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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교사 체 Sep 14. 2020

미니멀리즘이 뭔가요?

감성과 추억 충만한 남편의 방

소품들로 넘쳐 났던 예전 거실

구제시장부터 플리마켓까지 섭렵하며 쇼핑을 즐기던 때가 있었다. 집안 구석구석 희한한 소품들이 넘쳐나는 걸 인테리어라며 뿌듯해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미니멀리즘 유행에 편승해, 숨 좀 쉬고 살아 볼려고 비우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 비우기는 판단-선택의 고통이 따르지만 비워진 공간만큼 개운하고 상쾌해지니 비우는 기쁨이 참 크다. 싹 다 비우고 미니멀리즘이 완성되는 집을 꿈꾸기는 하지만 아직은 그게 잘 안 된다. 추억이 담긴 것들을 버리면 그 추억마저 버려질 것 같아 망설여진다. 끝까지 비울 수 없는 것들은 남편이 서재 겸 대피처로 쓰던 끝 방 차지가 되었다. 자기만의 방이 아쉬웠던 남편은 테트리스 블록 쌓듯 하나하나 밀려온 것들에게 제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전세살이에서 탈출해 버젓한 우리집을 장만하고 공부하는 큰딸 방에 들여놓았던 천장에 닿을 듯 높은 책장. 엄마와 제일 오랫동안 같이 살았던 그 집, 내 방 책장. 그 집을 정리하며 버리지 못해 들고 온, 엄마가 사준 책장.

결혼하고 신혼집 꾸미는 재미에 빠져 처음 제작해본, 도대체 어디를 디자인한 건지 알 수 없는 디자인 책장.

절대 다시 꺼내 읽지 않겠지만 남편과 나의 젊은날과 함께한 『씨네21』, 『말』, 『인물과 사상』 은 최소한으로 남겨 두었다.

아이들과 함께한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바이칼 사진은 액자 속에 넣어 걸어두었다.

기억하고픈 사진은 폼보드로 출력해 벽에 걸고 베트남 여행 동안 쓰고 다녀 다 헤진 농도 버릴 수 없어 여기저기 두고 보다 벽에 걸었다.      


각기 다른 책장들. 어울리지 않음의 어울림(?)이 있다고 믿고 싶다.
자기만의 방을 꿈꾸는 아빠를 위해 자기 방 없어도 괜찮다는 둘째
인형뽑기에 천부적 재능을 지닌 남편이 술 마시고 뽑은 많은 인형들 중 1인자만 남긴다.

남편은 이 방에서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기타도 치고 업무도 보고 잠도 잔다. 자기 방이 없는 둘째에게 “이번 겨울에는 네 방 만들어 줄게. 침대도 사고 책상도 사고 예쁘게 꾸며줄게.”라고 하면 “아빠가 그 방 좋아하잖아. 괜찮아.” 한다.


미니멀리즘 해보겠다고 안방에서 비워지고 거실에서 비워진 것들로 채워 넣은 천덕꾸러기 방이 지금은 나도 아이들도 좋아하는 방이 되었다. 미니멀이 주는 상쾌함과 시원함과는 결이 다른 아늑하고 따스한 방. 거실과 안방은 미니멀하게, 시원하게, 여유롭게. 덕분에 남편의 방은 감성과 추억 충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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