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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교사 체 Jun 24. 2020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이기호,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색노란색 표지를 두른 띠지에 쓰여 있다. ‘이기호 5년 만의 신작 소설집!’ 출판사가 문학동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번쩍이는 에메랄드빛 제목. 사라 사! 구매욕이 불타오른다. 5년 ‘만에’ 신작을 냈다고 문학동네에서 띠지에 두를 정도라면 꽤 유명한 작가인 모양인데 왜 나는 ‘이기호’를 모를까? 순간 자책한다.  


첫 번째 단편 「최미진은 어디로」를 읽으면서 나는 이기호에게 반해버렸다.     

지난달 중순 무렵, 외장 하드를 사려고 우연히 중고나라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누군가 내 책을, 그러니까 이 년 전에 나온 내 장편소설을, 염가 판매하고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이디가 ‘제임스 셔터내려’인 열심회원이 올린 글이었는데, 그는 내 책 말고도 쉰 권이 넘는 소설책과 스무 권가량 되는 철 지난 계간지를 팔고 있었다. 소설책은 그룹 1, 그룹 2, 그룹 3 하는 식으로 구분을 지어 칠천원, 오천원, 사천원 각기 다른 가격을 매겨놓았고, 계간지는 이천원 단일 가격이었다. 
내 책은 그룹 3에 속해 있었다. (중략) 이를테면 그룹 1에 있는 박상륭의 『열명길』 같은 책에는 “압도적인, 전설의 시작”이라는 글귀와 함께 “그래서 7000원”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중략) 그룹 2에는 가장 많은 작가가 포진되어 있었는데, 바르가스 요사도 있었고, 이노우에 야스시도 있었고, 이반 투르게네프와 은희경, 이승우도 있었다. 그룹 2에 포함된 작가들에 붙은 코멘트 역시 “세계의 나쁜 본질이 이 한 권에!” “상실을 긍정하는 힘”처럼 칭찬 일색이었다. 
그리고 문제의 그룹 3…… 사천원에 팔고 있는 그룹 3…… 나는 마우스 휠을 돌려 내 소설책에 붙은 코멘트를 가장 먼저 확인했다.       
49. 이기호/병맛 소설, 갈수록 더 한심해지는, 꼴에 저자 사인본(4000원-그룹 1, 그룹 2에서 다섯 권 구매시 무료 증정)    9~11p        
-혹시, 직거래도 가능한가요? 집에 택배 받을 사람이 없어서요. 
‘제임스 셔터내려’는 십오 분쯤 답이 없다가 다시 문자를 보내왔다. 
-일산 정발산역 근처라면 가능합니다. 
-아, 그래요? 잘됐네요. 저도 그쪽 근처인데 직거래하시죠. 
나는 그와 약속 시간을 잡았다. 이틀 후인 목요일 오후 두시, 정발산역 2번 출구 롯데백화점 정문 앞. 나는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한데, 그룹 2에서 다섯 권 구매하면 이기호 소설책은 무료 증정이라고 했는데……
-아, 네. 그것도 갖고 나갈게요. 그건 어차피 서비스니까요. 
어차피 서비스, 어차피 서비스…… 나는 그가 보내온 문자를 오랫동안 노려보았다. 15p


결국 이기호는 제임스 셔터내려를 만난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문체를 만났다. 기운이 좋은 사람을 만난 것만큼이나 큰 수확이다. 킥킥 웃음이 새나오는 부분이 많다.      


그날 밤, 나는 평소보다 일찍 안방 침대에 누웠다. 침대엔 아내와 막내딸이, 침대 아래 방바닥에는 올해 열 살 된 첫째 아들이 마치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둘째 아들은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의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12p    


아, 소설가 말고 누가 이런 고급스런 유머를 구사할 수 있단 말인가! 웃기기만 하는 건 아니다.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 내 삶의 파편들이 묻어있다. 


용산 참사 때 속도위반으로 공익과 시비가 붙어 참사 현장에 못 온 크레인 기사 나정만,

사채업자에게 떼인 돈을 받기 위해 사채업자의 노모가 사는 허름한 아파트 입구에서 침묵 시위를 하는 권순찬,

등록금도 주고 용돈도 주는 착하고 성실한 남편을 살해한 김숙희,

히잡을 쓰고 학교로 출근한 교회동생 윤희에게 조언을 해주러 갔다가 ‘오빠가 어떻게 저한테 삼 년 만에 찾아와서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냐’고 욕만 먹고 돌아간 강민호,

왕따 문제로 학폭위에 연루되었다가 어린 게 염치도 없다는 ‘나’의 말을 듣고 집을 나간 아내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친척오빠의 딸 초등 6학년 한정희.


단편들은 모두 실제로 있을 법하면서도 어딘가 드라마틱하다. 사는 게 그렇지 않나, 지루함과 드라마틱함의 시소 타기 같은 것. 무게 중심을 잘 잡기 위해, 편안해지기 위해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하며 균형을 잡아 나가는 것.     


단편 하나를 읽고 나서는 잠깐 책장을 덮고 숨을 고른다. 저렇게 술 마시고 나정만은 아침에 또 어떻게 일 나가지……, 권순찬은 돈도 한 푼 못 받고 어떡하지……, 김숙희는 아무리 그래도 남편을 죽이지는 말았어야지……, 강민호 이 인간이 윤희에게 비키니를 사 준거야?, 한정희 정말 억울했겠다……. 책을 읽는 일주일 동안 이들의 사연을 들으며 나라면 어땠을까 이입하게 된다. 

  

많은 인물들 중 왜 책 제목에 강민호를 언급했을까? 작가는 남편을 살해한 김숙희보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가 실은 더 나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김숙희는 공소시효를 3개월 남겨두고 자수했다. 수치스러워서 염치가 없어서 자수를 하고 진술서를 쓴다. 소설 속 이기호는 모욕을 당할까봐 모욕을 먼저 느끼고 되돌려주려 한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강민호는  윤희가 왜 자기에게 화를 내는지 끝까지 이유를 모른다. 윤희가 히잡을 쓴 게 강민호와 연관되어 있을 것 같긴하다. 윤희와 강민호의 아내가 똑같은 분홍색 스트라이프 비키니를 입었다는 사실을 단서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강민호의 친절로 윤희의 인생이 꼬인 게 아닐까 싶다. 김숙희의 남편은 ‘부끄러워하는’ 아내를 ‘바라보기만’ 하다 아내에게 살해당했는데 그렇게 보면 강민호도 살해당할 위험성이 아주 크다.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푸는 가벼운 인간이기 때문에. 친절한 교회 오빠들은 꼭 읽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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