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토끼

3화 길에서 만난 사람들

by INB Mr




해가 저물 무렵




해가 저물 무렵, 저녁은 생각보다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햇빛이 산 너머로 사라지자 공기는 금세 식었고, 길 위의 돌들은 서늘한 빛을 띠기 시작했지요.

다혜는 발끝으로 모래를 툭툭 차며 걸었습니다.



그 옆에서 룰루홉은 몸을 크게 흔들며 겅충겅충 뛰었고, 그때마다 커다란 두 귀가 허수아비 팔처럼 흐느적거렸습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이곳은 낮엔 엄청 뜨겁고 밤엔 갑자기 추워진다니깐.

완전 극단적인 날씨라고!

나 같은 존재들이야 괜찮지만,

너 같은 아이는 적응하기 힘들잖아?


어때, 얼굴이 좀 빨개 보이는데?

혹시, 감기 기운 있는 건 아니야?


룰루홉의 말에

다혜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어요.


그건 그렇고 말이야!

내 귀는 소리만 잘 들리는 게 아니야,

잘 봐.”


룰루홉은 앞다리로 커다란 두 귀를 날개처럼 들어 올리며 말했어요.


“자, 이렇게 집중해서…….”



“룰루홉, 조금만 조용히 걸으면 어때?”

다혜는 한숨을 쉬듯 말했습니다.


“이렇게 떠들다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떡해?

너, 다른 사람들한테 들켜도 괜찮은 거야?”


다혜의 말에

룰루홉은 잠깐 눈을 깜빡이더니, 괜히 속삭이듯 목소리를 낮췄다가

금세 다시 원래 톤으로 말했어요.


“아, 그건 걱정 마!

난 보여야 할 사람한테만 보이고,

들려야 할 사람한테만 들려.

너한테 처럼 말이야.

우린 그런 존재들이거든! 신비롭지 않니?”

룰루홉이 신이 나서 떠들었지요.


다혜는 대답 대신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마침 하늘에선 조금 전까지도 보이지 않던 별들이 하나둘씩 켜지고 있었습니다.









낯선 기척




그때였습니다.


룰루홉의 두 귀가 갑자기 쫑긋 일어섰습니다.



느리고 조심스러운 두 사람의 발소리,

그리고 작은 짐승의 발굽 소리까지 들려왔지요.


아직 거리가 멀었지만, 룰루홉의 귀엔 낯선 기척이 분명하게 느껴졌지요.


여자의 속삭이는 목소리 들려왔습니다.

“여행이… 쉽지 않네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가죽 부대를 건네는 소리가 드렸고, 여자의 말소리가 이어졌어요.


“나사렛에서 출발한 지 벌써 일주일이에요.

개울도 건너고, 산길도 넘었어요. 그렇죠, 요시?”


이내 여자가 물을 한 모금 마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 아기도… 잘 버텨 주고 있고요. “


그녀는 둥글게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잠깐만 쉬었다 갈까요?”


숨이 가쁜 듯,

여자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습니다.


“그래요, 마리.”


남자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이어졌고,

곧 나귀 고삐를 잡는 소리와

짐에서 양털 담요를 꺼내는 소리가 이어졌습니다.



땅거미가 내려

앞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룰루홉은 모든 일을 보는 듯 다 듣고 있었습니다.




그때, 다혜가 룰루홉의 앞발을 잡아끌며 물었습니다.



“왜 갑자기 조용해졌어?”


다혜가 묻자,

룰루홉은

다혜 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낮게 말했어요.




“쉿. 누군가 있어.

둘…… 아니, 셋이야.”


룰루홉은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도적들은 아닌 것 같은데, 분명치가 않아.”

“걸음 소리가 빠르진 않은데…… 그래도 조심하자.”




룰루홉은 들릴 듯 말 듯 속삭이며, 보드라운 앞발로 다혜를 감싸 안았습니다.






다가온 발소리들





어스름 속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천천히 드러났습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남자,

그리고 그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여자였습니다.

머리를 덮은 베일 사이로 드러난 이마는 작고 둥글었지요.



여자는 땀을 닦다 다혜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멈춰 섰습니다.

다혜도 덩달아 발을 멈췄습니다.

여자의 불룩한 배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임신했어…

엄마처럼….’



다혜의 입에서 작은 혼잣말이 흘러나왔습니다.



“어…… 이건 좀…….”

룰루홉이 다혜 옆으로 바짝 붙어 속삭였어요.



“내가 상상했던 모습이랑은 좀 다르네.”



그 말엔 놀람보다도,

괜히 번거로운 일에 휘말릴지 모른다는 경계가 묻어 있었습니다.



“저분들, 많이 힘들어 보여.”

다혜가 낮게 말했습니다.



“도와주고 싶은 건 아니지?”

룰루홉은 곧장 말을 이었습니다.



“혹시 그렇다면 난 반대야.

우린 지금 다른 일에 휘말릴 시간이 없어.

괜히 여기 온 게 아니거든.”



그러니까 내 말은—

그 순간,


여자가 다혜 쪽을 바라보았고

눈빛이 크게 흔들었습니다.

무언가를 본 듯,

놀란 눈빛이었지요.



하지만 곧 표정을 가다듬고

다혜에게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이렇게 어두운 저녁에,

………. 뭘 하고 있니?”



“아…… 그게…… 사실은요…….”

다혜는 더듬더듬 말을 이었습니다.



“토토를…… 아니, 음…… 잃어버렸어요.

엄마랑……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혜의 말끝이 흐려졌습니다.



“어? 길을 잃었구나?

마을을 찾고 있는 거니?”

마리는 배를 감싸 쥔 채 말했습니다.



“그럼 잘 됐네. 우리도 근처 마을을 찾고 있었어.

아마 이 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그때-




“아앗!”



마리가 몸을 움츠렸습니다.


“마리!”


요시가 급히 마리를 붙잡으려는 순간,

고삐를 놓쳤고,

나귀는 놀라 달아나 버렸지요.







우당탕탕!







그 순간, 룰루홉이 번쩍 움직였습니다.

어떻게 한 건지,




도망치던 나귀의 꼬리를 붙잡고 단숨에 멈춰 세웠습니다.

입은 꾹 다문 채였지요.






“고… 고마워요.”


마리는 숨을 고르며 말했습니다.

“갑자기 진통이 와서…….”



그러다 그녀는

룰루홉을 힐끗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곤 조용히 말했습니다.




“……보였어요……

아까부터……..”




“뭐…… 뭐야?”

룰루홉이 당황해 귀를 움찔했습니다.



“보여? 내가……??”






아이와 함께 읽는 이야기 성경
매주 목요일, 연재 중입니다.






이야기 속 작은 이야기 | 첵트 체크


나사렛은 어떤 마을이었을까?

지금의 나사렛은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인구 약 8만 명의 도시이지만, 1세기 초에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학자들은 당시 나사렛에 수백 명 정도만 살았을 것으로 보고 있지요.
근처에 ‘세포리스’라는 큰 도시가 있었는데, 그곳 사람들 눈엔 나사렛은 작은 촌락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대도시 곁에 있는 작은 읍, 면 단위 마을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요.

당시의 여행은 어땠을까?

지금은 도로와 교통수단이 잘 갖춰져 있지만, 1세기 초의 여행은 전혀 달랐습니다. 유대와 갈릴리 지역의 도로는 대부분 흙길이었고, 비가 오면 쉽게 진흙탕길이 되었지요.

사람들은 주로 걸어서 이동했는데, 짐 때문에 나귀를 데리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나귀는 힘이 세고 온순해서 무척 요긴한 운송 수단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산길과 골짜기도 많아 여행 중에 들짐승, 도적들을 만날 위험도 많았습니다. 지금과 달리, 당시의 여행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조심할 일이 많은, 큰 결단이 필요한 여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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