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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마반장 감자탕 최화정 낙지 비빔냉면
아이들을 임신했을 땐 세포 곳곳에 침투해 나를 괴롭히던 통증들이 잠시 소강상태에 들기도 했다. 찢어진 마음의 틈 그 통증을 느낄 때마다 마구 흡입했던 날라면과 땅콩을 한동안 입에 대지 않았다. 나를 위한 음식은 아무거나 먹고 요리한 음식도 필요 없지만 아이를 생각했다. 하여 억지로라도 달걀과 양파를 넣은 라면을 거의 매일 끓여 먹었다. 나를 위한 음식에 돈을 쓰는 건 죄이고 요리하기 위한 시간과 에너지 등 모든 것은 불필요한 낭비일 뿐이다.
그러나 임신한 엄마로서 아이를 지키기 위해 쓰레기 같은 날 위해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썼다. 그렇게 네 번의 임신 기간 동안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먹는 나의 점심은 라면이었다. 양파와 달걀로 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덜며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어 감사했다. 혼자 평안히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편안히 식탁에서 먹는 라면이면 충분했다. 쓸 모 없는 내가 임신해서 아이를 품고 있으니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도 남편에게 미안하지 않았다.
돈돈돈에서 평생 못 나오고 상처를 돈 버는 떳떳함으로 버티며 지내는 엄마를 보았다. 그런 불쌍한 엄마를 15년 이상 보고 결혼을 했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으리 수없이 가슴에 새겼지만 나도 돈이 밉다. 돈이 아니면 날라면 땅콩 말고 라면 말고 더 좋은 음식들을 먹으며 태교를 했을 것 같다. 그러나 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며 단 한 번도 돈을 뛰어넘는 식사를 해 보지 못했다.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고 집에서 첫 아이 육아와 둘째 아이 임신 기간을 보내고 있는 내가 식비로 과한 지출은 할 수 없었다. 살아있다는 것이 죗덩이인 나는 천생 아무거나 먹어도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그것이 나의 주제이고 분수이니까. 하지만 아이들을 볼 때마다 십 개월 가까이의 라면들이 생각난다. 지금도 매일 미안해서 내 소원은 하나다. 작가 엄마가 되어 한국에 가서 아이들에게 라면 말고 맛있는 게 너무나 많은 엄마의 나라를 꼭 알려주고 싶다.
아직도 나라는 전두엽 일병은 전쟁에 참전 중이다. 글을 쓰면서도 책으로 탄생할 날은 알 수 없으니 불안하다. 또 날라면을 꺼내 들까 봐 누더기 마음을 글로 따뜻하게 덮어주는 중이다.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로또 번호 발표하는 날을 기다리듯 써 보려 한다. 이렇게 이 순간에도 나라는 전두엽 일병은 오락가락한다. 먹고 싶은 게 많아 꼭 살고 싶듯 전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 꼭 작가가 되고 싶다. 아직은 꿈을 펼치지 못한 채 어제만큼 또 오늘 하루만큼 늙어가기만 하는 지망생이다. 작가가 되고자 국문학도가 되었고 글 쓰는 일 곁을 수년 동안 맴돌며 나이를 먹었다.
졸업장이 꿈을 이뤄주진 않았다. 하지만 문학이 주는 위안의 담역대가 얼마나 깊은지 글이 주는 치유의 힘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번 체감하고 있다. 접어야 하는데도 나의 꿈이 아직도 작가라는 것을 재확인하게 되는 건 쓸쓸한 환희다. 언젠가는 쏠쏠한 환희 소소한 환희의 날이 펼쳐지기를.
눈코입 중에 멀쩡한 곳은 이제 코와 입뿐이다. 그래서 먹고 싶은 것 때문에 죽지도 못하는가. 국밥에 섞박지 얹어 한 그릇 후루루 먹고 싶다. 곱창전골도 먹고 싶다.
눈이 아파서 오래 못 보기도 하지만 영상들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나도 먹고 싶다. 나도 그곳에 가보고 싶고 그 풍경을 눈에 담아보고 싶고 또 그것을 먹어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영상들은 모두 누군가와 어딘가에 이르러 무언가를 먹고 있다. 사람들의 즐거운 표정과 행복한 시공간을 보면 나도 보통의 한국사람이고 싶다.
그런 평범한 하루 같은 정체성을 갖고 싶다. 그렇지만 나는 결국 여기서 유배자로 죽어가는 존재라는 게 되새겨진다. 다시 속 빈 과자로 배를 채운다. 비밀보장 영상과 비보 TV를 보면 한국에 가고 싶고, 한국에 가서 단 한 번이라도 만나보고 싶고, 단 한 번이라도 상담하고 싶고, 단 한 번이라도 맛있는 걸 먹어보고 싶고, 단 한 번이라도 꿈을 이야기하고 싶고, 단 한 번이라도 풍경 좋은 곳이든 병원이든 가 보고 싶고, 단 한 번이라도 의미 있는 일에 함께 참여하고 싶고, 단 한 번이라도 나로서 당당하고 싶고, 단 한 번이라도 나를 사랑하고 싶게 되니까… 하지만, 지금 여기 캐나다에선 아무 기적도 내게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래서 끝내 눈물이 흐르고 울음이 터지고 펑펑 울게 되고, 내가 다시 나를 미워하게 되고, 내가 존경하는 남편에게 화를 내게 되고, 내가 사랑하는 딸들을 버거워하게 되고, 내 삶을 자꾸 놓아버리고 싶다가, 다시 하나님께 매달렸다 하나님을 원망하다 하나님 밖에 없음이 서글퍼 울다, 몸도 마음도 아파서 미치겠고, 이러다 정말 미쳐 죽을 것만 같은데, 너무 힘들어 다 멈추고 싶다가도, 또 정말 빨리 별이 될까 불안한 날들을 살아가니까……. 영상들을 못 본다.
비보 TV를 보면 당장이라도 한국으로 상암동으로 비보 사옥으로 달려가고 싶을 것 같다. 몇 번 영상으로 언니들의 모습을 보았지만 그때마다 눈물이 흐르고 한국이 더 그립고 정말 힘들었다. 은이세끼가 먹고 싶어 더 미치겠어서 차라리 듣던 대로 계속 듣기로 결정했다. 막내 출산과 모유 수유를 마친 뒤 한국에서 잃어버린 고막을 재생하는 수술을 했었다. 몇 개월 전 그 고막이 집을 나간 것 같다. 다시 한쪽 귀가 잘 안 들린다. 소중히 아껴주어야 하는 한쪽 귀가 아직 남아있다. 운동하며 들을 수 있는 비밀보장이 있어 참 다행이다. 팟캐스트만은 영원하길.
비보 땡땡이로서의 품위를 위해서라도 언젠가는 나도 맛있는 음식을 근사한 곳에서 먹고 싶다. 바다 위 파도에 죽을까 겁을 내며 소란스럽던 제자들의 발칙함이 아닌 예수님의 평안을 닮고 싶다. 전두엽 일병이 아무리 지금 당장 구조신호를 보내도 감자칩으로 달래지 않고 싶다. 우장산역으로 가서 마반장 감자탕을 마음껏 씹고 뜯고 맛보고 싶다. 그다음엔 우아한 차분함 속에 낙지가 냉면을 비벼줄 때까지 기다리다 찰지고 매콤 새콤 달달한 최화정 언니의 맛집 그곳에 가서 냉면을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