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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자

62화. 대파 송송 떡볶이야 기다려줘! 제발...


한국살이를 포기한 채 아니 책 출판의 꿈을 비운 지 2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나이만 두 살을 더 먹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자 무가치한 존재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시간은 참 심술쟁이다. 아침 공복 운동할 때는 정말 천천히 가는데 빵떡면을 먹을 때는 대체 왜 그리 빨리 가는 걸까. 정말 미치겠다. 시간을 붙잡아 두지 못하는 것도 속상하지만 공간에 갇혀 지내야 하는 것도 너무나 힘들다. 언제쯤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시공간에 대해 여유로운 나이가 되면 약에 제약을 받는 노인이 되겠지. 서글플 일만 남은 미래가 그래도 기대된다. 죽도록 아팠던 과거는 지나갔고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는 지금이지만 내일이면 오늘도 어제가 되어 다 지나갈 테니까.


한 달 여 전 새해가 되었지만 떡국도 없으니 심심하게 맞이한 일월 일일이었다. 하마터면 또 미루어질 뻔했다. 작가가 될 기회를 놓칠 뻔했다. 2023년 다 써 놓은 소설 출판을 번복하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상처투성이 소설을 세상에 내어 놓지 않길 잘한 것 같다. 지금보다 세 살 더 어렸던 그때의 글은 지금보다 덜 영글고 덜 단단하다. 씁쓰름하니 달지 않아 맛이 없었다. 2026년 새해가 밝았고 며칠 후면 마흔다섯이다. 정말 완전한 중년기가 시작된다. 더 엄살을 부려서도 안 되고 엄살이 통하지 않는 나이가 아닌가. 언제까지 엄마만 찾고 기다리며 우는 어른아이로 살 것인가! 스스로 큰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가장 용기가 된 건 땡땡이로서의 정체성이다. 비밀보장을 듣는 청취자로서 인생의 자취 하나는 남기고 삶의 문을 닫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당장 천국행은 아니겠지만 느낌이 온다. 몸에서 자꾸 신호를 보내고 마음은 담담하지 않고 답답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음이 다급해진다. 아니 닭발 수육에 김장김치 냉면 두부 때문이다. 마음 따뜻하게 배를 채울 한국음식이 먹고 싶기 때문이다. 정말 하루라도 더 빨리 나를 위한 선물을 주고 싶다. 유한한 시간이기에 더 빛날 유일한 선물, 책이다. 숙이 언니는 말했다.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지 말자. 해 보고 그냥 해!


그래 쓰자. 그렇게 살자 상자를 거꾸로 바라고 바라던 내가 이젠 너무나 살고 싶다. 미치도록 매일 먹고 싶은 한국 음식 때문에 너무나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 상암동 은이 세끼 떡볶이에 워로드 디저트를 먹고 싶다. 이 희망고문이면 앞으로 몇 년은 또 버틸 수 있다. 안 죽고 살 수 있다.


지난 시월의 어느 날, 며칠 동안 하룻밤에 두 시간 남짓 잠을 잘 만큼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침대에 누워서는 뇌로 시계초침을 하나하나 찍으며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과 가을스럽게 쓸쓸한 방 안의 공기를 고스란히 느꼈다. 그리고는 새벽 두 시가 조금 지나 이불을 제치고 일어났다. 발을 떼는데 몸의 중심이 잡히지 않았다. 응급실에 가서 시티 촬영까지 한 결과 마이너 뇌졸증이었다.

시티촬영을 위해 우주선 로켓 같은 동그랗고 긴 통 위에 누웠다. 닭발 제육볶음 두부 쫄면 채소비빔밥 만두 냉면 돼지갈비 보쌈 김장김치 그 외 모든 한국 음식들이 생각났다. 도대체 왜 이 나이에 먹고 싶은 음식도 못 먹고살다 타지에서 허망히 죽어야 하는지 슬픈 화가 밀려왔다. 안 그래도 백수라 자존감이 바닥인데 뇌졸증으로 불쌍하게 꺼져갈 몸과 혼잣말조차 잃어갈 일상이 너무 무서웠다.


몸의 마비와 언어표현의 어려움이 뇌졸증의 대표적인 예후 아니던가. 덜컥 겁이난 건 꼭 그 때문만은 아니다. 안도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하루하루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었던 소원을 이루지 못한 날들이 후회되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복이 꿈꾸던 삶이다. 여전히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사는 내가 참 슬프고 불쌍했다. 무슨 생각으로 이 타지까지 왔는지 서른한 살의 미숙한 선택이 순간 밉기도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종합병원인 채로 평생을 살았지만 그날의 체감온도는 사뭇 달랐다. 남편이야 자기 앞가림을 한다지만 중년의 나이에 아직 중학생 초등학생인 아이들과 초등학교 입학 전인 아이도 있다. 지켜줘야만 하는 존재들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겐 엄마가 있다. 언젠가는 꼭 함께 살자는 희망고문을 안고 지금도 견디고 있다. 콩깍지가 씌었을 땐 아니라고 믿었다. 그러나 돌아보니 엄마라는 희망고문 때문에 나는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제육볶음 양념게장 닭발 만두 두부 어묵 과메기 곱창전골 그리고도 훨씬 더 맛있는 희망고문도 많지만.


그리고 은이 언니 시집가는 것도 봐야 하고 득남도 축하해 주어야 한다. 그러니 나는 살아야만 한다. 건강히 잘 살다가 한국 가서 자전거 여행가로 전국 방방곡곡 맛집을 다니고 싶다. 그때는 육십이 되겠지만 꼬부랑 할머니 되지 말고 꼿꼿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운동을 한다. 날라면과 땅콩의 유혹을 이겨야만 한다. 비밀보장과 함께 늙어갈 수 있어 행복하기에 힘들어도 하루 더 희망고문에 속아본다.


언젠가는 은이 세끼 그리고 전국맛집 도장 깨기 할 거다. 미워도 쉽게 내칠 수 없는 갈색머리 파란 눈의 남편과의 타국살이가 버겁다. 싸우고 투닥투닥 서로 지지고 볶았다 울다가 웃다가 네 아이들의 전투 중재에 하루가 또 간다. 어묵 듬뿍 넣고 은이 세끼 대파 송송 떡볶이 한 냄비 끓여 먹으면 속이 확 풀릴 것 같다. 그 희망고문 때문에 오늘도 견딘다. 마시멜로 인내심 테스트를 거쳤던 아이들처럼 희망고문엔 먹는 게 최고다. 아 또다시 살고 싶어 졌다! 은이 언니 올해 바짝 당겨서 12월 안에 득남 기대해 본다. 그 또한 내게 희망고문이라 좋다. 웃겨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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