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일주일은 바이칼

송영우, <인생에서 일주일은 바이칼>

by 문학교사 체

이맘때 쯤 시베리아횡단열차 티켓을 알아보느라 들떴겠다. 난생 처음 보는 러시아어는 상형문자만큼이나 생소한데 러시아 철도청에 들어가서 예매를 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러시아 안에서도 시차가 7시간이나 나기 때문에 예매 시간을 모스크바 시간으로 계산하는 게 특히 어려웠다. 순간의 실수로 열차는 떠나고 텅빈 역에 덜렁 남을 상상을 하면 긴장이 됐다. 바이칼을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떠나게 된 러시아 여행. 초등 아들 둘을 데리고 우리가족은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탔다.


시베리아횡단열차 시작점 블라디보스토크역. 밤 11시 탑승 전


시베리아횡단열차 내부. 우리가족이 머물렀던 4인실 쿠페. 그 불편함마저 그립다.


벌써 3년 전 여름. 러시아는 막막했고 낯설었다. 와이파이 데이터 짧은 영어 모두 소용이 없었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대신 온전한 시간과 풍경을 던져주었다. 불편했고 아름답고 편안했다.


심리적 거리가 무색할 만치 러시아는 가까웠다. 비행기로 금방일 거리를 우리는 3일간 열차를 타고 바이칼이 있는 이르쿠츠크역에 내렸다. 3일만에 내려야 한다는 게 너무 아쉬울 지경이었다. 덜컹거리는 열차, 창 밖으로 끝없이 이어진 자작나무들을 보며 빠져드는 한가롭던 낮잠의 달콤함은 잊을 수 없는 행복한 기억이다.


마침 날씨가 좋아서였는지 바이칼은 이 세상 풍경이 아닌 것 같았다. 3일간 바다 같은 호수를 보고 또 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이곳이 생명의 시원임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7살이던 막내는 이제 어엿한 초등 3학년이 되었고 큰애는 중학생이 되었다. 아이들은 횡단열차를 또 타고 싶어한다. “더 커서 다음에는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친구랑 가.”라고 했다. 나도 눈치가 있지. 어리니까 마음껏 데리고 다닐 수 있었지 중학생만 됐어도 4인실 쿠페는 답답했을 것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바이칼 호수. 알혼섬
바이칼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알혼섬
바이칼 호수에 몸을 담그면 젊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호수, 호수, 호수
알혼섬 북부투어


열차에서 할 일이 없어 나와 남편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아이들은 그림을 그렸다. 에어팟도 태블릿도 몰랐던 아이들, 와이파이 데이터 없이, 게임 유튜브 없이도 괜찮을 수 있는 경험을 앞으로 또 할 수 있을까? 시베리아횡단열차의 기록과 바이칼에 대한 이야기를 남편과 같이 써보자고 했다. 기억에만 맡겨두기엔 각자의 추억으로만 간직하기엔 시베리아횡단열차와 바이칼이 남겨준 게 너무 많았다.


일상으로 돌아와 또다시 바쁜 나날들이 이어졌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이 지고 선선한 바람과 함께 남편이 메일을 보내왔다. ‘한번 읽어봐.’


메모로만 남겨두기엔 너무 좋은 글이었다. 전직 편집자의 실력을 발휘해 나는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책으로 출간했다. 독립출판을 하기에는 편집 실력이 안 돼 편집과 디자인은 다른 분께 맡겼다. 출간을 목적으로 떠난 여행이 아니었기에 이미지 사진이 부족했다. 대신 초등 5학년 아들이 심심해서 그린 그림과 메모를 넣었다. 전문 편집자가 아님에도 애정을 갖고 꼼꼼하게 편집하고 책 등록까지 해주었다. <인생에서 일주일은 바이칼>이 세상에 나왔다.


지난해 텔레비전에서 <시베리아선발대>를 보며 시베리아횡단열차 여행의 추억에 온가족이 행복했다. 올해는 떠날 수 없는 아쉬움을, 남편의 글과 사진으로 달랜다. 언젠가 다시 떠날 수 있기를. 그때는 또 행복하기를.


keyword
작가의 이전글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