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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교사 체 Sep 12. 2020

우리도 배우처럼, 햄릿 낭독

셰익스피어, <햄릿>

드디어 『햄릿』을 읽는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라며 고뇌했던 12세기 덴마크 왕자님을 이제야 만난다.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싫던 숙제가 좋을 때가 있는데 수업 때문에 책을 읽어야 할 때가 그렇다. 숙제로 읽는 책은 희한하게도 더 집중이 잘 되고 재미가 있다.


희곡은 소리 내서 읽어야 제맛.  배우들이 대본 리딩하는 게 멋있어 보였는데 혼자 큰 소리로 읽어본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로다.
한 달도 못 되어, 니오베처럼 울며불며
아버님 시신을 따라갈 때 신었던
그 신발이 채 닳기도 전에
어째서 어머니는, 왜 어머니는-아, 신이시여. 분별심이 없는 짐승도 이보다는 오래 애도했을 거야-숙부와 결혼하셨을까?     


레고 놀이를 하던 둘째가 옆에서 듣고 킥킥 웃는다. 소리 내어 읽는 맛이 참 좋다. 아, 이래서 연극인들이 햄릿을 꿈꾸는구나. 수컷 공작의 화려하고 기품있는 깃털마냥 대사 마디마디 멋이 넘쳐 흘러 말을 내뱉는 입이 즐겁고 쾌감이 일렁인다. 소리 내어 읽으니 내가 마치 연극 배우가 된 듯 빠져들어 끝까지 즐겁게 읽었다.    

 

아버지 왕이 독살당하고 ‘거친 바람이 얼굴을 스치지 못하게’ 할 정도로 사랑을 나누었던 어머니는 남편의 동생과 결혼한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사랑하는 오필리어는 물에 빠져 죽고,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미친 척 연기하며 햄릿은 끊임없이 질문한다. 숙부의 편은 누구이고 내 편은 누구인지, 유령의 말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 자살을 한다면 무엇을 위한 것이고 산다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정치적 암투와 권력 다툼의 한복판에서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햄릿은 고뇌한다. “뒤틀린 시대로다. 저주받은 내 운명이여, 그걸 바로 잡기 위해 내가 태어나다니!” 결국 햄릿은 죽고 만다. 모든 인물들이 죽는다. 햄릿이 죽자 사람들은 말한다. “왕위에 오르셨다면 가장 군주다운 군주가 되셨을 분이다.” 『햄릿』을 읽는 시간, 우유부단하게 고뇌하는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틀린 시대를 바로잡고 싶어 했던, 비극적이고 매력적인 한 남자를 만나는 벅찬 시간이었다.     


1등급부터 9등급까지 등급으로 매겨져 숱한 좌절감을 맛보다 결국 엎드리고 마는, 엎드려 있어도 아무도 깨우지 않는, 국어조차 이과반 학생들에게 훨씬 뒤처지는 문과반 남학생들.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에게 『햄릿』을 읽힐 수 있을까? 줌으로 하는 원격수업을 활용해서 할 수 있는 게 뭘까?     


셰익스피어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영국 작가, 아들이 11살 때 죽는데 이름이 Hamnet, 아마도 그래서 주인공 이름이 햄릿인가? 그런데 햄릿은 어느 나라? 햄릿은 몇 세기 사람? 사진으로 간단하게 흥미만 돋우고 본론으로 바로 들어간다. Zoom에서 나가 자기 방으로 들어갈 것. 일명 오디오북.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대사 13줄을 ‘3분 동안’ 낭독해서 파일로 보낼 것. 낭독할 때는 입을 크게, 혀 끝에 힘을 주고, 강약을 조절할 것. 배우가 되어 대본 리딩하는 흉내를 낼 것. 2~3번 연습하고 됐다 싶으면 보낼 것.     


10분쯤 지났을까. 음성파일이 속속 올라왔다. 수업 시간 엎드려만 있던 아이들도 파일을 보내왔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햄릿의 대사를 읽으면서 재밌어했을 얼굴들을 떠올리니 뿌듯할 지경이었다. 두툼한 헤드셋을 끼고 나는 아이들의 파일을 열어 오디션을 봤다. 아, 이것이 연출자의 기분인가. 햄릿, 유령, 왕비, 오필리아, 클로디어스 등 12명의 배역을 정하는 게 신이 났다.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새 캐스팅이 되어 50쪽에 이르는 대본을 받고 우리는 1시간 동안 햄릿 낭독공연을 했다.(그 와중에 몇몇은 끝까지 엎드려 잤다. 자는 척 했을지도.) 숙부 클로디어스, 햄릿의 유일한 친구 호레이쇼를 맡은 친구는 당장 연극판으로 달려가도 될 정도였다. 나도 단역을 맡아 대사를 했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 교실을 감쌌다. 배역을 받지 못해 친구들의 낭독을 듣고만 있던 학생이 수업 종이 치고 말을 걸어왔다. “선생님, 흥미진진하네요.”     



숙제하는 기분으로 읽었지만 『햄릿』이 주는 감동은 숙제 검사가 끝난 지금도 여전히 짙게 남아 있다. 다양한 인간 군상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매력적인 햄릿에 빠지기도 하고, 특히 기품과 재치가 넘실거리는 말들의 대잔치는 단순하고 짧은 SNS 세상의 말들이 넘볼 수 없는 경지여서 감탄이 절로 났다.       

아, 이 더럽고 더러운 살덩어리가 녹아 흘러 한 방울의 이슬이 될 수 있다면!
장례식에 요리한 고기를 식혀 결혼 잔칫상에 올려놓았지.
지옥이 아가리를 빌려 조용히 하라고 한 대도 말을 걸어 보겠네.
진정해라, 심장아.
근육아, 시들지 말고 굳게 버텨라.
불쌍한 오필리어. 이제 물은 충분할 테니 내 눈물은 흘리지 않겠다.
(오필리어의 오빠 레어티즈의 말)
내 자신도 모르는데 어찌 다른 사람을 알 수 있겠소.
자기가 자기를 칭찬할 친구야. 누구 하나 자기를 봐 주지 않으면 말이야.    


『햄릿』을 함께읽은 아이들, 나만한 나이가 되었을 즈음 문득 그때를 떠올리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상상을 해본다. 『햄릿』과 위대한 작가 셰익스피어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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