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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교사 체 Sep 06. 2020

아, 테스 형의 '변명'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고2 국어 선택과목에 ‘고전’이 있다. 춘향전, 관동별곡 등 그 고전이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햄릿, 국부론, 명상록, 아라비안나이트, 그리스인조르바, 슬픈 열대, 서양 미술사, 간디 자서전. 차례만 봐도 어지럽다. Tradition이 아니라 Classic! 내가 이것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vs 아니야, 재밌을 거야. 언제 또 이런 걸 공부해보겠어, 좋은 기회야!

그렇게 나의 고전 수업이 시작되었다.     


첫 작품은 「소크라테스의 변명」. BC 5세기 플라톤이 스승 소크라테스의 법정 진술을 기록한 고전 중 고전. 50여 쪽의 짧은 글 속 2500년 전 소크라테스가 살고 있다. 2500년 전 아테네로 여행을 떠날 시간, 여행은 준비가 반, 알고 가면 좋을 것들을 챙긴다.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헤라클레스 등 유명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관심을 끌어본다. 긴 백발에 손가락을 위로 올리고 정중앙에 걸어오는 플라톤에서 왼쪽으로 다섯 번째, 누군가를 붙들고 열심히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동그란 얼굴, 훤칠한 이마의 곱슬머리 남자가 바로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대한 이런저런 배경지식 이야기를 나눈 후 새롭게 알게 된 게 있느냐고 물었다.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쓴 게 아니에요.

- 소크라테스는 전쟁에 참가했어요, 펠로폰네소스 전쟁.

-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플라톤이에요.

- 소크라테스는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지만 안 했어요.    

 

그래, 그 정도면 됐다. 위대한 저서 읽기 모임 ‘파이데이아’에서 플라톤의 「국가」를 공부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책에 밑줄 친 흔적은 있는데 읽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그만큼 무슨 말인지 모르고 글자만 읽었던)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이렇게 쉽고 재밌는 글이었나 깜짝 놀랄 정도였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신을 믿지 않는다’는 멜레토스의 말도 안 되는 고발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기록한 것이다. 타락한 청년을 고발한 것도 아니고 요즘 같으면 학생이 하라는 대로 암기는 안 하고 ‘대학은 왜 가야 하나요?’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가요?’ 묻는다고 그 학생을 가르친 선생을 고발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것도 일흔이 넘은 노인을 상대로. 말이 안 되는 재판에서 소크라테스는 주옥 같은 사유와 감탄이 절로 나오는 논리를 선보인다. 서양에서는 청소년들에게 사유와 논리를 배우게 하기 위해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외우도록 하기도 한다는데 과연 그럴 만하다.    


“멜레토스 군, 이리 나오시오.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재판관들에게 청년을 선도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말해 주시오. 당신은 청년을 타락시키는 자를 찾아 내느라 고생을 한 끝에 나를 재판관들 앞에 끌어내서 고발한 만큼, 당신만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멜레토스는 국법이라고 했다가 재판관을 비롯한 아테네인들 거의 다라고 답한다.  

   

“유일한 예외는 나 자신뿐이군요. 나만이 청년을 타락시키는 자라는 말이지요? 당신은 이와 같이 주장하는 것입니까?

-그 점이 바로 내가 확고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심의 미소를 짓는 멜레토스에게 최후의 한방을 날리는 소크라테스.   


청년을 부패시키는 자는 단 한 명뿐이고 그 외의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선도한다면 그들은 참으로 행복한 환경 속에서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델포이 신전에 쓰여 있는 대로 ‘무지의 지’를 깨우쳐 주기 위해 청년들과 대화를 나눈 건 사실이나 타락시키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는 둥, 내가 말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둥 사람 좋은 척 두루뭉술하게 넘어갔으면 충분히 무죄 판결이 났을지도 모른다. 당시에도 벌금형, 추방형 등 다양한 형벌이 있었는데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요구한다.  

   

 오, 재판관 여러분, 위대한 트로이 원정군의 지도자, 오디세우스, 시지프스 및 기타의 무수한 남녀를 음미할 수 있다면 무슨 대가인들 아낄 것인가! 거기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질문을 한다면 무한한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 세상에는 질문을 한다고 해서 사람을 사형에 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사형 판결을 받는다. 재판관들은 자기들보다 잘난 피고인이 기분 나빴을 것이다. 스승의 변론과 사형을 지켜본 제자 플라톤은 이 재판을 위대한 저서 「소크라테스의 변명」으로 남겼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정치를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철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에서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스승의 발 아래 고개를 숙이고 있는 플라톤의 모습은 사형을 선택한 소크라테스보다 더 비장하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의 모든 장면이 인상적이지만 특히 죽음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말은 놀라웠고 크나큰 깨달음을 안겨 주었다.     


죽음을 두려워함은 사실, 자신이 현명하지 않은데도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죽음이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죽음이 인간에게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좋은 것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 최악임을 잘 알고 있기나 한 양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장 비난받아 마땅한 무지 아니겠습니까?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신탁을 받은 소크라테스가 그렇게도 깨우쳐주고 싶어 했던, 무지(無知)의 지(知).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없어 죽음에 관한 책들을 탐색했던 나의 두려움의 실체는 바로 무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소크라테스는 너무도 간단하게 일깨워 주었다! 죽음이 나쁜 것인지 좋은 것인지 ‘모른다’. 아, 소크라테스를 한 번만 만나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내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것들 싹 걷어버리고 맑은 눈과 귀로 세상을 보고 들을 수 있을텐데. 소크라테스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에 힘주어 밑줄을 긋는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각기 자기의 길을 갑시다.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어느 쪽이 더 좋은가 하는 것은 오직 신만이 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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