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해도 괜찮아 여행이니까
정진상, <자전거 여행의 미학>
“엄마! 밧데리 34%에서 9%로 떨어졌어!”
“그럼 이런 데서 켜지 말고 중요할 때만 켜! 혹시 모르니까 니 폰 줘봐. 찍어놓게.”
“어, 엄마 5%!”
“아악!”
내 오래된 스마트폰이 진가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이 중요한 순간에, 그것도 물 건너 이 낯선 땅에서. 아들 둘과 나. 사람은 셋인데 스마트폰은 달랑 하나. 방전되면 우린 아무 데도 의지할 데가 없다! 전광석화의 기지를 발휘하여 구글 길찾기에 접속, 목적지를 ‘피스호스텔산조’(숙소)로 맞춰놓고 경로를 찍는다. 찰칵찰칵. 밧데리 아웃. 휴- 나이스 타이밍.
아리가또밖에 모르는데
와이파이도시락을 무겁게 배낭에 짊어지고 가면 뭐하나? 하나밖에 없는 스마트폰이 먹통인데. 여기는 교토의 어느 한적한 주택가. 구글맵이 없으니 다음 행선지, 금각사는 포기하고 숙소라도 제대로 찾아가야 한다. 일본어라고는 아리가또밖에 모르는 우리 셋이 서로 의지하며 어떻게든 같이 가야 한다. 난 분명 교토 문화유적지를 여행하러 왔건만 3시간 동안 우리는 ‘처절하게’ 교토 지리를 익힐 수밖에 없었다. 2월 중순의 교토는 또 어찌나 춥던지.
아라시야마 버스 정류장
교토 버스에서 곤히 잠든 두 아들
내가 아들 둘을 데리고 유니버셜스튜디오와 교토를 다니기 며칠 전 친구는 아들이랑 패키지로 오사카 교토를 다녀왔다. 패키지가 너무 편했고 아들도 좋아했다고. 요즘 패키지는 자유시간도 많다며 다음에도 이용하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편한 걸 마다하고 나는 왜 사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아이들은 무슨 죄로 차가운 길거리에서 이렇게 버스를 기다리고 지하철을 환승하러 오르락내리락,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떼우며 다녀야 하나? 누구나 여행의 자기스타일이 있는데, 아들 둘과 함께 한 교토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닥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내 여행 스타일에, 일단 부딪혀봐야 한다는 내 여행 스타일에 심한 회의를 품게 되었다.
고생해도 괜찮아
<자전거 여행의 미학>을 읽었다. 어떤 수식어도 없고, 그럴듯한 장소에서 찍은 멋진 인증샷도 없다. 여행의 낭만보다 진짜 자전거 하나 믿고 달리는 현실 여행이다. 여벌 옷 한 벌과 자전거로, 매일 숙소에서 입은 옷을 빨아 널며 베트남을 여행한 기록을 간단명료하게 남겼을 뿐이다. 부록 ‘쿠바 자전거 여행 가이드북’도 간결하고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다. 저자 정진상 교수님의 꾸밈없고 군더더기없는 성격 그대로다. 담백하다. 페달을 밟고 달리는 여정에서 베트남의 깨끗한 맨얼굴이 그대로 드러난다. 자전거로 여러 나라를 여행해본 정진상 교수님은 베트남과 쿠바를 자전거 여행하기 좋은 나라로 꼽았다. 유홍준의 답사기가 전문가들의 향연인 알쓸신잡 같다면 정진상 교수의 여행기는 건강하고 자유로운 류배우의 ‘트래블러’ 같다. 전자는 공부가 되어 좋고 후자는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어 좋다.
<자전거 여행의 미학>의 배경 베트남은 걸어서 여행하기도 좋지만 자전거 여행으로도 좋은 곳이다.
자전거 여행 전문가 정진상 교수님이 베트남, 쿠바 자전거 여행을 담은 책. 군더더기가 1도 없음.
<자전거 여행의 미학>의 저자처럼 언젠가는 자전거로 여행하는 상상을 해본다. 고생을 자처하는 내 여행 스타일에 대한 회의는, 더 고생하는 저자의 여행을 따라가는 동안 치유가 된 모양이다. 고생한 것도 지나고 보면 다 추억이라며 좀 지나면 좋았던 기억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가 될지 모르지만 그또한 사서 고생일 것이다. 그 고생을 저자가 가장 사랑하는 나라, 나또한 너무나 가고 싶은 나라 쿠바에서 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