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우리: 미국의 대화

by 독서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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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우리>의 작가 클로디아 랭킨은 자메이카 출신의 미국 시민, 흑인, 여성, 시인, 예일대학 교수이다. 미국에서 인종 차별이 어떻게 자행되고 있는지, 백인성이 구석구석 얼마나 크고 넓게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작가 개인의 서사를 통해 치밀하게 보여준다. 문장은 섬세하고 예리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우리나라에서 시인이 사회비평서를 쓴다면 이 정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학교수, 게다가 백인과 결혼하여 살고 있는, 흑인 여성은 대화하고 싶어한다. 백인 여성과 백인 남성과 자신과 같은 흑인 여성과. 대화는 거의 어긋난다. 절망은 사무친다.


‘인종적 상상력이 메말라 버린 백인들과 인종을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지만 우리를 깊은 곳에서부터 뒤흔드는 대화가 없다면 어찌 변화를 꿈꿀 수 있을까?’


여름이 거의 끝나갈 때 책을 읽었다. 내 안의 잠재된 편견들, 표현된 차별과 혐오의 발언들을 끄집어내어 보여주는 것 같아 불편하고 냉탕에 들어가 있는 듯 머리가 쨍하게 깨어나는 책이다. 책이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카프카가 보면 좋아할 책이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났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어렴풋한데 냉수욕의 쨍한 느낌은 남아 있다. 랭킨의 화두 ‘대화’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하게 남는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그러니까 ……”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산책 갈래? 영화 보러 갈래?”

“산책 갈까? 영화 보러 갈까?”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아, 둘 다 상관 없다는 말인데.”

“그러니까 선택해.”


그와의 대화를 옮겨 놓고 보니 낯부끄럽다. 우리의 대화가 이 지경이라니. 여름만 해도 나는 미국의 대화를 걱정했는데 내가 하고 있는 대화라는 것이, 그에 못지 않게 말도 안 되지 않나. 대화로 시작해 언쟁이 되고 마무리는 ‘그래 말을 말자’로 끝날 때가 많다. 그와의 대화가 잘 안 될 때 주로 책임은 끝까지 듣지 않는 나에게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은 놀랍게도 얼마 되지 않았다. 직장에서 큰 목소리로 자기 이야기만 하는 동료를 보면서(보고 싶어 보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는 안 좋은 대화의 좋은 교본이다) 그의 유머와 말투가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음을 알아챘을 때 나는 낯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고, 나와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늘 있었던 동생과의 대화에서는 그의 말을 자르거나 흘려듣기 일쑤였고, 상사가 마음에 안 들면 듣지 않았고, 남편과의 대화에서는 결론을 재촉하느라 또 듣지를 않았다. 제대로 듣지 않는 사람과 대화가 될 리 없다. 대화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틈새는 점점 벌어져 갈라지기 마련이겠지. 그냥 우리, 대화를 시작할 용기와 지혜가 나에게는 필요하다.


‘대화는 말해진 것과 말해지지 않은 것을 흐트러뜨리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대화는 침묵 속에 가둔 것을 드러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2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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