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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오리 새끼

학교 정글같은 그곳

by 글쓰는 누나

유난히 큰 알에서 태어난 새끼 오리는 보통의 오리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주변 오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처음에는 어미 오리가 감싸주지만, 나중에는 어미 오리마저 새끼 오리를 포기해버린다. 상처받은 새끼 오리는 결국 집을 떠난다. 미운 오리 새끼는 다른 오리들과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버림받고 따돌림당한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야 하고 똑같이 생각해야 하고 모나거나 튀어나오면 인정받지 못하는 곳이 있다. 바로 학교다. 학교에서 내가 미운 오리 새끼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 아이들처럼 생각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힘든 시기를 보냈다.




생각해보면 잔잔한 일상이 흐트러진 건 중학교때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전학을 가 친구들과 재미나게 놀았다. 그 짧은 기간은 나에게 좋은 추억이 되었고 중학교까지 이어질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당시 우리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중학교는 버스로 서너 정거장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대부분 그 학교에 갔고 불운의 기운이 가득한 몇몇이 소위 뺑뺑이로 먼 곳에 가게 되었다.


운명의 발표가 있던 그 날,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유달리 길어졌다. 어디를 가도 잘하면 된다는 식의 이런저런 말을 잔뜩 늘어놓았다. 그리고 어디를 가도 잘하면 된다는 피해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정말 친한 친구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새로운 장소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초등학교와 다르게 친구들이 모두 낯설었고 친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중학교 때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문제는 고등학교였다.





또다시 다른 선택을 하고 말았다. 한참 만화에 빠져있어서 만화가가 되겠노라며 실업계 디자인과를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엄마와 치열한 다툼 끝에 디자인과를 진학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당시 인문계와 실업계의 분위기였다. 내가 간 학교가 실업계 학교 중 성적이 높아야 갈 수 있는 곳이라 성적은 인문계와 비슷비슷했지만, 학습 분위기에서 차이가 났다.


인문계 학교 아이들이 공부에 좀 더 관심이 많았다면 실업계는 실습과 노는 것에 좀 더 시간을 할애했다. 여기서 적응을 못 했고 한동안 은따가 되어야 했다. 담임선생님이 나름대로 챙겨주신다고 노력하셨지만 그건 딱 거기까지였다.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았고 그 시기의 학교는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청소년들은 뭉치면 갑자기 강해진다. 두 명, 세 명이 한 사람을 성격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 건 쉽다. 그 아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드러내면서 내가 다른 의견을 내거나 생각을 드러내면 성격 나쁜 아이로 몰고 갔다. 그때는 내가 정말 나쁜 건 줄 알았다. 다 컸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어린 나이여서 어찌할 줄 모르고 그저 머릿속만 복잡했다. 현실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고 마음을 표현하지도 못했다. 마치 미운 오리 새끼처럼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격을 고치고 생각을 바꿔야 할 문제아들은 그 아이들이다.


‘어릴 때 잘 모르니까 그렇지.’


이렇게 치부해버리기에는 피해자의 정신적 아픔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십 대에 잘 모르고 경험이 없어서 실수하는 서툰 것과 한 사람 바보 만들고 상처 주는 건 다른 거다. 그런데도 십 대기 때문에 어른들이 잘 이끌어줘야 한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미성숙한 나이라 잘 모르고 그럴 수도 있어서 사회에서 알려주고 좋은 방향을 끊임없이 제시해주어야 한다.


“다시 나이가 어린 십 대로 돌아가고 싶어?”


누군가 이렇게 물어보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만큼 치열했고 나름대로 버티려고 노력했던 인고의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 가끔 그 시절 고등학교에 재입학하는 꿈을 꾼다. 딱 한 마디로 비유하자면 남자들이 군대 다시 가는 꿈을 꾸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그 시기가 지나고 졸업했을 때 해방감을 느꼈다. 이후 가끔 조카한테 말한다. 학교가 전부는 아니라고. 버틸 때까지 버텨보고 왕따나 괴롭히므로 힘들면 다른 방법도 있으니까 연연하지 말라고 말이다.



* 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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