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는 우리 시대를 신경성 질환들, 이를테면 우울증, 주의력결핍과 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이 지배하는 시대라고 본다. 이 질병들을 일으키는 원인은 자기 착취에 있다. 자기 착취를 하는 우리 사회는 규율사회를 벗어난 성과사회이다.
“그리하여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29p
사색보다 활동하는 편인 나 같은 사람에게 하는 말 같다. 당신은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정말 필요한 일인가!
2.
사서교사인 A는 못 하는 일이 없다. “네, 쌤.” 하며 학교 모든 선생님들의 힘든 일을 도맡아 처리해준다.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도 누군가 하소연하러 오면 들어주고 위로까지 해준다. 각종 부서모임의 간식 준비는 물론, 말만 하면 필요한 수업 자료도 선생님들 책상에 딱 올려놓는다. 심지어는 학교 전체 교실의 환경미화를 공식적으로 A에게 다 맡긴 해도 있었다. 내가 <필경사 바틀비>를 찾으니 A가 반가워하며 말했다. “선생님, 바틀비가 제 롤모델이에요!”
카프카의 <변신>에 버금가는 인생소설.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바틀비가 하는 유일한 말. 원문은 “I prefer not to”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 머리가 어떻게 됐나? 여기 이 서류의 검증을 도와주게. 자, 여기 있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바틀비. 그 서류들을 모두 필사하면 내가 자네와 함께 검증하겠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바틀비. 진저 너트가 없는데 자네가 우체국에 좀 다녀오지 않겠나?”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옆방에 가서 니퍼스 좀 이리 오라고 하게.”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바틀비, 대답 좀 해보게.”
“지금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필경사 바틀비는 급기야 자기 일인 필사도 하지 않는다. 안 하는 편을 택하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문장이 이다지도 후련하고 통쾌한 문장이었던가. 창백한 바틀비는 아무것도 안 하는 아주 큰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낸다. 누구나 꿈꾸지만 하지 못하는 말,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요구를 친절하게 들어주는 A는 오늘도 누군가의 요구를 온몸으로 들어주느라 바쁘다. 언젠가는 바틀비처럼 해볼거라며... 나도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꼭 말해보리라.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