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선생님처럼

송승훈, <나의 책 읽기 수업>

by 문학교사 체

책 대화, 수업 단상


# 국어시간, 또 도서실로 부른다. 귀찮다. 3시간째. 옆에 친구는 벌써 다 읽고 재밌는 책 읽으며 쉬는데 나는 반밖에 못 읽었다. 책 읽는 시간 이번 시간이 마지막인데 다 읽을 수 있을까?


# 사실 선생님한테 얘기하지 않았지만 <아몬드> 1학년 때 읽은 책이라 1시간 만에 다 읽었다. <곤충의 진화> 너무 재밌다. 국어시간에 아무것도 안 하고 도서실에서 책만 읽으니 좋다.

# 도서실에서 책 읽는 건 좋은데 소란한 몇 명 때문에 국어선생님이 화내는 게 듣기 싫다. 국어선생님도 분노조절장애가 있는지 갑자기 화를 낸다. 그 애들은 원래 그런데.


# 책 읽을 때는 좋았는데 질문을 10개나 써내라고 한다. 친구는 막 써내는데 나는 질문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 모둠에서 30개 넘게 질문이 나와서 10개를 뽑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 토의를 하라는데 4명 중에 두 명이 말을 안 한다. 수행평가에 들어간다는데 정말 답답하다. 이 모둠에는 친한 애가 없어서 말을 못 하겠다. 차라리 혼자 하면 좋겠는데……


# 면접시험을 치는 날이다. 앗싸, 2분만 말을 하면 된다. 선생님이 그 순간만 최선을 다하라고 하셨다. 말을 잘한 것 같다.

# 면접시험을 쳤다.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다 얘기했는데 시간이 1분밖에 안 돼서 뒤에는 기억이 안 난다. 수행평간데 망했다.


한 달에 걸친 책읽기 수업이 드디어, 드디어, 끝났다. 이상은 이랬다. 책 읽기(푹 빠져서)-이야기거리 만들기 10개(참신하게)-모둠별 책 대화(열띠게)-대화 내용 타이핑해서 편집(프로페셔널하게)-대화를 글로 보며 고치고 싶은 부분 고쳐서 제출(퍼펙트). 현실은 좌절과 절망, 그런 원대한 이상을 꿈꾼 나 자신에 대한 원망!

무기력하기로 소문난 아이들인 줄 알고 들어갔지만 난감하다. 모둠마다 입을 안 떼는 아이가 있고, 말은 끊어지고, 대화는 아주아주 어렵다. 대화 내용을 기록하라니 말은 안 하고 쓰느라 바쁘다. 오가는 말은 없는데 열심히 쓰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그래, 쓰기를 포기하자. “질문을 가지고 답을 찾기 위한 대화만 한다, 종 칠 때까지 말만 하면 된다, 얼마나 좋노, 실컷 말만 하면 대화평가는 A다.” 쓰기를 포기하니 좀 낫다. 입을 떼지 못하면 책 대화가 아니라 국어 수업을 할 수 없다. 이참에 구술평가를 해봐야겠다. 얘들은 뭘하든 상관없어 보인다.


면접 당일


주사위를 던진다. 나온 숫자에 해당하는 질문에 답을 한다. 시간은 2분. 나머지 아이들은 자기 차례가 될 때까지 모둠별로 연습하면 된다. 면접(구술평가)은 당하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짜릿하다.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므로 평가 점수가 나오면 거의 다 만족한다. 면접을 잘 본 아이도 점수가 나오면 환호한다. 희한하게 아이들은 잘 해도 자기가 잘 못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점수를 다 매기고 나서는 점수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내 생각을 말로 잘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냐 앞으로 살면서 더 큰 면접 볼 날이 있을텐데 그 때는 지금보다는 잘 할 수 있을 거다 하면 대충 수긍한다.

새벽부터 5시간 차를 갈아타고 동네책방까지 오셔서 책 읽기 강연 중인 송승훈 선생님


송승훈 선생님처럼


책 대화와 구술평가는 송승훈 선생님의 <나의 책 읽기 수업>을 응용했다. 한 달에 걸친 책 읽기 수업이 끝나고 한번은 수업 평가를 해봐야 할 것 같아 다시 책을 펴보았다. 밑줄 좍좍 그어가며 빠져서 읽었는데, 이만하면 알겠다 싶었는데, 다시보니 내가 무얼 잘 못했는지 또 보인다. 나이 50이 되면 송 선생님처럼 수업할 수 있을까. 고수를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지지나 않을까. 가랑이 찢어지더라도 송승훈 선생님처럼 잘 가르칠 때까지 파이팅. 인생 뭐 별 거 있나, 수업이라고 뭐 별 거 있나. 해보고 싶은 거 해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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