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과 능력은 왜 비례하지 않는가?
최동석,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중고생 희망 직업 1위는 공무원이다. 꿈이 없다고 하는 아이들은 장래희망란에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대개 ‘공무원’이라고 쓴다. 이유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는 개뿔, ‘그냥 편해서’다. 공무원은 사실 편하다. 아니라고 발끈하는 사람은 아마 말단일 확률이 높다. 소방공무원, 집배원, AI검역원 등 말단공무원이 종종 과로사했다는 뉴스는 있어도 고위직 공무원이 과로사했다는 뉴스는 눈 씻고 봐도 없다. 그들은 고상하게 신문도 보고 자기 방에서 커피도 마시고 손님도 접대하고, 주로 하는 일은 부하들이 들고 오는 결재 서류판에 사인을 하는 것이다. 하루에 한 30번쯤 사인을 한다 치면 30번쯤 바쁠 것이다. 공무원의 세계는 위로 올라갈수록 편해진다. 그래서 다들 기를 쓰고 승진에 목숨을 건다.
고위공직자들이 편해진 결과 우리사회는 부패하고 위험해졌다. 저자는 묻는다. 왜 그랬을까? 해경은 왜 그랬을까?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민간잠수사 어선, 어업지도선이 몰려오고 해군 SSU와 UDT 요원들도 있었고, 훈련 중이던 미 해군도 인근에 있었는데 왜 듣도 보도 못한 ‘언딘’이라는 구난업체가 오기만 기다렸을까? 유가족의 오열 속에서 서남수 교육부장관은 의전용 탁자와 의자에서 천연덕스럽게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것이 여론에서 큰 문제가 되자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라면에 계란을 넣은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고위공직자들은 왜 그랬을까? 책의 결론은 한 마디로, 우리 사회의 ‘결재’ 시스템 즉 품의제도에 그 원인이 있으므로 '우리 민족을 파멸로 이끌고 가는’ 이 제도를 당장 폐지하라는 것이다.(문서를 최초에 만드는 행위를 기안이라고 하며, 이 기안된 문서를 품의서라고 한다.)
상관은 부하가 만든 품의서를 읽어 보고 마음에 흡족하지 않으면 품의내용을 고쳐서 부하에게 돌려줍니다. 그 부하는 상관이 고친 그대로 품의서를 다시 만들어 상관에게 올립니다. 상관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품의서가 꾸며졌으면, 그 품의서에 서명하거나 도장을 찍어 줍니다. 이것을 결재라고 합니다. 198~199P
상관은 자기 위의 상관에게 위의 과정을 또 되풀이한다. 부하가 했던 것과 똑같이 ‘어찌 하오리까’의 형식을 취하면서. 지난 해 나는 학교에서 100건 정도 기안을 해서 결재를 받았다. 업무량이 많은 교사는 200건도 넘는 기안을 올린다. 기안서는 오탈자는 기본, 줄간격, 앞줄 들여쓰기, 글자체까지 기준에 맞게 통일시켜야 한다. 기안서를 올리면 부장-교감-(행정실장)-교장까지의 단계를 거쳐 결재가 완료된다. 주변 교사들의 협조를 받아야 할 때면 협조자도 대여섯 명씩 사인을 받아야 결재 라인이 위로 올라간다. 교장의 최종 결재가 떨어지면 비로소 그 업무를 추진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긴다. 최종 결재권자인 교장은 자기 방에 앉아서 학교의 모든 업무 진행 정도를 다 파악할 수 있고, 최하위 기안자들은 전체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고 해당 업무를 해내느라 미친 듯이 바쁘게 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자율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면 안 된다. 최종 결재권자가 교장인데 그 취향에 맞추는 게 능력이지 일개 기안자 주제에 자율성과 창의성이라니 개풀 뜯어 먹는 소리다. 한 마디로 품의제도는 ‘권한은 위로 집중시키면서 책임은 아래로 분산’ 시킨다.
이런 실정이니 아랫사람들은 자신이 책임질 어떤 일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되, 책임지지 않을 일만 하니까 그것을 복지부동이다 뭐다 해서 야단법석을 떠는 겁니다. 또한 아랫사람의 공적을 윗사람이 가로채는 것을 당연시하는 제도가 품의제도이기도 합니다. (중략) 윗사람들은 아랫사람의 아이디어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품의제도란 그 특성상 개인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212~213P
상관이 하루 종일 신문이나 뒤적거리면서 지내도 그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부하들이 하고자 하는 어떠한 아이디어도 상관의 도장이 없이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상관은 주어진 일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부하들이 다 알아서 만들어 오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지위가 위로 올라갈수록 더 편하고, 더 많은 권력을 누리고, 더 많은 보수를 받고, 더 많은 아랫사람들을 거느리고, 책임은 오히려 줄어드는 제도가 품의제도입니다. 올라갈수록 공부에는 손을 놓고, 윗사람 비위 맞추기, 눈치 보기, 원만한 대인관계와 외교술을 몸에 익히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다른 선진국에 비해 부가 많을수록, 지위가 높을수록, 지식이 많을수록, 말하자면 가진 것이 많을수록 도덕적 의무감이 결여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런 데서 초래된 것입니다. 230~231P
기안자부터 검토자, 결재자까지 조직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진 결과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특정한 누구에게 책임을 추궁하기 어려운 것도 품의제도의 나쁜 점이다. 세월호 때에도 박근혜는 해결책으로 해경이라는 조직을 해체했을 뿐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충격적인 것은 이런 품의제도가 있는 나라가 전 세계 우리와 일본뿐이라는 사실이다. 결재라는 단어는 영어로 번역도 안 된다. 나의 아이디어, 의사를 누가 결정해준다는 걸 그들 사고방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개념 자체가 없다. 더 충격은, 나름 비판적 사고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나’는 한 번도 품의제도 자체에 의문을 가져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교라는 조직 안에서 매일 품의서를 만들고 결재를 받으면서, 그것도 15년씩이나 말이다. 15년 동안 바뀐 상사의 취향을 알아맞히는 동안 나의 정신세계는 서서히 질식해가고 있었을 것이다.
사회 부정부패의 원인이 품의제도에 있으므로 결론은 간단하다. ‘조직이 아니라 그 조직에 속한 각 개인이 자신의 인격과 명예를 걸고 내린 의사결정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업무를 한 사람이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담당자가 전문가가 되고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작은 조직부터 정부 조직까지 하루 빨리 논의를 시작해야겠다. 책의 에필로그에 나오는 예시를 읽으며 또 한번 가슴이 미어진다.
2011년 9월 6일 자정을 막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여수 남쪽 73km 해상에서 부산-제주-여객선 설봉호 1층 화물 창고에서 원인모를 불이 났습니다. 삽시간에 여객선 전체가 매캐한 연기에 휩싸이고 선미갑판이 화염에 휩싸이는 바람에 대피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원들의 적절한 대응, 질서정연한 퇴선, 재빠른 구조의 3박자가 척척 맞아떨어졌습니다. 화재경보음이 울리자 당직선원은 곧 선장에게 화재 사실을 알렸고, 선장은 즉시 해경에 신고하고 선원들을 정 위치에 배치했습니다. 동요를 막기 위해 선실을 돌며 조용히 상황을 알리고 승객들에게 구명동의를 지급한 뒤 안전한 대피로를 통해 4층 선수갑판으로 유도했습니다. 탈출용 비상 사다리가 내려지고 구명정이 펼쳐졌습니다.
신고를 받은 해경이 급히 출동하면서 해군에 상황을 알렸습니다. 인근에서 작전임무를 수행하던 해군 함정이 먼저 현장에 도착해 서치라이트를 밝히고 구조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고속단정을 접근시켜 바다에 뛰어내린 승객들을 건져 올렸습니다. 뒤이어 해경 경비정 등 30여 척이 몰려들었습니다. 여객선 화재 진압에 나선 배, 구조 활동에 나선 배, 구조 승객을 수송하는 배가 모두 제 역할을 하기에 바빴습니다. 공 다툼, 높은 사람 의전 같은 것은 의식 속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승객들은 노약자와 부녀자들에게 앞자리를 양보했습니다. 마지막 노약자를 탈출 시키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바다로 뛰어든 승객도 있었습니다. 구명정을 타고 밤바다를 떠돌던 승객들도 차례차례 구조되었습니다. 2시간여 만에 승객 전원이 구조된 이 쾌거는 기적으로 표현 되었습니다. 육지와 더 멀리 떨어진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에서 벌어진 설봉호 사건에 비해 세월호 사건은 육지에서 훨씬 더 가까운, 훤한 아침의 잔잔한 바다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충분한 시간적 여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배 안에 있는 승객 중 단 한사람도 살려 내지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도대체 어디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요?
저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윗사람들이 세월호 사건에 개입했기 때문입니다. 설봉호는 윗사람들이 개입할 여유가 없는 자정이었기 때문에 해경과 해군의 아랫사람들이 스스로 자율적으로 판단하여 신속하게 처리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해답이라고 봅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영혼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선한 의지가 있습니다. 263~26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