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상상력, 미친 소설
김동식, <양심고백>
<시험국민의 탄생>의 저자이기도 한 선배언니가 국어교사가 꼭 읽어보면 좋겠다며 책을 권했다. 처음 듣는 작가 김동식의 <양심고백>. 지난해 학교에서 나는 이 책으로, 웹툰은 봐도 책을 읽을 수 없다고 스스로 믿고 있던 불쌍한 영혼들을 참 많이도 구제했다. 꼴찌부터 1등까지 도서관은 <양심고백>을 찾는 아이들로 넘쳤다. 사서선생님은 신기한 현상이라며 삑삑- 바코드를 신나게 찍었다.
한 번도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는 작가의 놀랍고 새로운 소설[솔직히 말하겠습니다. 값싼 인력을 구하기 위해 지구까지 찾아왔습니다.]
-중략-
“그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돈 좀 더 버느니, 차라리 버튼이나 누르는 게 낫지.”
“6시면 무조건 칼퇴근이잖아. 저녁이 없던 생활보다 훨씬 만족도가 높아.”
“난 돈을 세 배 더 준다고 해도 전 직장으로 돌아갈 생각 없어!”
기업들은 극심한 구인난을 겪었다. 예전처럼 쓰다가 버리는 값싼 노동력이 모조리 사라졌기 때문이다. 외계 기업과 경쟁해서 살아남으려면 엄청난 보수를 지급하든가, 사원 복지를 최고 수준으로 제공해야 했다. 단번에 그런 변화를 꾀하기가 쉽지 않았던 기업들은 차라리 외계기업을 비판하는 데 앞장서기로 했다. 28p
뒷조사를 해봐야겠다
아, 이건 정말 미친 소설이다. 외계인, 악마는 기본, 자동차와 빌딩이 10달 뒤 아기로 변신하고, 자살한 아이는 태아가 되어 다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고 엄마는 다시 태어나면 잘 키워주겠다고 아이한테 자살하라고 설득하고, FTA 협상도 뽑기로 하고, 반려견 수술비 대주는 조건으로 음성 변조했더니 ‘삼성삼성’ 짖어대고……. 말도 안 되는데(허구-판타지) 왠지 그렇게 될 것 같고(현실-개연성). 종잡을 수가 없다.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두근두근 심장이 뛴다. 작가가 미치지 않고서야! 인터넷을 뒤져 작가 뒷조사를 좀 해봐야겠다.
대학도 못 나왔고 22살 때부터 공장에서 계속 일을 했거든요. 그동안 살면서 읽은 책이 10권도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10년 동안 일만 하다 보니까 같은 생활이 반복되잖아요. 그러면 ‘잡생각’이 많아져요. 그러니까 계속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런 이야기로 영화가 만들어지면 재미있겠다’ 하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오늘의 유머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생각한 것들을 한번 글로 풀어보자, 해서 쓰다 보니까 중독이 됐어요. 10년 동안 공장에서 기계만 돌리고 글을 써본 적이 없으니까, 처음에는 네이버에 ‘글 쓰는 법’을 검색해봤어요. 우선은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고 하고, ‘그래도’ ‘그러나’ 이런 것들을 많이 쓰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알아듣기 간단명료해야 한다고 하고요. 그래서 거기에 나온 그대로 글을 써서 올렸어요. -이미 가장 새로운 시대의 작가: 복날은간다 김동식 작가 인터뷰, 작성자 한기호
2016년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 시작해 350여 편의 ‘이야기’를 썼다. 이틀에 한 편꼴로 썼다는 얘기다. 네티즌들은 환호했고 그는 베오베(베스트 오브 베스트)가 되었다. 현재 그는 출판계에서 핫하다. 지금껏 없던 소설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나는 그의 등장에 환호를 보내지만 국어 교사로서 한편 나는 그의 등장이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소설이 뭐지?
소설 구성의 3요소? 인물, 사건, 배경? <양심고백>에는 도저히 적용이 안 된다. 인물에 대한 정보도 묘사도 없고, 사건은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개연성도 없다. 시간적 배경 공간적 배경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다. 소설의 구성 단계?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처음부터 위기, 절정으로 치달아 바로 결말이 나버린다. 기존의 소설 개념으로 도저히 분석이 안 된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어떤 소설보다 흥미진진하며 풍자와 성찰까지 겸비하고 있다. 내가 배웠고 또 가르쳐온 소설의 개념이 앞으로도 유효할까 질문하게 된다.
‘小說’이란 말그대로의 뜻을 그대로 시시껄렁한 이야기, 크고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라 보잘것없는 이야기라고 보면 <양심고백>이야말로 매우 소설답다. 노벨문학상의 그 노벨과는 전혀 별개다.
하하. 제가 인터뷰를 해도 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요.
작가라고 불러주시는 것도 그렇고요.
인문학 책을 초판 5백 권씩 찍어내도 안 팔리는 세상에 초판 6천 권을 찍고도 모자라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말치고는 참으로 겸손하다. 1985년생, 베오베에 불과했던 김동식은 글쓰기 경력이 2년밖에 안 되지만 그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이야기들은 실로 엄청났던 것 같다. 그것이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21세기적 환경을 만나 피운 소설이라는 꽃을 피웠을 뿐.
사실 생각해보면, 나는 국어시간 교실에서 ‘지금껏 없던’ 이야기들을 수두룩하게 만났다. 재미로 웃어넘길 때가 많았고, 앞으로 갈고 다듬으면 유명한 작가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잠깐 생각이 스쳤던 아이들도 몇 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이미 수많은 이야기들이 잠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독자들에게 맞춤법을 배우고 소통하며 글쓰기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김동식의 말에서 나는 국어교사로서 내가 가르쳐온 것들을 돌아보게 된다. 이 아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배우도록 해야 할 것인가. 내가 잘못 가르쳐서 아이들의 잠재된 이야기들을 죽여버린 건 아닌가. 지금 현재 교실에 앉아 있을 수많은 김동식들을 死藏시키는 글쓰기 교육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