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것과 책을 만드는 것

일곱 난장이 말고 일곱 필자들과 나

by 문학교사 체

어릴 적 가장 강렬한 독서의 경험은 열다섯 살, 내 방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아무 책이나 펴보았다가(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는지 식구들에게 들키지 않게 눈물을 훔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 장의 충격에 울면서 책장을 덮었던 <운수 좋은 날>이었다. 김 첨지가 설렁탕을 사왔는데 아내는 죽어 있고 ‘이 우랄질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고...’ 하면서 김 첨지가 욕을 할 때 눈물이 터져 나와 그길로 계속 울면서 책장을 덮었는지 마저 읽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우주대작가 황미나 님의 <너의 이름은 Mr. 발렌타인>에 비견할 만큼 가슴을 찢어놓는 슬픔과 충격에 그 길로 자연스럽게 한국문학 전집의 세계 속에서 십 대 후반을 살았다. 아버지가 수금 대신 받아온 전집들이 없었다면 나는 주구장창 만화방을 들락거리며 만화책만 보다가 공상에 빠져 공부 못하는 학생이 되었을지, 만화가가 되었을지, 만화방 주인이 되었을지 알 수 없지만 지금과는 다른 내가 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나를 만든 팔 할은 계몽사 전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길로 나는 책과 친한 사람이 되었고 책은 인생 행로의 고비고비마다 비슈누처럼 다양한 모양으로 변신해 나를 즐겁게도 위로하기도 시험에 들게도 했다.


주로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인데 작년 겨울에는 책을 만들 일이 생겼다. 원고를 받아 한 달 뒤 책으로 만들어내야 했다. 물론 내가 맥킨토시(요즘도 쓰나 모르겠다) 작업을 하는 건 아니고 디자이너에게 판형, 색감 등 아웃트라인을 잡아주고 글꼴, 글자 색상과 크기, 사진 질감, 종이, 표지 코팅 종류 등 세세한 것들을 지시, 수정, 점검 또 지시, 수정, 점검하는 일이었다. 디자이너도 나도 서로의 작업 스타일을 어느정도 알고 있어 일에 돌입했다. 그 뒤 한 달은 아뿔싸...의 연속이었다. 일곱 명의 필자들이 스타일이 다 달랐다. 편집자인 나와 디자이너의 방향은 일치시켜놓았는데 일곱 명의 난장이도 아니고 일곱 명의 필자들이 불쑥불쑥 개입해 들어왔다. 각자 나름의 유형이 있었으니


하나, 만사 오케이 유형. 원고 마감 시간에 맞춰 대략 깔끔하게 던져주고 자기 손을 떠났으니 마음껏 하시오. ‘이런저런 걸 수정해 주세요’ 하면 ‘네’ 하고 수정해서 던져준다. 먼저 나서 제안하는 일이 없고 제안한 것만 해서 준다. 필자가 못 채운 건 내가 채우면 된다. 함께 일하기 마음 편하다.

둘, 요것만 지켜주면 오케이 유형. 원고 마감 시간에 맞춰 말그대로 깔끔하게 던져주고 사진 출처는 꼭 밝혀달라 정확하게 요구하고 나머지는 마음껏 하시오. 이런저런 걸 수정해 주세요 할 게 없어 대화할 일 또한 없어 일곱 명의 필자 중 유일하게 얼굴을 모른다. 함께 일하기에 최고의 파트너다.

셋,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유형. 훌륭한 원고를 던져주고 계속해서 수정한다. 편집자인 나보다 더 책에 대해 고민하는 훌륭한 필자로서 다른 사람의 원고까지 다 훑어보고 수정할 방향을 말해준다. 수정할수록 퀄리티는 높아지고 마감이 지나도 계속 수정하고 그러면 또 퀄리티가 아주 조금 높아지고 그래서 또 수정하고. 수정과 진짜 마감의 악순환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전생이 계속 반복되는 지옥에 빠진 느낌이랄까. 많은 대화를 나누느라 힘들지만 책의 일등 공신이다. 함께 일하기 쉽지 않지만 뿌듯하고 즐겁기도 하다.

넷, 까칠하게 도와주는 유형. 원고와 사진을 다 수합하고 보니 사진이 80% 모자란다. 큰일이다. 이때 ‘그렇다면 내가’라며 발품 팔아 가지고 있던 걸 내어주고 편집의 ‘큰’ 틀에 관여하며 문제제기하고 아이디어를 쏟아낸다. 까칠한데 고맙다. ‘내가 너무 까칠하게 봤나?’ 싶었는데 ‘그 사람이 나서서 도와준다고?’라며 놀라는 주변 사람들이 많았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그냥 까칠한 사람으로 평가하는 분위기였다.

다섯, 자기 것만 보는 유형. 일단 요구사항이 많다. ‘전체적인 톤을 맞춰야 해서’ 같은 사정을 이해하기보다 편집의 ‘사소한’ 틀에 관여하며 자신의 작업 방식과 내용을 지켜내고자 한다. 책으로 나왔을 때 자기가 그리는 상과 편집자인 내가 그리는 상이 완전 다르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를 서로 반복하다 책을 계기로 관계는 단절된다. 아마 다시 함께 일할 일은 없을 것이다.

여섯, 사람은 좋은데 유형. 마감을 안 지키는지 못 지키는지 일단 늘 바쁘다. 기다리다 전화하면 사연이 길다. 나중에 요령이 생겨 듣다가 딴 일을 하면서 통화할 때도 여러 번이었다. 셋째 유형만큼 많은 대화가 필요한데 대화의 마지막에야 ‘아,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가 되어 오랜 대화가 끝나면 잠시 누워 휴식을 취하며 기력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도 사람은 좋다고 다들 말했다. 그래도 함께 일 하기에는 ......

일곱째, 다 아우르는 유형. 일단 모든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잡다한 뒤치닥거리들을 마다않고 나선다. 마더데레사급 인성뿐 아니라 실력도 있다. 고퀄리티 원고에 맞게 사진까지 정리해서 준다. 넷째가 발 벗고 나선 것, 다섯째가 결국 한 발 물러선 것, 여섯째가 끝까지 힘을 낸 건 다 일곱째 덕분이다. 물론 그 속에는 함께 일하기에 까칠한 디자이너와 나도 포함된다. 사실 일곱째는 공동 필자이기 전에 책의 기획자이자 발행인이므로 책임감이 남달랐을 것이다.


돌아보니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 여정이 있었고 이 또한 추억이 되었다. 혼자 읽기만 해도 좋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직장이건 동호회건 함께 해야 하는 어른의 시절에 나는 일곱 난장이들 중 어떤 유형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수정은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또 수정하면 수당을 더 주셔야 해요.’라며 매번 실랑이를 하다 ‘딥블루가 잘 빠졌네요’라며 만족해하던 디자이너와는 함께 할 일이 또 있을까. 나는 몇 째 난장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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