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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미수 김 Oct 09. 2022

생각이 다르다

인생이라는 것이

연이라는 것이

살아있는 동안 우연히 다시 만날수 있는 확률이라는 것이…


사과 섬에 학교 수업에서 처음 만난 그 친구.

술을 위해 안주를 고르는 그 친구.

하얀 피부를 가진 깡다구가 있는 그 친구.

드문드문 연락을 주고받던 그 친구.

나보다 먼저 결혼한 그 친구.

우연하게 같은 산부인과를 다니게 된 그 친구.

같은 공간에서 말이 없어도 서먹서먹하지 않은 그 친구.


그 친구는 아들을 출산했다고 시아버지로부터 외국 상표의 세단을 선물로 받았다고 행복 자랑을 했던 그 친구.

남편의 집안이 부유하다고 자랑삼아 받았던 것들에 이야기를 늘 하던 그 친구.  그러나 그 친구에게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남편의 외도가 이유였습니다. 그 친구가 후에 말해주길 “차라리 그전에 다 알았으면 “왜 그렇게 많은 것을 받았는지” 윗집 여자 아랫집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앞빌딩에 여자 옆빌딩에 남편이었던 것입니다.

그 친구는 더 이상 이해를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부유한 시댁으로 인해 변호사팀에서 준비된 양육권을 포기하고 안정된 위자료를 받고 합의 이혼에 동의를 하고 새로운 신분으로 그 친구가 살고 싶어 하던 외국으로 마지막 연락을 남기고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 더 이상 전혀 그 친구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딸아이를 데리러 여느 때 같이 걸어서 초등학교에 도착했습니다.  몇 명의 아는 엄마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아이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 한 남자 아니 한아빠가 파우치 하나를 손에 잡고 걸어옵니다.  큰 키에 눈에 띕니다.  엄마들 중에서 소식통이 빠른 목소리도 큰  캐리 엄마가  말하기 시작합니다.  어디에 누구 여자와 본인 아들 하나 데리고 재혼한 재력가 아빠라고 합니다.사업체도 몇 개가 있다고 이미 동네에서도 엄마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큰 키에 파우치! 그 재력가 아빠는 그 친구의 전남편이었습니다.  그냥 놀랬습니다.  황당했지만 그것뿐인 것 같았습니다. 세상이 넓다고 하지만 어떻게 이곳에서…  나의 딸아이가 다니는 같은 초등학교에 그 친구의 아들도 다니고 있던것이었습니다.


이 현실이 새롭기보다는 평범하지 않은 이 상황. 딸아이를 픽업하고 걸어서 집에 오는 길에 그 친구의 전 남편과 아들을 마주쳤습니다. 우리 집 타운 빌라 옆 빌라에 살고 있었습니다. 나의 딸아이와 그 친구의 아들이 아는 듯이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어쩔 수 없이 간단한 인사를 나 역시 나누었습니다.

그 친구의 전남편은

“딸과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옆 빌라에 사니깐 아침에 학교 통학할 때 아들과 같이 라이드를 할 수 있다고 말을 꺼냅니다.”

나는 속으로 진짜… 아니…  나는 그냥 태연하게 거절을 하고 딸과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도 그 친구의 전남편에 대한 소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의 시부모님이 그 친구의 아들을 같이 보살피며 사는 것 같다고 들었습니다. 그 시어머니는 손자를 위해서 보통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몇 명의 엄마들과 이전에 말다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도 재혼을 하기 전까지 만남을 가진 싱글엄마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현재 재혼한 여자를 만나고 있었다고 합니다. 만남을 가진 싱글엄마는 그것을 알게 되고…그 친구의 전남편이 재혼을 위해 헤어지자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위로하는 마음으로 작은 가게를마련해 줬다는 말들이 부동산 에이전트에 의해서 비밀리 전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싱글엄마는 그 충격으로 건강 상태가 나빠졌다고 하는 소문 또한 조용히 돌았던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된 그 싱글 엄마는 내가 아는 착한 하늘이 엄마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엄마도 같은 타운 빌라에 살고 아들 역시 같은 학교에 다녀서 하늘이 엄마가 먼저 말을건네 와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한동안 하늘이 엄마는 말을 어눌하게 하고  손을 잘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이일을 알기 전에는 그냥 아파서 생긴 합병증인 줄 알고 있었지만 지금에서야 그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지만 그 친구의 모든 것이 이미 사라진 후였습니다.  같은 엄마가 된 나로서 그 친구의 친구로서 생각합니다.  그 친구의 아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캘리포니아에서 6년 동안의 세월이 흐르고 사과 섬으로 다시 돌아와서 사는 도시의 삶으로 여전히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어느 날 오렌지 타운에서 같이 몬테소리 다녔던 아이의 엄마한테 문자가 왔습니다.  일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 엄마가 기사를 사진으로 찍어 문자로 보내줘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의 전남편과 관련된 기사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전 남편과 이름이 알려져 있는 여자 방송인과의 이야기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어디 까지가 끝일까…   그냥 말문이 막힐 뿐이었습니다.

인간으로 삶을 살면서 기본적으로 지켜야하는 도리에  포함된 인간의 본능과 이성•이것을 개인의 취향이라는 성향으로 선택해 행동하는 그 친구 전남편의 사생활에 흔적들…

역시 사람은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친구의 전 남편은?!

착한 사람이어서

정이 많아서

본능적인 개인의 성향이 강해서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서

본능적인 감정으로 그 모든 여자사람들을 대하고 싶었을까?!

이것이 그 친구의 인생에서 연결돼었던 지금은 연결되지 않은 연결로 나의 기억에 남은 그 친구 흔적의 유재로 남아있습니다.




처음으로 만난 한국 엄마 사람입니다.

100일이 지나고 집에서 계속 아기와 지내다가 오래간만에 집 근처로 혼자 천천히 나온 외출이었습니다.  한가한 네일숍에서 한국 엄마사람을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람이세요!

아기 엄마 이세요!

자연스러운 첫 만남 첫마디이었습니다.  더구나 대화하다가 알게된 두 아기의 나이가 같은 년에 태어났고 태어난 달이 4월 그리고 5월 한 달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왠지 모르는 더 가까운 공감대가 생기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낯을 아주 많이 가리는 성격에 말수도 적은 사람입니다.그런 것을 느꼈는지 라이 엄마가 먼저 가까이 다가와 주었습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고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는 남편과도 같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라이 엄마가 남편이 리복센터로 운동을 하러 가기에 같이 나가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라이 엄마와  나는 아기들을  데리고 유모차를 싣고 라이 아빠의 차를 타고 소호로 마실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유모차를 밀면서 오래간만에 걷는 소호 거리를 걷다가 찾은 야외 카페에 유모차를 정지하고 앉습니다.  나는 모유를 먹이기 위해서 작은 아기 천을 가슴과 어깨 위를 걸치고 라이 엄마는 우유병을 아기에게 물립니다. 그러면서 나누는 이런저런 이야기들…


라이 엄마와 나는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서로를 대해주고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성격이 비슷했습니다.  백그라운드를 물어보는 흔히 하는 기본적인 호구 조사에 대한 대화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인간적인  편한 대화이었습니다.

뜻밖에 서로 통하는 것은 아트 예술 그리고 봉사 활동에 대한 관심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기들이 성장해서 엄마의 손이 필요하지 않을 때 각자 본인의 하고자 하는 일들 활동을 다시 시작한다는 그런 생각 또한 비슷하게 통했던 것입니다.


라이 아빠와 나의 남편은 종종 만나기도 하고 라이 아빠의 친구들과 포카 게임도 같이 즐기곤 했었습니다.  라이 엄마와 나의 관계는 조용히 부드럽게 구름이 천천히 움직이듯 편하게 지내는 관계를 가졌습니다.

주말에는 라이 엄마의 저녁 식사 초대로 남편과 아기를 데리고 베이욘 집에 방문도 하고 포도를 좋아해서 와인에 대해서 잘아는 라이엄마와 함께 와인도 마시며 소소한 시간을 같이 보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이 라이 엄마와 아기들과 나뿐인 편한 일상적인 만남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라이 엄마는 한국에 방문하기로 계획이 있다고 돌아오는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연락을 전해 왔습니다. 나 역시도 캘리포니아로갑자기 거주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 그 후로부터 연락이 끓기게 된 시기가 되었습니다.


몇 년의 세월이 흘러서 어느 날에 라이 엄마를 인터넷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라이 엄마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기사거리의 내용과 사진들이 인터넷에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라이 엄마는 공인인 유부남의  mistress가 되어있었습니다.  전혀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이미 수많은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고 어떤 사정의 시작으로 어떤 사연의 끝으로 맺어진 관계인지 알 수는 없지만은….

라이 엄마에 대한 기사를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읽지를 못했습니다.

처음 엄마가 되어서 처음 만난 그 한국엄마 사람이란 단어로 자연스럽게 연관된 연이었습니다.

이해하기에는… 이 현실이 그 엄마 사람의 현재에 삶이 되어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만난 인플루언서 한국 엄마 사람입니다.

나는 인플루언서에 대해 관심도 없고 잘 몰랐습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입니다.  남편의 권유로 나와 인플루언서 엄마 사람 그리고 3명의 외국 작가들과 공동으로 캘리포니아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역시나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으로 나를 보조해주는 사람과 조용히 나의 작품을 정리하고 자리 선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플루언서 엄마 사람은 먼저 다가와 소개와 함께 한국인이고 그 보다 엄마라는 동지애를 통해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거침없는 성격에 청산유수로 말하기보다는 어떤 사람이더라도 사로잡을 수 있는 말의 재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작품의 자리선정이 마무리가 되어서 나를 보조해 주는 사람에게 작품 캡션(caption)을 준비하자고 말을 건넸습니다.

인플루언서 엄마 사람이 다가와 질문을 했습니다.

“작품 캡션이 뭐예요?”

나는 내가 잘못들은 줄 알고 실례하지만 다시 되물었습니다.

인플루언서 그 엄마 사람은

“캡션이요?”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대답을 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작품에 대한 소개 이름표 같은 것입니다. 각 작품 옆에 진열하고 그리고 한국과 미국 해외에서 작성 순서가 틀리고 그 외 조금씩 차이점들이 있습니다.


인플루언서 엄마 사람은 나에게 작품 캡션 하나를 빌려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나는 그녀에게 하나를 전해주었습니다.  인플루언서 엄마 사람은 그녀를 보조해 주는 사람 2명에게 샘플 같이 보여주면서 빨리 본인의 작품들의 캡션을 준비하라고 시켰습니다.

이렇게 전시회 준비를 마치고 다른 작가들과 인사를 하고 전시장을 나오고 있었습니다.  인플루언서 엄마 사람은 같이 전시회 하게 된 한국인으로 반갑다고 저녁 식사에 초대를 했습니다.  나는 너무 갑작스러워서 답을 바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인플루언서 엄마 사람은 시원스럽게 괜찮다고 하면서 나중에 연락을 부탁한다면서 명함을 전해 주었습니다.


3일 동안에 전시회를 잘 마치고 인플루언서 엄마 사람과 커피 한잔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시간을 따로 가졌습니다.  인플루언서 엄마 사람은 알려준 캡션에 대해 나에게 고맙다는 표현을 전했습니다. 인플루언서 엄마 사람과 나는 잠시나마 한 한시간 반 정도 동안 뜻밖에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모든 면이 180도 다른 나와  인플루언서 엄마 사람은 매년 한 번씩 서로의 생일에 안부의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인플루언서 엄마 사람은 나에게 권합니다.  세상 밖으로 나오라고… 나는 그냥 미소를 지을 뿐이었습니다.


인플루언서 엄마 사람은 팔로워가 1 밀리언이 넘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다하는 성격.

다 가진 여자라는 강한 소유욕.

망설임이 없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표현력.

이미 유명해지고 점점 더 유명함을 유지하고픈 갈망.

높은 숫자의 구독자들과 높은 주 수입원의 현실.

이 모든 것을 유지하기 위해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난 순간부터 눈을 감고 자는 저녁까지 영상 촬영을 위해 돌고 있는 카메라와 항시 그 순간들을 포착하는 카메라.  그녀와 함께 항시 같이 하는 스텝들.  이 모든 것을 너무나 즐기는 인플루언서 엄마 사람.


갑자기 전화 통화로 전해준 소식. 그 후에 소셜 미디어에 당당하게 밝힌 상황.  인플루언서 엄마 사람은 인생의 반쪽에 연을 끝마치게 되었습니다. 이혼이었습니다.  삶이란 것이 모든 게 완벽할 수가 없다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다가 보게되는 인플루언서 엄마 사람의 계속 업로드되는 사진과 새로운 소식들.

전혀 관심이 없는 소셜미디어. 처음으로 만난 인플루언서 엄마사람•한국사람 엄마라는 동지애로 작은 인포메이션을 알려준 계기로 연이 된 엄마 사람 그리고 엄마로서 다른 삶으로 살고 있지만 지구 반대쪽에서 부디  평탄하게 그녀가 간구하는 삶이 계속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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