄마를 죽였으니, 엄마를 죽이고 세상에 나왔으니, 그 값은 치러야죠! 이제는 제가 죽어야죠! 엄마 대신 제가 죽어야죠! 엄마 대신 제가 죽어줘야죠! 그래야 엄마가 살죠! 그래야 엄마가 살죠! 제가 더럽고 추악한 당신의 핏덩인데! 엄마가 그 꼴을 어떻게 봐요! 엄마가 그 꼴을 보고 어떻게 제정신으로 살아요!
엄마가 왜 미쳤는지! 엄마가 왜 돌았는지! 엄마가 왜 정신이 왔다 갔다 했는지! 엄마가 왜 저한테 욕을 해댔는지! 엄마가 왜 그렇게 저를 팼는지! 엄마가 왜 그렇게 저를 미워했는지! 엄마가 왜 그렇게 한 번도 따뜻하지 않았는지! 엄마가 왜 제 인격을 그토록 짓밟고! 제 영혼을 그토록 끝까지! 제 모든 걸 죽이려 했는지! 이제야 다 이해가 돼요!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져요!
엄마가 왜 그렇게 날 잡아먹으려 했는지! 엄마가 왜 그렇게 나만 보면 분노의 눈빛을! 너무나 크고 무서운 독사의 눈빛을! 왜 맨날 저를 곧 잡아먹을 눈빛으로 쳐다봤는지! 이제 엄마가 다 이해돼요! 엄마가 그토록 무섭게 쳐다본 눈빛은! 바로 당신 거였어요! 그때 당신의 눈빛이 독사의 눈빛이었으니까! 그때 당신은 독사였고! 악마였으니까! 엄마는 그 눈빛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다가! 당신의 핏덩이 당신의 씨인 저를 볼 때마다! 바로 당신 그 자체였던 독사! 괴물! 악마! 더럽고 냄새나는 똥덩어리! 그보다 못한 당신이 저를 볼 때마다 떠올라! 엄마는 그렇게 저를 잡아 족치지 않고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어서! 당신이 살기 위해 저를 죽였던 거예요!
제가 아무리 부정해도 저는 어쩔 수 없는 당신이니까! 엄마에게 저는 그냥 당신이니까! 그러니 저를 죽이는 게 맞죠! 당연히 저를 죽여야죠! 엄마는 아무런 죄가 없어요! 그 모든 죄는 당신에게서 왔어요! 당신이 죽어야 하는데! 엄마가 죽었고! 엄마를 죽이고 하필이면 제가 살았고! 그래서 엄마는 절 죽이려 한 거예요! 엄마가 살기 위해서 당신이 죽어야 하니까! 그런 당신이 바로 저니까! 왜 그렇게 날 보는 눈빛이 불편하고 싫고 경멸하는 눈빛이었는지! 왜 그렇게까지 날 안 보고 싶어 했는지! 왜 그렇게까지 날 혼자 방에 가둬 뒀는지! 왜 그렇게까지 날 밥 하나 편하게 못 먹는 부엌대기로 살게 했는지! 왜 그렇게까지 날 외로움의 고통 속에 처박아 뒀는지! 왜 그렇게까지 날 죄책감에 평생 괴롭게 했는지! 왜 그렇게까지 나에게 악을 쏟아냈는지! 왜 그렇게까지 나에게 화를 내고 분노했는지! 왜 그렇게까지 나에게 추한 손지검을 했는지!
이제 다아, 모두 다, 엄마가 사는 방식이, 엄마의 삶의 태도가! 왜 그렇게 불쌍하고 안타깝고 희한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두 얼굴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제가 죽을 때까지 펴엉생 절대로 이해 못 할 거라고 생각했던! 두 얼굴의 엄마! 거짓으로 행복한 척하는 엄마의 두 얼굴! 제가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이중인격! 엄마의 만행! 엄마의 불편한 웃음! 엄마의 불안한 행복! 그 모든 이유가 당신이에요!
엄마는 순수하고 맑은 사람이었어요! 너무나 착해서 늘 언니 동생들에게 다 양보하고! 갖고 싶은 거 하나도 부모에게 짐이 될까! 어떤 요구 투정도 없이 부모에게 순종하며! 착하고 조용히 자란 글 잘 쓰고 그림 잘 그리던! 아주 평범하고 순한 마음도 얼굴도 그저 예쁜 딸이었어요! 그런데 당신이 그런 엄마를 다 망쳐놨어! 착하고 순한 엄마를 악하고 막하는 엄마로! 당신이 범인이에요! 꼭 짠 것처럼 당신이 여기 있네요! 여기서 썩고 있네요! 당신이 엄마를 죽인 범인이니까!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여기 있을 이유죠! 당신이 죽인 그 엄마는 지금 없어요! 당신이 죽이지 않았다면, 엄마는 지금 어디선가 착하게 잘 살고 있을 텐데! 당신이 엄마의 영혼을 죽였어요! 당신이 엄마의 몸을 갈기갈기 찢겨 죽인 것처럼! 엄마의 영혼도 당신이 죽였어요! 엄마의 순수했던 그 영혼을, 당신이 절구에 빻아 가루로 만들어 완전히 싸악 죽였어요!
당신은 살인자예요! 당신은 여기서 살 자격조차 없는, 지나가는 개에게 밟혀 죽어도 마땅한, 눈에 띄어선 안 되는 벌레 같은 사람! 아니 짐승보다 악마! 당신이 던진 그 벽돌에 맞고! 백일이나 못 채우고 세상에 나온 난! 태어나자마자 삼일 만에 죽다 살아났고! 오른쪽 팔과 다리가 왼쪽보다 다 짧고 얇아서! 오른쪽 사지가 제 구실을 못해! 평생 한쪽 팔다리가 힘을 못 쓰는! 사지가 편치 않은 사람으로 살고 있어! 남들 다 걸을 때 걷지도 못해서, 외할머니 기도로 세 살 때야 걸었고! 성장이 멈추고 태어난 내 오른쪽 눈은! 태어나자마자 손을 못 써,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력이 거의 없어! 척추 뼈도 오른쪽은 개수가 부족해! 골반이 완전히 틀어진 채 자릴 잡았고! 오른쪽 몸은 균형이 안 잡혀! 남들 다 하는 기본 운동도! 제대로 되지 않는 몸뚱이로! 얼마나 치욕스러운 학창 시절을 보냈는지 알아! 교복 입고 걸으며, 남들 손가락받이로 산 게 자그마치 육 년이야!
당신의 DNA를 내 몸에서 내 영혼에서 없앨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단 마음이었어! 어려서부터 당신과의 나쁜 인연과 나쁜 기억을 듣고 자랐어! 당신이 준 모든 기억을 없애는 약이 있다면 1톤이라도 삼켜버리고 새로 태어나고 싶었어! 그대로(그래도) 죽긴 억울하니까!
엄마 뱃속에서 날 얼마나 죽이려 했으면! 내 신경 세포 하나하나가 미치도록 예민해! 누가 소리만 쳐도 놀라고 무섭고 두려워! 당장 그 자릴 떠나고 싶고, 당장 거기서 사라지고 싶어! 더 큰 소리가 나면, 귀를 막고 도망가 숨고 싶어! 그래도 안 멈추면, 나는 그냥 내가 죽어버리고 싶어! 당장이라도 그 소릴 피할 수 있다면, 나는 그냥 창문으로 뛰어내려 죽고 싶어!
엄마가 그때 그랬겠지! 당신이 소리칠 때! 당신이 온갖 살림 다 때려 부술 때! 당신이 엄마를 마구 때릴 때! 당신이 더 크게 고함칠 때! 당신이 더 악하게 욕할 때! 당신이 그럴 때, 엄마가 어디로 도망가 숨고 싶었겠지! 바로 그 자릴 피할 수 있다면 죽고도 싶었겠지! 그걸 내가 다 받았어! 그걸 내가 다 느꼈어! 그래서 내가 그래! 그래서 내가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조금만 큰 소리가 나도 공포를 느껴! 죽을 것만 같은 공포! 죽어버리고 싶은 공포! 죽여버리고 싶은 공포!
다 끝내고 싶은 공포! 누가 내게 조금만 큰 소리로 말을 해도, 난 그게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지금 당장이라도 내가 죽을 거 같은 공포심이 들어! 큰 소리가 오가는 그 분위기, 그 자체가 내겐 죽음의 공포야! 그 싸한 분위기가 날 죽이는 것 같아! 그 다툼이 싫고 그 싸움이 싫고 그 느낌이 싫고 그 화가 싫고 그 분냄이 싫어! 그래서 내가 그냥 죽고만 싶어!
이게 당신의 죄야! 엄마를 죽인 죄! 엄마를 죽이고 날 살게 한 죄! 엄마가 다시 날 죽이고 싶게 만든 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살고 싶게 만든 죄! 다만 내가 살기 위해서, 엄마를 다시 죽이고 싶게 만든 죄! 결국 엄마를 죽인 죄! 나를 죽인 죄! 엄마의 몸을 못 쓰게 만든 죄! 내 몸을 못 쓰게 만든 죄! 엄마의 인격을 죽인 죄! 내 인격을 죽인 죄! 엄마의 신경 세포를 죽인 죄! 내 신경 세포를 죽인 죄! 엄마의 정신을 죽인 죄! 내 정신을 죽인 죄! 엄마의 영을, 엄마의 영혼을 죽인 죄! 내 영을, 내 영혼을 죽인 죄! 이렇게 엄마와 나를, 아주 똑같이 죽인 죄!
당신이 완벽하게 죽을죄! 당신의 완전한 죽을죄!”
그 사내는 앉아있는 게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가면 안이라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으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마음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의자에서 일어나고 싶은 눈치다. 교도관을 불렀다.
“아이고. 또 실수하셨네! 얼른 가서 씻고 갈아입혀 드릴게요!”
교도관은 나에게도 양해를 구한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다시 모시고 올게요.”
내가 미친 듯이 소리쳐 쏟아내는 말들에 그 사내가 놀랐나 보다. 아니면 파킨슨병 그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둘 다 때문이 아닐까? 그 사내의 바지는 오줌에 절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