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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누나 Nov 19. 2021

귀향 그리고 집으로


오랜만에 바닥에서 잠을 잤다. 전날 집에서 일찍 출발해서 거의 잠을 못 자고 부산에서 하동까지 긴 시간 깨어 있어서 매우 피곤했다. 엄마도 마찬가지고 동생도 운전하느라 피곤해서 우리는 바닥을 뜨끈뜨끈하게 해 놓고 푹 잤다. 바닥에서 자면 등이나 허리가 아픈데 그걸 잊을 정도로 좋았다. 다들 찜질방에서 쉬었다 온 듯 한 느낌을 받으며 숙소에서 잘 있다 퇴실했다.


숙소에서 산소까지 대략 40분 정도 걸려서 짐을 챙겨 출발했다. 전날에 비가 많이 내려 어둡고 추웠는데 오늘은 비도 그치고 해도 나고 따뜻했다. 늘 그랬다. 아빠를 만나러 하동에 올 때마다 신기하게도 날이 좋아졌다. 마치 아빠가 잘 왔다고 반겨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날이 좋으니 풍경이 보였다. 주변이 온통 감나무였다. 푸른 나무와 풀 사이로 노랗게 벼가 익어가고 있었고 도로가나 농장 쪽에 심어져 있는 감나무들은 온통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한 가지에 두세 개 기본으로 매달려 있어서 가지가 땅 쪽으로 내려가 있었다. 그래서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게 ‘따갈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잘 익은 감들이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창밖을 바라보면서 계속 말했다.


“우와, 감 잘 익었다. 따가고 싶다. 저기도 감이야. 올해 감이 잘 익었나 봐.”


감을 실컷 구경하다 어느덧 사마실에 도착했다. 마을은 여전히 사람 한 명 안 보일 정도로 조용했고 산 앞의 저수지는 고요했다. 아래쪽에 주차를 해 놓고 산소로 걷고 또 걸었다. 아빠에게 가깝게 다가가자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며 빨리 가고 싶었다. 조카 손을 붙잡으며 오랜만에 하는 등산으로 힘든 다리를 겨우 붙잡고 올라갔다.


가을이라 그런지 바닥에는 보송보송 뾰족뾰족한 밤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이미 다따 버려진 껍데기부터 가시가 살아있는 밤까지 다양했다. 조카는 발바닥이 찔릴 것 같다며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그렇게 아빠가 계신 곳에 도착했다.




문중 산소는 여전했으며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제대로 벌초를 안 하면 몇 개월 만에 산소가 정글이 되는데 깔끔한 걸로 보아 당숙 할아버지와 집안 어른들께서 관리를 잘하고 계신 것 같았다. 바로 올라가야 하는데 힘들어 잠시 한 숨 돌리고 소주와 과자, 귤을 챙겨 올라갔다.


먼저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갔다. 조화가 오래되어 빛이 바래 뽑아버리고 새로 사 온 꽃을 꽂아 놨다. 그리고 다시 아래로 내려가 아빠에게 갔다. 역시 조화가 빛이 바래 뽑아버리고 새로 조화를 꽂아 놨다. 비석의 글자를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벌써 2년이 넘었고 내년이면 3년째가 되어가는데 아직 내 마음속에 슬픔이 남아 있나 보다.


사실 하동에 오면서 감나무를 실컷 구경하고 친척을 만나고 조카와 재미있게 놀면서 매 순간순간 아빠가 생각났다. 이럴 때 아빠가 좋아했을 텐데 하면서 식구들 모두가 아빠를 그리워했다. 돌아가신걸. 내 눈으로 확인했고 내 손으로 화장하는 서류에 사인을 했는데 어쩐지 아직 살아계실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산소에 오는 건 아빠와의 만남임과 동시에 죽음을 확인하는 자리라 그런지 반가움과 슬픔이 공존한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건 아빠가 좋은 곳에 계신 거다. 생전에 그리워했던 고향이고, 산소 앞에 저수지가 보여 탁 트인 공간이라 마음이 마냥 슬프지는 않았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는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내년에 또 올게. 그때는 코코도 데려올게.”


돌아오는 길에 동생은 이제야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아빠를 못 보는 동안 내심 마음이 불편했다고 말이다. 다시 올라가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우리는 간식도 먹고 휴식도 취하고 멋진 석양도 보면서 무사히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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