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서부여행기① : 기네스 호수 Lough Tay

흰 모래 가운데 검은 물결, 한 잔의 기네스를 꼭 닮은 호수

by JJU

내 생일은 7월 22일, 알렉스 생일은 23일인지라 함께 생일을 기념해 아일랜드 국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나는 이 곳에 1년 반, 알렉스는 대충 3년 가까이 살았지만 우리 둘 다 제대로 아일랜드를 여행해 본 적이 없었고, 길어지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해외여행은 어차피 어려웠기 때문에 생일 기념 여행지를 정하는 것에는 서로 이견이 없었다.


나는 매일 출석해야 할 온라인 수업이 있었지만, 그간 열심히 출석해놓은 덕분에 며칠 정도는 빠져도 괜찮은 출석률을 미리 만들어놓았고, 알렉스에겐 그간 쓰지 못한 수많은 연차가 있어 맘편히 6박 7일의 일정을 뺄 수 있었다. 22일 저녁에 친구들과 소규모로 둘을 모두 축하하는 생일파티를 했고, 23일에 늦잠을 자고 집을 깨끗이 청소 후 늦은 오후 쯤 집을 나섰다. 특히 알렉스가 주방 청소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정말이지 여행 다녀와서 구더기를 보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백년은 훌쩍 넘은 오래된 나무 건물인데다가, 주방에 물이 새는 등 자잘한 문제들이 있어 작년에 한바탕한 경험이 있었기에 더욱 두려웠다...


대충 우리의 주 목적은 '링 오브 케리 Ring of Kerry'라 불리는 서부 해안가 드라이빙이었기에 차를 렌트했다. 굳이 케리 뿐만이 아니더라도 워낙 아일랜드는 대중교통이 세심하지를 못해서 이동을 많이 할 생각이라면 렌트가 거의 필수인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자주 꼽힌다는 이 곳을 꼭 가보고 싶었고, 나머지는 경로를 따라 Improvise 하기로 했다. 우선 더블린에서 케리까지 바로 이동하기는 꽤나 먼 길이었음으로 우리는 더블린에서 차로 한시간 정도 걸리는 위클로우 Wicklow를 첫 목적지로 삼았다.


출발하기 이틀 전, 에어비앤비로 적당한 가격대의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 우리의 숙박 예산은 1박 60유로 선. 물론 정말 첫 날 숙박지만 예약했다. 다음 날 어디로 향할지 우리도 몰랐기 때문이다. 마음 편하게 즐기려고 떠나는 여행인데 일정 짜느라 맘고생하고 싶지 않았고 어차피 차가 있어 이동이 자유로웠으니까!


첫 숙소는 위클로우 시티와 위클로우 국립공원 중간즈음에 위치한 아주아주 인적이 드문 곳의 한적하고 예쁜 집이었다. 집과 풍경을 보자마자 참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호스트를 만나자마자 여행의 시작부터 맘이 상했다. 약 50대로 보이는 아이리쉬 여성이었는데, 우리를 보고 어디서 왔냐 묻더니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내 손녀딸이 중국 혼혈인데 너랑 얘기하면 아주 좋아할 것 같아'라고 웃으며 말했다. 내 돈내고 묵는 숙소에서 '아시아인은 다 중국인' 취급을 당하다니... 나는 한 번 보고 말 사이라지만 그녀의 손녀딸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가까운 친척인 할머니에게도 그녀는 여전히 '아시안'으로 퉁쳐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아팠다. 내가 돈을 낸 손님이지만 대놓고 화를 낼 수도 없는 내 상황도 슬펐다. 여행의 시작부터 은근한 인종차별을 당하다니.. 인사를 마치고 방에 들어와 간단히 짐을 푸는데 알렉스도 그말에 화가 나 있었다. 나중에 다른 글에서 이 이야기는 더 다루도록 하고 이만하겠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니 이미 여섯시가 넘은 시각이었는데, 아일랜드의 7월은 해가 아주 길어서 한군데쯤 돌아보기엔 충분히 밝은 시간이었다. 국립공원은 시간을 넉넉히 두고 보고싶어 차를 타고 기네스 호수로 불리는 Lough Tay를 보러 갔다. 네비게이션에 Lough Tay 주차장을 입력하고 따라가고 있었는데, 가는 길 자체가 이미 커다란 산을 바로 옆에 두고 달리는 아름다운 길이었다. 첫날부터 감탄하며 운전을 하던 중, 예쁜 풍경에 더해 적절한 주차 공간이 마침 있어 잠시 내려 경치를 둘러보기로 했다.



전형적인 아일랜드 날씨에 산 위라는 지형까지 더해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춥기도 하고 거센 바람에 대충 둘러보고 차로 돌아가려는데 알렉스가 왠지 이 앞을 넘어가면 엄청 좋은 풍경이 있을 것 같다고 제안해서 알렉스를 따라 좀 더 들어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때를 시작으로 여행을 하며 알게된 사실은, 알렉스는 좋은 풍경을 발견하는 감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알렉스를 따라 한 고개를 넘어가니 진짜 멋진 호수가 산 아래 바로 자리하고 있었고, 표지판이 없어도 이게 바로 기네스 호수란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거품같은 흰 모래 사이에 자리한 검은 빛의 호수가 정말 따라놓은 기네스 맥주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흐리고 비가 흩뿌기리도 했던(아일랜드에서 아마 연중 300일 이상 볼 수 있을 것 같은) 날씨였지만 마침 딱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는 시간이라 금빛 햇살이 비치는 기네스 호수를 맘껏 감상할 수 있었다.


눈으로 보고 나니 더욱 더 왜 기네스 호수라고 불리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근데 재미있는 사실은, 검은 호수 주변 흰 모래가 자연적으로 생겨난 게 아니고 기네스 맥주 회사에서 일부러 가져다가 부었다는 사실이다. 정말 영리한 마케팅 전략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에 더해 유명한관광지까지 만들어 국내 산업에 기여까지 했으니 참 대단한 발상이다. 여담이지만 기네스 브랜드는 아일랜드 내에서 맥주 그 이상이다. 기념품 가게에 가면 온갖 기네스 굿즈를 엄청나게 만날 수 있고(아일랜드=기네스와 같은 느낌으로), 브랜드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와 모자 등등도 사람들이 그냥 잘 입고 다닌다. 처음엔 왠지 우리나라에서 '진로 소주'나 '삼성' 브랜드 로고 의류나 기념품을 파는 느낌이라 굉장히 의아하고 신기했다.


엄청난 바람 한가운데 서서 한참동안 기네스 호수를 감상하고 사진도 찍었다. 높은 산 위에서 전체가 다 내려다볼 수 있어서 굳이 저 밑 주차장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우리는 차로 돌아가 호수를 보며 챙겨온 간식을 먹었다. 하여간에 이것저것 물가가 엄청나게 높은 아일랜드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고, 일주일동안 비어있을 집에 음식을 굳이 남겨둘 이유도 없어 집에서 먹던 빵과 전날 생일파티에 남은 음식, 케이크를 다 챙겨왔다. 이미 식어버린 음식들을 차에서 휴지로 손을 닦아가며 먹었지만 참 즐거웠다.


숙소로 돌아와 다음날은 워터포드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일주일 동안의 여행에서 우리는 다음 행선지를 항상 전날 정했다. 여행을 떠나기전엔 아마 코크를 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찾아보니 코크로 가려면 또 운전을 많이 해야하고 심지어 숙소도 너무 비싼데 그에 비해 크게 돌아볼 곳은 많이 없는 것 같아 워터포드로 정했다. 거리도 적당하고 숙소 가격도 적당, 케리로 이동하기에 적합한 위치였기 때문이다.


다음날 묵을 워터포드 숙소를 예약하고 일찍 잠들었다. 전날 파티에 청소에 운전에 마음은 즐거웠지만 몸은 꽤나 피곤한 상태였다. 잠들려니 벌써 여행 끝날날이 아쉬워졌는데, 특히 내겐 더블린 생활 일년 반 만에 처음 더블린 주(카운티 더블린)을 벗어나본 경험이라 더 설레고 아쉽고 그랬다. 그래도 딱 좋은 시간에 우연히 아주 좋은 뷰 포인트를 만나 황금빛으로 빛나는 호수를 볼 수 있었던 운이 함께해준 것에 감사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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