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노래를 꽤 좋아하시는 외할아버지가 있었다. 남원에 살다 부천으로 올라와 산 할아버지는 농부였다. 그래서 남원에 꽤 많은 논을 가지고 있었고 외가댁 거실에는 항상 쌀이 한가득 놓여 있었다. 그것도 한 두 개가 아닌 여러 개가 있어서 어린 꼬마시절 나와 사촌들은 항상 쌀자루 위에 올라가 놀았고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의 애정어린 호통을 들어야 했다.
엄마는 외가댁에 갈 때마다 항상 정종을 사갔다. 외가댁 도착하기 전에 슈퍼에 들려서 사 들고 갔는데 할아버지가 매번 반겼던 기억이 난다. 그 정도로 할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고 늘 노래를 부르셨다. 부르는 노래도 바뀌지 않고 매번 똑같아서 기억이 생생하다.
“오동추에 날이 밝아. 오동동이야. 오동동….”
어린 시절 할아버지는 술에 취해 들어오시거나 술을 마시고 난 후에는 항상 이 노래를 불렀다. 웃긴 건 노래를 끝까지 들은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거다. 딱 앞 소절만 부르고 끝나서 뒷부분의 가사는 알지도 못한다.
외할아버지는 손자 손녀를 정말 좋아했다. 항상 바쁘시거나 술을 드셔서 같이 논적은 없지만 손자들을 무릎에 앉혀놓고 예뻐해주시는 모습을 많이 봤다. 옛날 분이라 남아선호사상이 있어서 손녀보다 손자를 더 예뻐하긴 했지만 나름 골고루 안아주려고 노력하시긴 했다.
한번은 나를 다정하게 무릎에 앉혀 주시며 동생은 엄마가 챙기니 큰 딸인 나는 자신이 안아주겠다고 하셨다.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은 상대적으로 엄마의 손길을 더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어서 내가 안쓰러워 보였나보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길이 싫지 않고 좋았다. 그래서 내내 머릿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일까 할아버지가 생각날 때는 ‘오동추야’노래가 자동으로 재생이 된다.
한 번도 뒷부분 가사까지 찾아보거나 노래를 들은 적이 없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검색해봤다. 네이버에 ‘오동추야’라고 치다 알아낸 제목은 ‘오동동타령’이었고 노래는 가수 유지나씨가 2009년에 불렀다. 우리 할아버지가 꽤 오래전에 돌아가셨으니까 이걸 듣진 않으셨을 거고 아마도 1956년 도미도레코드에서 제작하고 가수 황정자씨가 부른게 원조인 것 같다. 할아버지 노래만 듣다보니 당연히 남자가수가 불렀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여자 가수가 불러서 놀랐다.
항상 ‘오동동이야’에서 오동동의 의미가 뭔가 하고 궁금했는데 이번에 찾다보니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이라고 한다. 한 때는 전남 여수 오동도를 지칭한다는 주장이 있었다는데 노래를 부른 가수 황정자씨의 확인으로 배경지가 마산으로 일단락되었다.
황정자씨 버전의 노래를 처음 들어보았는데 목소리가 낭랑한 게 음이 신나고 좋았다. 할아버지가 왜 좋아하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지금의 가사와 다른 예스러움과 그리움. 오늘은 어쩐지 외할아버지가 많이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