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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자

42화. 자살하지 않은 자의 변명, 살인 상상


이번에 사내를 만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신 전에 내가 인터뷰를 했던 류 교도관님, 그리고 신문사 전무님과 아내 분은 건물 안까지 들어와 기다리고 계셨다. 전무님은 어깨를 두드려 주시고 아내 분은 내 손을 꼭 잡고 연신 문질러 주신다. 그것이 나를 위한 위로임을 나를 위한 기도임을 안다.

류 교도관님이 옆 방 조용한 곳으로 나를 부르신다.

“기자님, 마음이 좀 어떠세요? 뭐 당연히 좋진 않으시겠지만 뵙길 잘했다 싶으시죠?”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이게 맞는지, 무작정 찾아와 이렇게 제 마음만 쏟아내고 가는 게, 정말 맞는 건지 지금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잘하는 건지, 잘 못하는 건지. 죄가 아닌지, 죄인지.”

“그래요. 마음이 쉽진 않으시겠죠. 하지만 오늘 아주 잘 오신 거 같아요. 제가 후배 교도관들에게 들은 바로는 아버님이 현재 많이 어려우신 상황이랍니다… 여기 오시기 전부터 워낙에 전과가 많은 데다, 미성년자 때도 그… 아… 에 대한... 이곳에 오게 된 것도... 신분 세탁을 하고 택시기사로 일하면서 근근이 사시다, 취객 손님의 무시를 넘기지 못하고 평소 갖고 다니던… 야산에 버리고 도망갔다……. 후배가 일러주더군요. 후배가 일러주더… 후배가 일러… 후배가…”

류 교도관님의 말이 믿기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교도관님의 말이 드문 드문 끊겨 들린다.


뒤에 하신 말씀들은 못 들은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아까부터 치고 치는 메아리만 머릿속에 남는다. 나를 세상에 나게 하신 분이 저리도 험악히 극악무도한 사람이라니, 정말 이젠 더 놀랄 것도 없다. 한편 억울한 마음이 몰려오는 것 같다. 터진 입이니까 변명이라도 들어야겠다는 오기 섞인 심정으로 왔는데, 말을 못 하는 병자 꼴이라니 정말 화가 난다.

“제가 기자님 마음이 어떨지 알면서도 말씀을 드리는 게 맞는지 저도 끝까지 고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기자님께서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님을 뵙기로 한 것처럼, 아버님도 어쩌면 기자님을 뵐 날이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마음이 어려우실 줄 알면서도 제가 솔직하게 말씀을 드린 겁니다. 부디, 힘든 마음이 기도의 은혜로 차차 회복되길 저희도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힘내십시오 기자님.”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 날인 것처럼 그 사내에게도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른단 말이 가슴에 맺혀 맴돈다. 오늘 하기로 정한 일들을 망설이지 말고 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확실해진다. 다른 두 가지 보다 더 중요한 그것 한 가지는 꼭 잊지 말고 해야겠다는 생각도 확신으로 다가온다.

“오늘… 제가 하려던 두 가지, 이따가 할 수 있는 거죠? 교도관님께서 힘써 주시는 게 저한텐 정말 큰 도움이에요. 감사해요. 도와주셔서.”

잠시 뒤, 교도관이 노크를 한다.


그 사내가 다시 내 앞에 앉아 있다. 아까보다는 얼굴이 조금 나아 보인다. 어쩌면 그 사내는 그대론데, 내 속에 있는 악이 빠져나가 사내에 대한 내 맘이 처음 여기 앉았을 때보다 나아져 그런지 모르겠다.

“무슨 변명이라도 좀 해 보세요. 엄마랑 저, 두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말씀 안 드려도 다 아시겠죠?”

그 사내는 고개를 숙이고 끄덕이고 더 깊이 숙이고 끄덕인다.

“정말 죽은 것처럼 살았어요! 하루하루 죽을 것처럼 숨이 끊어지게 살았고, 죽고 싶은 만큼 살고도 싶었어요. 왠지 아세요? 그건… 언젠가 한 번은 나도 죽을 만큼 행복해지자, 행복해져서 죽기 전에 한 번은 만나고 죽자, 죽어서라도 후회하기 싫으면 한 번은 만나 엄마와 내 억울한 삶을 다 그대로 돌려주자, 아님 엄마와 내 억울한 맘이라도 한 번은 다 말하고 죽자. 그렇게 생각하며 버텼어요.


만약 살아계시다면 한 번은 만나 보자, 딱 한 번은 만나서 내 속에 이 암덩일 그대로 돌려주자, 엄마와 내 고통을 똑같이 느끼게 갚아주자, 엄마와 날 죽인 죗값을 반드시 치르게 하자, 엄마와 날 죽인 이유를 반드시 듣자, 납득할 이유라면 생각해 보고 용서할지도 모르지만, 그와 반대라면 절대로 절대로 평생 용서하지는 말자, 죽을 때까지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자,

납득할 이유라도 사람이 사람을 죽여선 안 되기에, 그 어떤 다른 죗값이라도 반드시 씌워 죄책감에 시달리다 고통 중에 죽게 하자, 내가 당한 만큼 돌려주자, 내가 아픈 만큼 괴롭게 하자, 백 번 천 번 찾아와서 그때마다 막말을 퍼붓고 가자, 죽을 때까지 찾아와 엄마와 내 억울한 삶을 토하자, 당신 그 얼굴에 당신 그 더러운 양심에 죄다 토해 내자,


당신 스스로 당신의 죄가 너무나 역겨워 스스로 그 냄새에 질식해 죽게 하자, 그렇게 완벽하게 당신을 내 손으로 죽이자, 당신의 온몸을 기계 속에 넣어 뼛가루로 만들어 불에 태워 죽이자, 당신의 인격을 깊고 거친 바다에 날려 다신 세상에 못 오게 하자, 당신의 영혼을 분쇄기에 넣어 갈아 아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자… 그런 마음을 먹기도 하며 살았어. 그날이 올 때까지만 어떻게든 버텨보자 하며 견뎠어. 내가 살아 있어야 당신을 내 손으로 영영 죽여버릴 수 있으니까…

이대로 여기서 수없이 모든 순간 살고 싶지 않았어, 어차피 만나지 않고 평생 살았잖아, 당신의 DNA가 내게 있는 것도 미치도록 싫어서 나 스스로를 증오했어, 솔직히 입양이라도 갔다면 더 낫겠다 싶은 날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 안 보고 살면 매일 화나고 분노하고 그래서 막말하고 때리고, 매일 미움받으며 살지는 않을 테니까! 엄마를 망친 당신 때문에, 내 몸을 내 정신을 내 마음을 내 영을 이렇게 만든 당신 때문에 수없이 죽고 싶었어. 매일 미움받고 매일 거절당하며 사는 게 얼마나 뜨거운 지옥 불을 수없이 맞고 견디는 건지 알아!


얼마나 죽고 싶은 하루하루를 겨우 겨우 버텨내는 건지 알아! 자살하고 싶어도 못 했던 건 당신 때문이야. 어떻게든 죽기 전에 당신은 보고 싶었어. 내가 당신을 죽이고 그다음에 내가 죽어야 공평하니까. 당신 때문에 죽은 인생을 살면서 내 표적은 당신뿐이었어. 당신을 찾아내 내 손으로 먼저 죽이고 그다음에 내가 죽으면 되니까, 당신만 찾으면 됐어. 당신 때문에 자살을 못하고 사십 몇 년을 버텼어. 당신 먼저 죽이고 내가 죽자 그랬는데, 괴물 같던 거인인 당신이… 겨우 고작 기어이 이렇게 작아져서…”

더 이상 말을 못 잇고 이를 물고 참은 눈물을 또 쏟아낸다.


지루성 피부염이 좀 보이는 사내의 얼굴에도 눈물이 흐른다. 내 앞에 더 가까이 있는 크리넥스 박스를 그 사내 앞으로 밀어준다. 티슈로 눈물을 닦은 그 사내가 교도관을 부른다.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인다. 교도관이 종이와 연필을 그 사내에게 가져다준다.

종이에 뭔가를 쓴다. 기다려 본다. 그 사내에게서 어떤 변명이 나올지, 나는 거기에 어떤 원망을 해야 할지, 동시에 두 마음을 준비한다. 그리고 기다려 준다. 나의 온 신경이 하얀 종이와 움직이는 연필에 가 있다. 시간이 흐르고, 종이가 나에게 넘어온다. 종이에 뭐라고 썼을지 너무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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