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의 즐거움과 어려움
유정아, <서울대 말하기 강의>
#고백
나는 말하기 불안증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발표 시킬까봐 선생님이 나를 쳐다볼 때면 고개를 떨구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할 일이 없어 큰 불편함 없이 살았으나 한번씩 사람들 앞에서 말할 일이 있을 때는 또 불안했다.
사범대 편입해서 4학년 때 교직 수업은 한 학기 내도록 발표 수업이었다. 심지어 교사가 되었다 생각하고 앞에 나와서 한 명씩 수업 시연을 하는 수업이었다. 대본을 외우고 또 외우고. 그런데 대본을 달달 외울수록 불안감은 더 커지고 목소리가 떨렸다. 아주 중요한 발표라 우황청심환을 먹었다. 신기한 게 하나도 안 떨리고 말이 술술 나왔다. 발표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렇지만 나는 기쁘지 않았다. 운동선수가 약물복용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자책감이 들었다.
교생실습 때는 제비뽑기를 잘못 해서 국어과 교생 대표수업을 하게 됐다. 실업계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 반이었다. 아이들이 호응을 잘 해주어 무사히 끝이 났다. 그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교사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교사가 되어 수업 첫날은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힘들다고 하소연할 틈도 없이 하루종일 바쁘게 돌아갔다. 학년이 바뀌고 첫 수업은 언제나 긴장된다. 그래도 수업은 나와 아이들 뿐이고, 집에서 가족들과 말하면서 긴장이 안 되는 것처럼 익숙한 관계여서 크게 긴장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말하기 불안증을 갖고 있는 내가 국어시간 말하기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다.
#제안
제주도로 떠나기 며칠 전 대학강사인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교육철학 수업에 와서 현장교사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것이었다. 못 한다고 했다. 한 번 해봐라,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다고 하시는데 또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알겠다고 해버렸다. 그때부터 걱정과 불안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한 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있었다. 직업이 교사인데 말하기를 두려워하면 그건 좀 아니지 않나. 사범대 학생들 앞에서 ‘교사란 무엇인가’ 강의를 해야 된다고 하니 친구는 미쳤다고 했다. 애도 안 낳아본 사람한테 애 낳을 때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그렇다. 하지만 기차는 떠났고 나는 내 말에 책임을 져야 했다. 대학 강의는 내가 생각해본 적이 없는 또다른 말하기를 요구했다. 수업은 45분 동안 아이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쉴 틈이 있다. 그런데 강의는 60분을 혼자, 그것도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의 준비
예전에 사 놓고 읽지 않았던 <유정아의 서울대 말하기 강의>를 이참에 읽었다. 말하기 불안증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걸 알았다. 저자는 학기 초 첫 과제로 자신이 겪는 말하기 불안 증상을 발표하게 한다고 한다.
“말하는 것이 불안할 때 어떤 육체적 증세가 나타나고 그 증세는 어떤 상황에서 특히 자주 나타나는지, 그러한 불안을 느끼는 심리적 원인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그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지 생각해와서 발표하는 것이다. 말하기 불안을 극복하는 데는 자신이 말하기 불안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받아들이는 것만한 왕도가 없기 때문이다.” 51-52p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불안증이 있다는 게 위로가 되었다. 불안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는 상황도 사람마다 다른데 많은 이들이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을 힘들어하는데, 발표하는 건 편하지만 대화나 소집단 안에서 회의를 이끌거나 의견을 말해야 할 때 부담스럽다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고 한다. 어느 것이 나을까 생각해보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할 일을 잘 없으니 그 불안증이 낫다 싶기도 하다. 책은 실전에도 도움이 되게 잘 정돈되어 있다. 하지만 결국 불안증을 극복해야 하는 건 책이 아니라 자신이다.
#준비
처음으로 말할 내용을 적어보았다. 노트에 연필로 죽죽 써나갔다. 이만하면 잘 썼다 싶어 타이핑해보았다. A4 3쪽. 말로 해보니 20분도 안 돼서 끝나버렸다. 60분의 부담감이 몰려왔다. A4 여섯 쪽으로 이야기를 늘리고 중간중간 시 낭독을 넣으면서 구성을 약간 바꾸어 보았다. 훨씬 좋아진 것 같았다.
말할 내용을 준비해놓고 시간을 재가며 연습을 했다. 앞부분이 특히 어버버 하면서 어려웠다. 60분 강의를 네다섯 시간은 연습을 한 것 같다. 한 번에 60분을 통째로 연습하는 건 잘 안 되고 막히는 부분을 반복해서 연습하다 보니 흐름이 끊겼다. 머릿속에 말할 내용이 전반적으로 자리잡은 것 같았다.
#실전
생각보다 많이 떨리지 않았다. 앞에 10분 정도가 말끝이 약간 떨렸다. 내가 긴장하고 불안해하면 듣는 사람이 더 불안해지는 것이 보였다. 5분 정도 지나니 평화가 찾아왔다. 그때부터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몸에서 에너지가 생겨나는 느낌이 들었다. 질의응답은 아주 편하게 말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성찰
강의 주제는 교사론이었다. 강의 원고를 쓰면서 20년의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하나도 버릴 시간이 없었다. 내가 지나온 사람들, 경험들, 생각들, 느낌들. 이것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음을 아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대학 강사로 빠듯한 선배는 자신의 강의료를 나한테 주었다. 이런 걸 잘 거절하지 못해 그냥 받았다. 사실은 내가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풋풋하고 맑아보이는 청춘들 앞에서 강의하게 된 과정을 통해 나는 말하기 불안증을 어느정도 극복한 것 같다. 불안한 자신을 인정하기, 준비 또 준비하기, 긍정적인 미래를 그리며 마인드 컨트롤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