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잊어먹지 말아야지. 집에 가서 바로 기록해둬야지.
결국 그러지 못했다. 잊어먹지 말아야 할 것, 기록해두어야 할 것은 사실 그의 말이 아니었다. 학대받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는 그의 덤덤함, 좋아했던 형 이야기를 할 때 그의 들뜸, 동성애자로 방황하던 젊은 시절의 아픔, 왕성한 성욕에서 비껴난 현재의 일상과 삶과 죽음, 행복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할 때의 평소 온순한 그답지 않게 단호하고 결의에 찬 눈빛. 잊어먹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것들이다. ‘이런 존재도 살고 있어요’라는 처절한 속삭임이다.
유성원은 동성애자다. <성원 씨는 어디로 가세요?>를 읽고 나서야 그가 동성애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 전에 유성원은 천사였다. 손웅정 작가 사인회 때 300명이 넘는 사람들 사진을 한 컷이라도 놓칠세라 카메라 렌즈에 눈을 갖다 박은 채 쉴새없이 셔터를 눌러대는 덩치가 산만한 대머리 사나이. 파주에서 하동까지 운전해 김용택 시인을 싣고 대구까지, 또 하동에서 파주까지 날라 다니면서도 피곤한 내색없이 겸손하고 예의바르다. 잘나가는 출판사 편집자랍시고 잘난체하는 기색도 없고 올 때마다 고명재 시인 동생이 하는 빵집에 가서 빵을 쓸어담았는지 두 손 가득 빵 봉지를 들고 들어와 나눠먹으라고 내민다. 출판사의 온갖 일을 도맡아 하는 줄은 알았는데 소설을 쓰는 작가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던 그가 소설집을 냈는데 동성애자 이야기였다. 그것도 이만저만한 동성애자가 아니었다. 성실하고 겸손하며 순수한 기운의 그답게 동성애도 성실하고 순수하게 최선을 다한다고 할까. 어떻게 하냐고? 인용은 생략한다. 쓰는 내가 변태 같아지는 것 같아 달갑지 않기도 하고, 인용된 부분만 보면 유성원이 혹은 유성원으로 대변된 동성애자들이 변태, 에이즈 감염원으로 낙인찍힐 것 같은 두려움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책은 잘 읽힌다. 절반이 온갖 종류의 성 행위들이니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세상에 이런 성행위자들도 있구나 놀라면서 읽는다. 인간은 어디까지 추잡해질 수 있는지 읽으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쯤에서 인용을 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생략한다. 동성애자인 유성원의 성 행위에 담긴 자기 존재에 대한 질문과 여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이다. 어느 부분을 덜어내어 보여주어야 할지 딱히 짚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는 다수자의 세계에 속해 있는 사람. 소수자의 세계를 상상해본 적도 없던 사람. 유성원이 북토크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했다.
나: <성원 씨는 어디로 가세요?> 호불호가 강할 것 같은 소설이에요. 하나만 스포 하면 동성애 소설, 그것도 너무나 적나라한. 신청하시는 분들 17일 같이 북토크 가요^^
A: 저는 동성애는 존중하나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B: 동성애는 지지, 반대를 요하는 문제가 아니지 싶습니다. 인간의 존재 요건이 다 다를 뿐이고, 그게 타인의 지지를 혹은 반대에 직면해야 하는 것이 잘못된 거지요.
A: 제 입장은 그 존재 요건의 다름을 존중하겠다는 것이고 지지하지 않음이 잘못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B: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사안이지요.
A: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천적일 수는 있겠으나 그걸 바라보는 관점은 역시 개인의 선택일 뿐이니까요.
북토크 며칠 전 내가 참가하는 독서토론모임에서 화끈한 언쟁이 있었다. A와 짧고 굵게 한판 뜬 B의 반응도 궁금하고 진짜 호모들도 온다는데 어떻게 생겼는지도 궁금하고 시작도 전에 참 궁금한 게 많은 북토크였다.
바깥은 폭우, 호우경보 문자가 10분마다 울리고 뉴스에서는 물난리로 사람이 죽고 실종됐다. 천둥 소리를 들으며 오다가 번개 맞아 죽는 사람은 없겠지 쓸데없는 상상을 하는 동안 하나둘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온다. 에이즈 관련 활동을 하는 레드리본협동조합 대여섯 분이 갓내린 커피, 오미자차, 샌드위치를 박스채 들고 들어온다. 역시 먹을 것이 있으니 분위기가 한층 훈훈해진다.
“아, 어디라구요? 보이는 건물 간판이 뭐예요? 아, 그러면 오른쪽에 하담마트 있는데 정면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아파트 들어가는 길이 보이는데 …”
“그만! 하담마트 계시면 제가 나갈게요. 남자예요? 여자예요?”
“남자, 한 명”
바깥은 여전히 폭우, 남자 한 명이라고 했는데 네 명이 몰려온다. 둘둘 커플일까 설마 넷이 한 커플? 길을 안내하며 폭우 속을 함께 걷는 짧은 시간 동안 그들에게 무심한 척 ‘저는 당신들에게 막 눈길을 주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속으로는 그들의 관계에 대한 별별 상상을 해본다. 샌드위치와 음료를 하나씩 받아들고 다들 자리를 잡았다. 덩치가 산만한 유성원도 자리를 잡았다. 마이크에 대고 한 시간 자기 이야기를 했다. 질문이 있는지 물었다.
- 좋아한 그 형은 어떻게 되었어요?
- 프랑스 작가 누구누구가 어떤 책에서 이런저런 말을 했는데 작가님에게 글쓰기란 어떤 것인지?
- 동성애를 쓰는 건 좋은데 이렇게 적나라하게 쓰면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더 심해지지는 않을지?
- 가족들과의 갈등을 어떻게 대응했는지?
- 소설이 나오고나서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
점잔빼는 대구 사람들답지 않게 질문이 쏟아졌다. 약속된 두 시간 동안 우리 사회에서 배제된, 나도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던 소수자의 서사와 세계를 맘껏 엿보고 상상했다. 무엇보다 그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찾아간 내가 자랑스러웠다. 궁금함에서 출발해 뿌듯함에 도착했다. 톡으로 불꽃튀는 언쟁을 벌인 그녀에게 어땠냐고 물으니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그 말에 더 말을 하지 못했던 게 속상하다고 했다. 여전히 문학소녀답게 여리여리하고 인문학적 교양이 넘치는 언니라고만 여겼는데 이토록 감정적인 사람이었다니 친밀감이 급상승했다. 언니님, 그게 어디 말로 한다고 되겠습니까.
“다 같이 사진 한번 찍을까요? 물론 안 찍으셔도 되고 원하는 분만요.”
책방 대표의 제안에 난생 처음보는 사람들끼리 사진을 남겼다. 며칠 뒤 레드리본협동조합 대표의 말로는 성소수자들은 사진에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는데 사진도 찍고 자기 이야기도 하고 질문도 하는 모습을 활동하면서 처음 본다고 했다. 다들 비슷한 마음이었나보다. 폭우를 뚫고 파주에서 차를 몰고 오면서 오늘도 빵 봉지를 들고 수줍게 책방 문을 여는 유성원은 남자를 좋아하는 동성애자고 여전히 천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