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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교사 체 Oct 26. 2020

여행 대신 정리

이지영,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드립니다-삶이 바뀌는 신박한 정리』

떠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할 때가 있다. 떠나지는 못하고 애꿎은 방을 바꾼다. 책장을 요기로 조기로, 테이블을 벽에 붙였다 띄웠다. 디테일에 조금 변화를 줬을 뿐인데 분위기가 달라지니 신기하고 재밌다. 그 맛에 자꾸 방을 바꾸고 가꾼다. 가구 3, 소품 3일 때 경우의 수는 3×3=9. 안방을 아홉 가지 버전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책은 무조건 서재에, 와인은 반드시 주방에만 두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고정관념을 깨는 순간, 집은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됩니다. 26p    


가장 기억에 남는 방 가꾸기는 막내의 놀이방을 만들어 주었을 때다. 중 2 아들 방 하나, 서재 겸 휴식 공간인 남편 방 하나, 하나는 안방. 초등 3학년 막둥이 방은 없다. 남편은 본인 방을 내주면 된다고 하지만 나도 막둥이도 아빠가 자기방에서 책 읽고 글 쓰고 기타도 치면서 하루의 피로를 풀고 에너지를 충전한다는 걸 알기에 선뜻 그러자고 못한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막내 방을 만들 공간이 없다. 자려고 누웠는데 안방에 딸린 드레스룸! 앗, 저기를 어떻게 해보면 될 것도 같다. 


옷을 다 빼버리면 아주 작은 놀이방 정도는 되겠다. 침대와 장난감들이 같이 사이좋게 살고 있는 안방은 잠과 놀이가 뒤섞여 있다. 말이 안된다.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 편하게 잘 수 있게 장난감들을 분리시키기로 한다.     


이렇게 정해진 공간 하나를 집중적으로 빠르게 정리하는 것이 조금씩 천천히 정리하는 방법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매일 조금씩 해나가는 것도 좋지만, 그런 과정에서는 변화가 한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때문에 ‘귀찮기만 하고 별로 달라지는 것도 없네’ 싶어 금장 지치기 마련입니다. 180p    


드레스도 없는 드레스룸 대신 옷장은 하나 장만해야겠군. 엄마 껌딱지 혼자 떨어져 자려면 3년은 있어야 할텐데 이참에 2층 침대도 하나. “아들, 엄마가 네 방 만들어 줄게. 아주아주 작을 거야. 2층 침대는 네가 골라줘.”


아들과 나는 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데이트 기분을 내며 이케아가  있는 광명으로 간다. 1월 코로나가 뭔지 잘 모를 때라 마스크도 없이 신나게 다녔다. 옷장, 침대는 큰 아들과 조립해 드레스룸을 비웠다. 장남감들을 정리하고 배치하는 데 이틀이 꼬박 걸렸다. 공간은 작고 물건은 많아 빅피처를 그리기가 쉽지가 않다. 전기 아저씨를 불러 센서등을 떼어내고 조명등까지 달고 미션 클리어!


아들 키 140cm. 누우면 다리는 뻗을 수 있는데 팔은 쫙 펼 수 없을 만큼 작은 방. 그래도 막내는 자기 방이라고 좋아하며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방’에서 행복한 얼굴로 잠이 들었다. 집 한가운데 버젓이 자기만의 방을 갖고 있던 큰 아들도 와서 누워보고 아늑하다며 좋아해 주니 막내가 더 의기양양해진다.


출입금지. 노크하고 들어오시오. 자기 방이 생기면 꼭 붙여 보고싶었다는.
행거를 철거하고 싶었으나 혹시나 해서 그대로 둔 채 수납. 행거가 없다면 더 깔끔했을 것 같다.


지금은 관심이 시들해져 문도 열어보지 않는 날이 많다. 돈 들여 조명 공사는 왜 했나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드레스룸을 막내 놀이방으로 바꾼 며칠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도 많다. 일단, 자기도 방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 쑥 들어가고 없다. 엄마가 자기 방을 만들겠다고 애쓰는 모습에서 방 대신 마음을 얻은 충족감 때문이 아닐까. 엄마랑 기차 타고 광명까지 자기 방에 쓰일 물건들을 사러 갔던 추억도 진하게 남는다.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주방 한쪽 벽면에 책장을 놓아도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고정관념을 깨고 공간만 허락한다면 주방에도 얼마든지 책장을 놓을 수 있습니다. 215p  

  

여행 가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해지면 주방을 북카페처럼 바꾸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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