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일까?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아는 만큼 보인다.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유홍준 교수의 말을 처음 들었을때 아! 감탄사를 내뱉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신드롬을 일으키던 때였다. 그맘때 서울 미술관 투어에서 가이드를 했던 교수가 말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잘못됐다. 보는 만큼 알게 되는 것’이라고. 나는 또 아! 감탄사를 내뱉었다.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결국 후자의 편에 섰다. ‘보는 만큼 알게 된다’고 믿고 열심히, 부지런히 보고 다녔던 것 같다. 그때는 20대였다.
워킹맘으로 직장과 가사에 미친 듯이 시달릴 때 유일한 탈출구는 ‘여행’이라는 이름의, 집과 직장, 나의 생활터전에서 멀리 떨어져나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휴직을 하고는 시간이 있는데도 여행의 욕구가 크지 않았다. 이제 워킹맘으로 돌아갈, 직장과 가사에 미친 듯이 시달릴 시기가 다가오니 벌써부터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남들 다가본 교토에 한번 가고 싶어졌다. 교토 책을 뒤지다 유홍준의 책을 발견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교토편>이 있었다. 답사기 신드롬일 때 막상 그 책에서 감흥을 못 느꼈던 터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유홍준 이름값은 하겠지 싶었는데…… 이건 뭐지? 교토가 막 보이는 것 같고, 일본 정원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 같고, 다도의 정신세계로 이끌려 들어가는 것만 같고, 일본 건축물의 미학을 내집에 적용하고 싶고, 어서 빨리 내 눈으로 직접 보고싶은 마음에 설레기까지 한다. 일본에 대해 나는 너무 무지했다.
가마쿠라시대-무로마치시대-전국시대-에도시대. 시대별로 사찰, 정원, 다실, 별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데 아! 감탄사가 나오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괜히 유홍준이 아니었다.
1층은 금박을 입히지 않고 목재의 검붉은 빛을 그대로 남겨두어 마치 2층 건물의 기단부 같은 느낌을 주고, 3층은 넓은 난간을 사방으로 두르고 있어 그 다양한 구성이 미묘한 변화의 아름다움을 일으키며 비례가 어긋난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오직 절묘한 디자인이라는 찬사가 나올 뿐이다. 151p
교토 여행이라고 하면 맨먼저 소개되는 금각사 사진을 보며 감흥이 일었던 적이 없었는데 이 사진은 너무 아름다워 한참을 쳐다보았다. 1, 2층을 높이와 폭을 똑같게 하고 3층에 변화를 주었다. 금박은 2, 3층에만 입혔다. 보는 사람은 1층을 건너뛰고 2, 3층의 금박에 시선이 가며 부족한 듯 풍부한, 수수한 듯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맛이 난다. 전층이 금박이면 귀금속으로 치장한 졸부마냥 얼마나 멋이 없을 것인가.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서 얼른 보고 싶다.
선의 정원(Zen Garden) 용안사 석정
서양의 현대 조형이 동양의 정신과 미학을 만나는 창구가 용안사의 석정이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고 유명하고 연륜있는 미술 전람회인 베네치아 비엔날레.
덜 미학적인 것이고 더 윤리적인 것을(Less Aesthetics, More Ethics)
오스트리아의 한스 홀라인이라는 건축가는 자신의 작품 대신 이 용안사 석정을 그대로 축소한 모형을 출품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 같은 세련된 포스트모던 계열의 건축을 설계한 이로 세계 최고의 거장 반열에 오른 건축가이다. 171p
‘덜 미학적인 것이고 더 윤리적인 것을’이라는 전람회의 슬로건도 멋지지만 서양의 건축가가 이 정원을 그대로 들고갔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철저히 계산된 디테일도 미(美)가 될 수 있음을 일본의 정원에서 느낀다. 이 책은 일본 정원답사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절반은 정원 이야기다. 일본이 정원의 미학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돌, 나무, 이끼만으로 구성된 석정의 미학을 직접 가서 느끼고 싶은 마음이다. 나도 용안사 석정 사진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꼈으니 김홍도의 말마따나 나도 붕어눈깔은 아닌 모양이다.
“이도 다완은 손맛이 어때요?”
“나도 이 기자에몬 이도 다완은 직접 본 일이 없는데 비슷한 것을 한번 감상할 수 있었지. 보드랍거나 매끈한 것이 아니라 마치 군살 없는 여자 무용수와 악수할 때 드는 느낌 같았어.”
“그 느낌이 어떤 건데요?”
“……”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우리는 주차장에 다다랐다. 우리는 일행보다 늦지 않게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혜정이의 물음에 대대로 대답하지 못했던 이도 다완의 느낌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태는 순박하고, 빛깔은 은은하고, 촉감은 강한 듯 부드럽고, 기품엔 범접하기 힘든 고상함이 있는 것, 그러나 무언가 아쉬움이 남은 듯한 미련이 있어 손에서 놓지 않고 자꾸 매만지게 되는 것. 그것이 와비차의 이도 다완이다.” 293~294p
유홍준의 글이 이런 식이다. 수준 높은 미학 지식을 따라가느라 헉헉 대다보면 아무 부담없이 한번 웃게 만들고 그러면서 어느덧 가이드를 따라 일본 역사와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간다.
책의 하이라이트는 에도시대 가쓰라 이궁이다.
나는 두 이궁을 모두 두 번씩 가보았다. 처음에는 일본 정원을 공부하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즐기러 간 것이었다. 본래 '히로시마 내 사랑', '남과 여'처럼 영상미가 아름다운 프랑스 영화는 두 번은 보아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처음 볼 때는 자막을 따라 읽느라 그 멋진 장면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기회가 된다면 그 명화들을 다시 한번 보고 싶듯이 내게 언젠가 가쓰라 이궁이나 수학원 이궁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298p
안타깝게도 가쓰라 이궁은 3개월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하고 관람일도 토요일, 일요일, 법정공휴일은 참관이 불가능하고 관람 시간도 1시간 30분으로 제한되어 있어 꼭 보고 싶은 사람만이 가게 된다. 그러고 보니 교토를 갔다온 사람은 많은데 가쓰라 이궁을 가본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웬만큼 좋은 여행지도 다음에 꼭 다시 와야지 하면서도 선뜻 다시 가기는 쉽지 않는데 왠지 나는 교토를 두 번은 가보게 될 것 같다. 서울을 가면서도 경복궁 비원을 아직 못 본 것처럼 교토에 간다고 가쓰라 이궁을 볼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 말이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20대일 때와 생각이 많이 달라져 있음을 깨닫는다. 보는 만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라고. 부지런히 발품 팔아 도시 곳곳을 헤집고 다니는 열정도 좋지만, 고즈넉이 앉아 용안사 석정을 바라보며 고요한 아름다움을 깨달을 나이가 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