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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교사 체 Aug 29. 2020

법륜 스님 감사합니다

법륜, <행복>

나는 성격이 급하고 솔직하다. 급한 탓에 판단을 빨리하여 사람들과 보조를 못 맞출 때도 있고 좋고 싫음이 온몸으로 드러나는, 미숙한 인간이다. 불편하고 피곤한 관계를 잘 못 참고 안 그런 척 하는 걸 특히 못 한다.


A와의 관계를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불편하고 피곤한 관계를 개선해나갈 힘이 없었다. 마음 먹는 것과 별개로 관계를 정리하는 건 참 못할 짓이고 고통스럽다. 이해와 배려가 태평양 같은 남편에게 조언을 구했다.   


“(무뚝뚝한 목소리로) 자기야, 자기는 어떻게 A의 말을 다 들어줄 수가 있어? 화 안 나?”

“안 나는데.”

“(다소 흥분) 어떻게 화가 안 날 수 있지?”

“A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원래 그런 사람인 줄 알면 화가 안 나?”


A와 관계를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약속을 잡았다. 못다한 이야기와 오해와 서운했던 마음과 기억들을 되도록 싹싹 끄집어냈다. 빈 찻잔에 서너 번 물을 따라 마셔도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A에게 좋지 않던 감정들도 내 마음과 내 입 밖으로 꺼내지자 연기처럼 흩어져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았다. 웅크리고 있던 나쁜 감정들의 봉인 해제. A와 좋았던 때로 돌아가고픈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A와는 좋았던 기억이 많았다. 


A는 변함이 없었다. 좋은 점도 그대로였고 내가 싫어했던 점도 그대로였다. ‘원래 그런 사람’을 나는, 이해도 했다가 오해도 했다가 좋아도 했다가 싫어도 했다가 그랬던 거다. 싫은 건 A가 아니라 A에 대한 내 마음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공식적으로 A와의 관계, 과거의 관계를 정리했다.


A는 말했다.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 아니냐.”

나는 대답했다.

“너라는 사람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게 아니라 너의 이런저런 행동들이 나와는 맞지 않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A의 이런저런 행동들이 먼저인지, 싫다는 감정이 먼저인지. A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고.     


좋고 싫음의 감정에서 자유롭기

화, 상대와는 무관한 내 안의 도화선

참지도 성내지도 않는 제3의 길

후회는 지나간 실수에 매달리는 것

모든 갈등은 관계 맺기에서 시작된다

좋은 사람 vs 나쁜 사람

세상에 다 갖춘 사람은 없다

대부분의 관계는 이기심에서 시작된다

‘기브 앤 테이크’는 거래지, 관계가 아니다

나무는 서로 어울려 숲을 이룬다

시비분별의 마음을 내려놓고

통찰력, 고통에서 벗어나 사물의 전모를 보는 지혜

 행복은 재미와 보람 속에 있다

-법륜 스님의 책, <행복> 차례 중-


한동안 옆으로 밀쳐두고 있던 법륜 스님 말씀을 꺼내본다. <법륜 스님의 행복>에서 지금 나에게 필요한 목차들. 평소 여러 번 들어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말씀 하나하나가 뼈에 와 닿는다.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고.이.해.하.기’ 이 두 가지만 명심하면 관계로 인한 갈등의 대부분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A로 인한 내 마음의 괴로움은 어쩌면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지 못하고, 이해는 더더욱 못한 나 자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이렇게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도 상대방이 내가 미리 그려놓은 그림과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내 기준에서 보면 상대방이 부족하고 잘못한 것 같아서 불만스럽지만 사실 그 기준 자체가 허상일 뿐입니다. 33p


“나는 이런데, 너는 그렇구나!” “저 사람 입장에서는 저럴 수도 있겠구나” “아이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구나” “남편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구나” “아내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구나” “일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구나” “북한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구나!” 결국 그렇게 하기 위해(그런 척이 아니라) 법륜 스님 책도 읽고 말씀을 듣고 해보지만 그렇구나 하는 게 참 어렵다. “A는 왜 그럴까”가 아니라 “A는 그렇구나” 할 수 있었다면 A와 웃으며 볼 수 있었을테지. 아직은 나에게 “저 사람 입장에서는 저럴 수도 있겠구나”는 참 멀기만 하다.


이미 지은 인연의 과보는 기꺼이 받아들이되
그 과보가 싫다면 다시는 그런 인연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찾아서 제거해나가야 해요. 2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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