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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교사 체 Jul 31. 2020

벚꽃에 숨은 트릭

우타나 쇼고,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독서토론모임에 장르소설 매니아가 들어왔다. 얌전하게 생긴 그녀는 살인과 피가 낭자한 추리소설, 현실성 1도 없는 SF소설 매니아였다. 달콤살벌한 그녀가 추천해준,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추리소설의 대표작이자 소름돋는 반전,

아련한 제목에 감성적인 표지...에 걸맞지 않는 19금 첫 문장,

탐정과 야쿠자가 등장하는 지극히 일본스러운 배경,

복부를 십자로 가르고 내장을 헤집어놓은 끔찍한 살인 사건,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했던 여인 사쿠라와의 만남,

헬스장에서 체력을 단련하며 간혹 문화센터 강사로 강의를 나가기도 하는, 간혹 여자를 사서 원나잇을 하는, 전직 탐정이자 아파트 경비원인 나.     


사쿠라는 어떤 인물이며 끔찍한 살인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범인 찾기’와 ‘반전’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모든 예측은 어긋나 버렸다. 범인은 오리무중이고 도대체 어떤 반전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지쳐간다. 책은 300쪽을 훌쩍 넘어선다. 마지막, 조용히, 휘몰아치는 반전.     


여든을 눈 앞에 둔 늙은 아버지를 떠올린다.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아 자식들과도 멀었던, 이제는 자식들 걸음을 따라오지도 못할 만치 늙은 아버지.     


나는 400쪽에 달하는 이야기를 읽는 동안 너무나 어이없게도, 어떤 것도 예측하지 못하고 말았다.  

   

독서토론모임이 있는 날. 다들 마찬가지였다. 소설의 결말을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달콤살벌한 그녀는 토론거리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며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두고 벌어졌던 페어 vs 언페어 논쟁을 언급했다. 이 작품의 반전은 페어인가 언페어인가? 나는 페어를 선택했다.


반전은 소설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그리고 늙은 아버지를 떠올렸다. ‘늙은’이 아니라, ‘아버지’가 아니라, 한 남자를 한 사람을 떠올렸다.


남편이라는 이름이 아니면 참 괜찮았을 사람.


그 사람이 젊었을 때를 상상해본다. 주름없이 매끈하고 생기있는 얼굴, 돋보기 안경 따위 필요없는 밝은 눈, 앙상한 허벅지에 절뚝거리지도 않고 팽팽한 근육질의 튼튼한 다리, 윤기없이 푸석한 흰머리가 아니라 새까맣고 수북한 머리털.


그랬던 그 사람이 지나온 자리에, 그 사람만큼 나이를 먹은 내가 서 있고 그는 저만치 늙어버렸다. 어쩌면 그 사람은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의 프리터 나루세를 닮았다.     


정말 벚꽃이 진 걸까? 내 안에는 아직 활짝 피어 있다.


그 사람, 내 아버지의 벚꽃도 여전히 활짝 피어 있을까. 여전한 그의 벚꽃 아래 이따금 나도 쉬어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책장을 덮고 한참 머물렀던, 늙은 아버지와 그와 똑같은 젊은 그 사람 생각에서 빠져나온다. 벚꽃 지는 계절에 꼭 다시 읽어보리라. 그때까지 프리터 나루세, 안녕하고 건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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