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엽 일병 구하기!

SES! Self Emotional eating Stop 트라우마다이어트

by 익자

쳅터 4.

구조대(치유의 노력): 제가 전두엽을 되살리기 위해 분투한 과정은 밀러 대위와 대원들의 사투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핵심 전략전술인 자기 글쓰기의 트라우마 치유의 힘에 대하여 쓰고자 합니다. 셀프 감정 식사! 이것을 지금 바로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우리 모두 다를 것입니다.


전두엽 일병을 사지로 몰아가는 도파민과 유일하게 대적하여 승리할 수 있는 무기가 저는 글쓰기뿐입니다. 나쁘고도 달콤한 순간의 유혹, 탐욕스러운 폭식의 습관을 글을 쓰는 시간에는 멈출 수 있었고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식탐의 틈에게서 저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던 '행복하게 맛있는, 미래 상상 일기'를 살짝 공개할까 합니다.


57화. 죽어가는 전두엽 일병을 보라!


누군가의 바르지 않은 마음 너무나 나쁜 마음에서 그 삶이 시작된, 한 여성이 있다. 그 여성은 평생 엄마의 상처까지 온몸과 마음에 지니고 살아간다. 엄마의 부재와 관계 결핍으로 십육 년, 엄마의 새혼 가정에서의 불안하고 불편한 동거 십사 년, 서른 즈음에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행복을 찾아 선택한 결혼과 타국 이주, 원가족으로부터의 상처에 여전히 묶여 높은 무기력과 고의욕 우울과 가면우울에 시달리며 사는 사십 대 중반의 나...

통제하고 조절하려 해도 세운 계획 실천을 감정적으로 빠르게 포기하는 성향, 정확한 진단을 받았지만 기억이 희미하다. 그래도 아마도 INFP인 것 같다. 물론 나는 집 밖에서는 생기가 넘쳤고 두려움 때문에 먼저 다가가진 못했지만 친구와 동료를 참 좋아했었다.

셀프 감정 이팅으로 트라우마로 점철된 과거와 외국인과의 결혼으로 불안정한 의사소통에서 오는 불편한 일상의 현재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끝없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과 아이들의 언어에 매일 소외감과 외로움과 고립감과 모멸감마저 느낀다. 자녀들이 타국인 현지에서 모두 공교육을 마쳐야만 하기에 그때까지는 무조건 내가 참고 견뎌야만 한다는 도돌이표 되는 현실에 대한 각성은 나를 모든 일에서 무기력하게 한다. 동기부여를 했다가도 하루도 못 가서 나의 긍정적 다짐과 일어서려는 의지는 쉽게 꺾인다.


왜 내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꼬여 평생 나만 주체감 자존감 긍정적 자아상 없이 피해자이자 떳떳하지 못한 인간으로 살아가야만 하는지 화가 나고 분노가 치민다. 그럴 때마다 그저 입에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집어넣고 흡입하는 마취제를 맞는다. 과연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끝없는 성찰과 고심에도 답이 없는 현재 상황에 대한 답답함에서 오는 화와 분노와 무력과 우울감, 미래는 지금보다 행복하고 싶은 열망과 미래가 지금보다 행복할까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매일 감정 통제가 어려운 여성 아내 엄마의 삶이 답답하고 부끄러워 그만 끝내고 싶다.


그러나 엄마이기 때문에 함부로 지옥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일할 수 있는 기회 얻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기나긴 겨울을 집에 갇혀 지내는 타국생활이 너무나 힘들다. 유창하지 못하여 그렇지만 언어가 다른 타국생활은 나에게 자기 효능감을 박탈했다. 네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육아는 할수록 자책감이 커진다. 날개가 없으니 아이들에게 천사 같은 엄마가 못 되어주는가. 나만 날개가 없고 다른 엄마들은 모두 날개가 있는 천사 같다.

나만 무능하고 나만 작고 나만 못났고 나만 아무것도 못 한다. 집 안의 온 공기가 내게 그 말을 걸어온다. 집에 혼자 있는 날이면 혼자서 잘 지내지 못하는 내가 밉고 싫다. 글을 쓰면 마음이 좋아지지만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글을 만날 쓰는 것은 정말이지 더 괴롭다. 하여 글을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고 여전히 눈치 보고 사는 내가 미치도록 밉다.


네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엄마로서 더 멋지게 높이 비상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부끄럽다. 날개조차 없고 심지어 집에 갇혀있는 사회적 존재감이 없는 내가 답답하고 밉다.

내가 본 눈치만큼 내가 나에게 눈치를 주게 된다. 경제가치가 있는 일을 하지 않은 내가 밥 먹을 자격이 있는지 매일 묻는다. 그래서 날라면 볶은 땅콩을 배 터지게 먹고 매일밤 만삭의 임산부처럼 부른 배를 보며 자괴감에 빠진다. 내가 나에게 무엇을 주입했고 내가 내 몸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매일밤 마음으로 독설을 날린다. 그리고 또 잔뜩 화가 난 전두엽을 달래려 바삭바삭한 칩 한 사발을 도파민으로 급히 공수해 준다. 스스로 통제불가한 미치광이 먹이를 먹고사는 벌레가 된다.


다음날 만삭 임신부의 배를 거울로 본다. 또다시 미친 몸매의 나를 비관하고 결이 다른 미친 몸매로 거듭나고자 운동을 한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이 타국에 살며 무엇을 위해 운동을 하는가 싶어 운동을 멈춘다. 어차피 버린 몸, 어차피 처음부터 버림받은 나, 어차피 이 타국에서 유배하다 다 늙어서야 한국에 갈 수 있는 나, 어차피 늙으면 죽을 나, 어차피 미움만 받고 사랑은 못 받을 나, 어차피 없어도 되는 나, 어차피 죽어도 되는 나, 어차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 어차피 죽어야 하는 나… 로 생각이 확장된다. 또다시 전두엽이 고통의 신호를 보낸다. 죽을 것 같다고, 죽고 싶다고, 그러나 먹고 싶은 게 많아서 지금은 못 죽겠다고 전두엽이 애원한다. 나는 다시 마취제 같은 날라면과 볶은 땅콩을 주입하고 수혈한다.


전두엽은 이 독 같은 도파민에 취하고 내 몸과 마음과 영혼은 도미노처럼 밀려 쓰러진다. 결혼 전까지 30년은 전두엽의 살려달라는 애원을 무시하며 살았다. 심지어 전두엽 일병이 죽어가는 것도 알지 못하는 무지한 나였다. 결혼 후 15년은 전두엽에 응급처치제 탄수화물만 매일 투여해 주며 살았다. 날라면과 볶은 땅콩에 빠진 지는 5년 이상 되었다. 날라면은 가장 쉽고 빠르게 먹을 수 있고 볶은 땅콩은 가장 저렴한 최소한의 단백질이 있다. 맛있으면서 비싸기까지 한 어떤 음식도 나는 먹을 자격이 없다.


나는 현재 경제적 가치가 없는 사람이면서 과거엔 존재해서도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거나 먹고살되 죽지 않으면 된다. 한국에 가서 평안히 자유롭게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날까지는 버터야만 한다. 한국에 가서 은이 세끼를 온라인으로 주문하여 먹을 수 있는 날까지는 살아야만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나는 한국행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글쓰기는 하지만 아직 책을 출간한 작가가 아니기에 나는 다시 불안하고 그래서 먹고 싶다.


무엇이든 그냥 닥치는 대로 먹고 싶다. 날라면과 볶은 땅콩이 아니라도 바삭바삭한 뭔가 먹고 싶다. 요리와 돈이 없어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나의 애증의 두엽씨를 어서 빨리 달래주고 싶다. 참고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대견하다. 꼭 작가가 되어 내가 살아날 수 있기를 이 순간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

날마다 무기력증과 공허함에 짓눌려 죽음을 꿈꾸는 나로 거의 15년을 살아가고 있다. 이대로 15년을 더 이 타국에서 이렇게 살다가는 두엽씨는 더 버티지 못한다. 하루하루 나의 모든 일상의 감정과 행동을 진두지휘하는 전두엽!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나 전두엽 일병은 꼭 살고 싶어요! 맛있는 것도 먹으며 살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구해주세요!!! 제발!!!!!!!



나 자신이 곧 밀러 대위였다. 라이언 일병을 살리기 위한 모든 구조작전의 시작과 끝을 아우르는 건 결국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만 전장 속에서 죽어가는 용병을 가장 빠르게 살릴 수 있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마지막엔 나이기 때문이다. 돌고 돌아 내가 다시 글쓰기를 선택한 이유처럼.

그때도 여전히 나라는 전두엽 일병은 생사를 오가는 전투에 참전 중이었다. 죽을 것 같으면서도 살아나고 또 살아나고 그렇게 전두엽 일병은 탄수화물이 거의 전부인 전투식량으로 간간히 버티고 있었다. 평생 셀프 감정 식사라는 방패를 들고 자신의 내면과의 전쟁을 하며 전두엽 일병은 어쩌면 죽어간 것이다. 그런 전두엽 일병도 글쓰기를 할 때만은 진짜 행복한 사람이자 군인이 된다. 글쓰기를 하면 잠시나마 눈치 보지 않고 자존감이란 걸 자유롭게 느끼고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왼쪽 눈을 다치기 전 좋은 기회가 닿아 나의 글 꼭지를 온라인 신문에 기고했었다. 화려하고 요란하진 않지만 소소한 일상의 에세이를 썼고 매주 원고가 올라갔다. 눈을 다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쓰고 있었을까 생각해 보지만 아마도 나의 애정하고 애증 하는 전두엽 일병님 때문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통제불가 두엽씨가 갑자기 괴롭히지 않는 나는 글 쓰며 이렇게 행복하고 평온한 사람이었다. 그때의 나도 두엽씨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전두엽 일병이 글로서 얼마나 좋은 사람일 수 있는지 일상 속 짧은 일기들을 공유하고 싶다.


풀잎사랑 대신 그대는 깻잎 깻잎 깻잎!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 한 주 동안 날씨가 참 맑고 산뜻하다. 움츠러든 의지와 구겨지고 모난 마음도 다시 쫙 펴질 것만 같은 오월이다. 아이들은 환절기라 감기에 걸려 콜록거리면서도 한낮엔 짧은 옷을 입고 햇볕 아래서 신나게 뛰어논다. 마당 있는 주택에 사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천국이지만 남편에게는 숙식제공 노동 현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실질적인 주인은 은행이고 남편이 나 홀로 직원이자 현장 소장으로서 살뜰히 집을 관리한다. 비 갠 뒤라 그런지 잔디 깎기부터 주차장 아스팔트 재칠에 자동차 엔진오일 교체까지 할 일들이 줄을 잇는다. 위험성 때문에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는 모터사이클 타이어까지 바꿔야 해서 봄나들이 한 번이 쉽지 않다.

운동신경이라곤 일도 없는 내가 운전이 가능하고 자전거도 탈 수 있으니 다행이다. 집 근처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공원도 최소 세 곳은 있고 운전도 할 수 있으니 급하게 떠나는 피크닉도 가끔 즐긴다. 네 아이들을 데리고 나서야 하는 게 어렵지만 유난히 할 일 많은 짤막한 봄 주말엔 남편에게 일할 자유시간을 줘야 한다. 그래야 주택에 사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여전히 핸들을 돌려 회전하는 걸 무서워하면서도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나서며 집을 비워준다.


꼭 모기지만이 아니라 안팎으로 부지런함이 있어야 주택의 맛을 제대로 느끼며 살 수 있다. 양호한 주택 상태 유지를 위한 관리 보수는 말할 것도 없고 마당이 딸린 주택에 사니 감사하지만 약간의 강박도 분명히 존재한다. 집에서 채소를 키워 유기농으로 식구들을 먹여야 할 것 같은 무언의 무언가가 해가 갈수록 느껴진다. 직접 일군 텃밭에서 각종 채소를 얻어 식구들을 위한 식탁에 올릴 때 주부로서의 어깨도 한껏 올라간다. 그 순간의 행복을 맛보면 절대 한 해 농사로 끝낼 수가 없다. 주택살이의 즐거움을 스스로 찾아가고 작은 성취에 기뻐하며 씨앗의 열매화 과정에 생명 성장의 놀라움에 점점 빠져드는 것이 환영할 만한 일복이다.


주택에 살면 남편이 전담하든 아내와 남편이 분담하든 주택 보수와 유기농 채소 재배가 적절히 균형을 이뤄야 한다. 마당 한쪽에 각종 채소들을 가꾸며 작게라도 농사를 짓고 바지런히 사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주택에 살지 않아도 아파트나 콘도에서도 한국 채소를 직접 키워 드시는 분들이 정말 많다. 항상 그분들의 따라갈 수 없는 열정과 부지런함에 존경심이 인다. 텃밭 농사계의 신으로 우리 동네에서 일명 문익점으로 불리는 한인 언니 덕에 이제 서너 해 깻잎 몇 번 거둬본 나는 명함도 못 내민다.


남편의 한국 음식 사랑, 특히 깻잎 사랑은 못 말린다. 서서히 바비큐의 계절이 오는 게 좋으면서도 깻잎을 먹기 위해 고기를 찾는 남편이 거짓말 조금 보태어 무섭다. 그대는 풀잎 풀잎 풀잎 나는 이슬 이슬 이슬… 풀잎사랑은 싱그럽고 촉촉하기라도 하다. 하지만 꼭 채소 농사를 지어야만 하는 이유는 남편의 한식 사랑 때문이다. 아주 조금은 나를 부지런한 아내로 만들어 버리는 남편의 깻잎 사랑은 아무도 못 말린다. 그러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하필이면 깻잎과 찰떡궁합인 삼겹살의 맛을 그는 이십 대 초반에 벌써 깨우쳤기 때문에.


캐나다에서 한국의 맛에 흠뻑 빠진 남편은 가을이면 마흔일곱 살이 된다. 삼십 년 가까운 내공의 한국인 입맛을 가진 이 중년의 캐나다 남자는 삼겹살도 좋아하지만 깻잎을 더 기다린다. 상추와 깻잎에 편 썬 마늘과 쌈장 그리고 파무침까지 찾는 남편을 어떤 땐 정말 파묻어버리고 싶다. 집 관리도 그렇지만 네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남편의 참여도가 높기에 차마 땅을 팔 수는 없다. 사무치게 타는 속을 그저 내 가슴에 묻어놓고 산다. 정말 봄이 오니 깻잎 키울 생각에 벌써부터 신난 남편이 참 해맑고 사랑스럽다. 글이 더 따뜻해지려면 그렇게 써야 맞는다.


우리 집은 웨스트 아일랜드에서도 거의 끝 쪽에 있어 도시 중심가의 콘도보다도 집값이 저렴하다. 인간의 우매한 생각에서 비롯한 우생학의 개념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금수저 흙수저 정도는 익히 들어 잘 알 것이다. 우생학적으로 보자면 흙수저에 속할지 모르는 남편의 경제적 여건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배우자 기도에서 내가 유일하게 빼먹은 항목이 리치 남편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것만 빼고 다른 모든 것을 들어주신 신께 감사할 뿐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은행에 기대어 집을 장만했고 십삼 년 사이 이사도 여러 번 다녔다. 오 년마다 해야 하는 모기지 변동금리 갱신을 이제야 처음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팬데믹을 지나며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만큼 모기지를 맞이할 신성한 각오가 되어 있다. 그동안 산후 우울증이나 무기력, 이민자 중에서도 더욱 고립자로서의 외로움 등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모기지 상환의 현실과 앞으로도 한참 남은 성실한 대출자의 삶을 생각하니 아찔하면서 정신이 든다. 내면에 대한 각성을 내세워 나 자신을 스스로 극복하려는 의지를 갖기보다 환경을 바꾸려 했던 것이 그저 부끄럽다. 남편은 내적인 아픔에 헉헉이는 나를 받아주느라 속으로는 이사를 반대하면서도 몇 차례 집을 옮겨주었다.


모기지를 극복한 사랑이라니 정말 (우리 부부의)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닐까. 모기지 앞에 서니 별의별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우울한 마음에 이사를 결정한 미친 아내의 뜻을 받아주다니 어쩌면 남편이 더 사랑에 미친 사람이구나’ 싶다. 모기지 앞에서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나라면 그렇게 이사하지 못했을 것 같다. 아내의 말에 빠듯한 급여로 고단한 길을 선택해 준 남편에게 갑자기 더욱 고맙고 미안해진다.

사랑이든 결혼이든 어쨌든 나에게 미쳐있는 사람과 평생을 사는 건 행복한 인생이다. 어떻게든 훈훈한 마무리로 글을 쓰고 싶다. 본의 아니게 오늘은 깻잎에 미친 남편을 돌려 까기 한 것 같다. 캐나다인이지만 삼겹살엔 쌈장을 아는 매운 걸 나보다 더 잘 먹는 이상하고 별나지만 하나뿐인 남편을 사랑한다.


한국에서의 결혼식이 있었던 오월의 어느 날을 시부모님께서 보내주신 축하카드를 받고서야 알아챈 우리 부부. 며칠 전까지 이야기하던 결혼기념일, 서로에게 중요한 날을 잊었지만 주말에도 못 쉰 남편이 안타까워 화도 안 났다. 이제 전우애가 싹튼 것일까. 특별한 날을 아이들의 평화 속에서 아무 투닥거림 없이 잘 지나간 것에 감사한 우리는 칠월의 캐나다 결혼기념일을 기약했다. 그날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일 일도 모르는 것이 인생사, 후회 없이 오늘의 행복을 위해 살고 싶다. 칠월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와 별표를 큼지막하게 해 둔 나는 정말 반전 있는 아내다.


ps, 브런치스토리를 브런치북으로 다시 펴내며...

챕터 2에 이어, 쳅터 3보다 '쳅터 4'를 먼저 모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