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코르미에, <체 게바라 평전>
가끔 쿠바를 꿈꾼다.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아바나, 철썩이며 넘실대는 말레꼰의 연인들, 우리와 아주아주 먼 나라, 그리고 체 게바라. 의사와 부유한 삶을 포기하고 게릴라를 선택한, 멋지게 시가를 물고 책을 읽는, 올리브색 국방복에 베레모를 쓰고 당당히 정면을 응시하는 체의 눈빛은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체 게바라 평전」을 20년 넘게 책장에 꽂아두고도 읽지 못했는데 교양독서모임에서 함께 읽는다길래 얼른 신청했다. 각 2부씩 3번에 걸쳐 읽고 배경지식이 부족한 라틴아메리카와 쿠바의 역사문화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들었다. 아르헨티나의 부유한 병원장 아들로 태어나 알베르토와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하며 게릴라가 되기까지 그의 성장을 지켜보며 환호했고 쿠바 혁명을 성공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응원을 보냈다. 가족과 쿠바를 떠나 볼리비아에서 그의 죽음을 지켜보며 우리는 모두 숙연했고 마음이 저려왔다. 완전무결한 인간을 꿈꾸었던 체를 두고 사르트르는 ‘20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했다. 책은 밑줄 투성이가 됐고 나는 더 열렬히 쿠바를 꿈꾼다. 체 게바라가 사랑했던 나라.
라틴 아메리카 각지를 도는 여행은 에르네스토에게 일종의 계시 역할을 했다. 추키카마타와 맞추픽추를 지나면서 그는 ‘혁명의 부화기’를 보내고 있었다. 102p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으로 상처를 주는 일을 에르네스토는 무척 싫어했다. 하지만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107p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환자들이 악단을 조직했습니다. 아코디언을 켜던 사람은 오른손의 손가락을 모조리 잃은 사람이었는데 손목에 막대기를 고정시켜 손가락을 대신했답니다. 또 노래를 부르던 사람은 앞을 볼 수 없는 장님이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제나름의 장애를 몸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사람들이 희미하고 음침한 랜턴 불빛 아래에 모여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장면이 저에게는 이제까지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장면들 중의 하나로 남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알베르토의 환송사는 얼마나 멋졌는지 듣는 사람을 거의 까무러치게 만들 정도였죠. 116p
저는 예수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저는 힘이 닿는 한 모든 무기를 동원하여 싸울 겁니다. 저들이 나를 십자가에 매달아두게도 하지 않을 것이며 어머니가 바라시는 방식대로도 하지 않을 겁니다. 188p
나는 그 앞에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약품인가, 아니면 탄약인가? 나는 과연 누구인가? 의시인가, 아니면 혁명가인가? 결국 나는 탄약상자를 선택했다. 206p
별이 총총한 밤이면 시가를 입에 물고 마테차를 손에 든 체는 선생님으로 변신했다. 그는 라울 카스트로에게는 프랑스어도 가르쳤다. 수업이 끝나면 그는 늘 곁에 두고 있던 책을 펼쳐들었다. 당시 그의 주된 관심사는 대륙 발견 이전의 문화와 호세 마르티가 말년에 쓴 지성이 숨쉬는 정치적 산문들이었다. 그는 늘 남보다 촛불을 늦게 끈 까닭에 영내에서 가장 많은 밀납을 소비하는 대원이 되었다. 228p
피델의 요청으로 셀리아 산체스는 특별히 준비해 온 대장의 별 계급장을 꺼냈다. 금박이 둘러진 작은 별은 쿠바혁명의 아버지인 호세 마르티의 별과 같은 모양이었다. 체는 얼른 그 별을 챙모자 대신에 쓰게 된 베레모 위에 달았다. 이 모습은 1960년 3월 5일, 알베르토 코르다가 아바나에서 찍은 유명한 사진으로 두고두고 남을 것이었다. 265p
그러나 그는 쿠바만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으며 무력에 목말라하지도 않았다. 아르헨티나에서 왔지만 그는 자신을 일종의 세계 시민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런 만큼 범세계주의자로서 싸우고 다른 인간들의 투쟁을 격려하는 일을 자신의 임무라 여겼다. 301p
한 농민 부부가 그를 옮겨왔으나 심한 출혈로 인해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그를 즉시 매장한 뒤 체는 힘들게 지켜온 타자기로 전사자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부하 중에 전사자가 생길 때마다 체는 늘 몸소 편지를 써서 전사자의 가족들에게 알렸습니다”라고 호엘 이글레시아스는 회상했다. 345p
1월 3일, 땅거미가 질 무렵, 마침내 아바나에 입성한 체는 카밀로와 감격의 포옹을 나눴다. 그들은 승리한 것이다. 391p
일본인들은 체에게 게이샤를 대동하는 주연을 권했으나 이번에는 그가 사양했다. 그러나 체는 히로시마를 방문하고 싶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결국 허락을 얻어내기에 이른다. 체 일행은 야간기차편을 이용해 7만 5천 명이 목숨을 잃은 태평양 연안의 그 도시를 찾아갔다. 그는 병원을 방문하여 피부가 손상된 환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412p
유고슬라비아에서 얻은 경험은 값진 것이었다. 도시민들과 농민들의 협동관계, 기업주의라는 자본주의적 원칙을 근간으로 이윤을 사회적으로 분배하는 자발적 노동이야말로 체 게바라에게는 중요한 교훈이 되었다. 게다가 그가 보기에 유고슬라비아인들이야말로 진정으로 판단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유일한 공산주의자들 같았다. 415p
유고슬라비아에서 실론으로 가는 도중에 중간기착지로 머문 로마에서 그는 식스티나 성당을 방문했던 일을 두고두고 잊지 못하였다. 수행원의 기억에 따르면 그는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아래 한 의자에 거의 드러눕다시피 하며 오랫동안 홀린 듯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고 한다. 417p
나는 나세르도, 네루도, 주은래도 그리고 피델과도 알고 지냈습니다만 체만큼 나에게 강렬한 영향을 끼친 이도 드물었습니다. 물론 주은래 역시 매우 매력적인 인물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만 체에게는 그와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었어요. 뭘랄까, 그를 도저히 좋아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는 그런 카리스마로부터 발산되는 단순 명료함이라고나 할까요. 483p
나는 쿠바혁명에서 내가 할 바의 몫을 수행했다고 여기며 어느덧 내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당신과 동지들, 그리고 쿠바 국민들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515p
특히 이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구나. 누구보다 너희들 자신에 대해 가장 깊이. 그것이야말로 혁명가가 가져야 할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란다. 518p
그에게는 뭔가 다른 어떤 것, 완전한 단순함이 있었습니다. 그건 의식과 믿음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인간에게서 발산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에게서 완전무결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는 총에 맞아 죽은 비쩍 마른 체의 작은 사진, 내면에서 뿜어나오는 빛으로 환해진 그의 얼굴이 담긴 사진 한 장을 잡지에서 오려내어 간직했습니다. 539p
포위당한 우리 대원들의 통행을 막기 위해 2백50명의 군인이 우리가 피신해 있는 아세로와 오로 사이의 지역에 배치되었다는 수상쩍은 정보가 군에서 흘러나왔다. 우리를 교란시키기 위한 소문인 것 같다.
해발 고도 : 2천 미터. 1967년 10월 7일(체의 마지막 일기)
‘이상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쌩 떽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말하는 방식대로 하자면 ‘내가 죽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644p
안토니오 아르게다스 멘디에타 내무부 장관의 명령을 받아 애초에 오반도가 내린 명령은 체의 손과 머리를 자르라는 것이었다. 센테노 아나야는 이 의견에 반대하고 머리는 자르지 않기로 결정한다.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아르게다스는 그 후에 체의 손과 그 손을 떠두었던 주형을 되찾아서 잠시 숨겨두었다가 나중에 쿠바로 보낸다. 그때부터 쿠바에서 체의 손을 보관하게 되었다. 64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