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서부여행기② : 위클로우 국립공원, 글랜달록

by JJU

여행의 두번째 날, 일찍 잠자리에 든 만큼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으러 주방에 갔다. 사실 에어비앤비에서 위클로우 숙소를 고를 때, 비슷한 가격에 비슷한 조건의 집 두개를 두고 고민했는데 그 중 이 집을 선택한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 호스트 소개에 '홈 메이드 브레드'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 농담이 아니고 진짜 이 이유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 내용에 꽂힌건 내가 아니라 알렉스였다. 빵이 주식인 프랑스에서 온 그에겐 식사로 먹는 빵의 퀄리티가 정말로 중요했나보다. 사실 사진에 나와있는 빵이 아주 괜찮아 보였던게 사실이고, 실제로 맛도 괜찮았다.


식탁을 보니 이미 빵을 비롯한 먹을거리들이 예쁘게 차려져 있었다. 시리얼과 티백도 가지런하고 깨끗하게 각각 종류별로 보관된 상태여서 가정집이지만 위생걱정도 완전히 덜 수 있어서 좋았다. 실제로 6일의 여행동안 우리가 꼽은 최고의 아침식사가 이 날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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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리를 맞아주었던 호스트의 남편을 아침식사에서 처음보게 되었는데, 어제의 은근한 인종차별에 이어 그의 농담인지 비꼼인지 모를 말에 또 한 번 기분이 오묘해졌다. 일단 그 아저씨는 나에게는 관심도 없었고 알렉스를 향해 '프랑스에서 왔지?'라며 이것저것 말을 걸며 '우리 남프랑스에 별장 있는데 아주 좋은 동네지'하는 이야기를 했다. 놀랍게도 똑같은 이야기를 어제 저녁에 호스트에게 들었지만 그의 기분을 배려해 처음 듣는 것 마냥 듣고있었다.


그리고 이어 더블린에 사냐, 더블린에서 무슨 일 하냐 어느 직장에 다니냐 등등을 물었다. 반가운 질문은 아니었지만 알렉스가 어쨌거나 대답은 했는데(나는 지금 딱히 말할만한 직업도 없을 뿐더러 애초에 나에겐 관심도 없으셨으니) 듣자마자 '역시 사람들은 높은 연봉땜에 아일랜드에 오는거지, 이 아름다운 날씨 때문이 아니라'고 받아쳤다. 그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대체 뭔가 싶었다... 아일랜드 사람들도 워낙 날씨에 대한 자조적인 농담을 즐겨하기 때문에 그러려니 싶다가도 대체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것도 게스트에게 왜 저런말을 하나 싶었다. 하나 더 항상 의아한점은, 한국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슨 일 해요? 직장 어디다녀요?'물으면 굉장힌 실례라는 인식이 강한데, 여기선 거의 안 물어보는 사람이 드문 것 같다. 인사하고 두어마디 더 하면 그 다음 질문은 무슨 일 해요? 가 되는게 보통이다. 기분이 이상했지만 대충 웃으며 식사를 마무리하고 짐을 챙겨 나왔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여행! 차를 타고 글렌달록으로 향했다. 글랜달록은 국립공원의 한자락, 두 개의 호수가 있는 지역을 말한다. 이 입구에는 무려 6세기에 지어졌다는 수도원의 터가 있고 두 개의 호수 중 더 큰 규모인 어퍼 레이크 Upper lake 까지 도보 약 삼십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차로 찾아간다면 방문객 센터 Visiter Centre을 찾아가면 편하다. 이 주차공간에 반드시 주차를 할 필요는 없어보이지만(주변에 따로 마련된 주차 공간들도 있었고 무료였다. 근데 방문객 센터 주차장은 유료) 공중 화장실이 있어 근처에 주차해두면 여러모로 용이하다. 국립공원과 바로 이어져 있기도 하고! 대중에게 오픈된 화장실이 드문 유럽에서는, 화장실은 보이는 때마다 가주는 것이 현명하다.


국립공원 입구로 들어서서 조금 걷자마자 오른편에 있는 수도원 터를 만날 수 있었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 바로 수도원! 그 시절에 종탑으로 쓰였다던 저 원형탑이 이 곳의 랜드마크격이다. 사실 수도원 터라고 해도 많은 것이 파괴되어 '건축물'의 흔적을 느낄만한 것은 저 원형탑이 유일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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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묘들이었다. 다리와 가까운 입구쪽에는 생각보다 최근 날짜가 적힌 묘들, 상태나 모양새가 비교적 준수한 묘들이 있었다. 그리고 탑 뒤편으로 가니 더 오래된 묘들과 때로는 아예 묘는 사라져 버리고 낡고 빛바란 묘비만이 모여있는 곳도 있었다. 묘비에 쓰인 글들을 읽으며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을지를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이 수도원이 사라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그 후에 여기에 묻힌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지도 궁금해졌다. 누군가의 아내나 남편이라고 적힌 묘비도 있었으니 모두가 수도자였던 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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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나 건축물을 감상할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이것이 만들어졌을 / 사용되었을 시기의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내가 절대 갈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시간부터 내가 이 자리에 찾아온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들이 꼭 나를 그 시절로 잠시 데려다 주는 것 같다. 특히 웅장한 자연물을 볼때는 그 감정이 더 하다. 내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의 긴 시간을 이자리에 버틴 저 자연은 얼마나 많은 것을 봤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는 그 시간의 양이 경이롭고 동시에 무섭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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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터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마치 이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포탈같은 조형물이었다. 아마 이전에 실내였던 듯 방 구조로 되어있는데, 그 입구에서 가장 정면으로 보이는 것이 이 조형물이다. 단순하다면 단순하게 가운데 공간을 두고 겉을 돌로 쌓아올린 벽인데, 그런 프레임 하나가 생긴 것만으로 저 바깥의 공간이 뭔가 여기와는 다른 차원의 공간인 것 처럼 여겨졌다. 다른 사람들도 역시나 같은 생각을 하는지, 여기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우리 말고도 많이 보았다.


다시 다리를 건너와서 국립공원에 있는 호수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글랜달록이란 이름 자체가 '두 개의 호수'라는 뜻이라는데 이름 처럼 글랜달록엔 두 개의 호수가 있다. 이름도 간단, 어퍼 레이크 Upper Lake, 로어 레이크 lower Lake. 수도원에서 나와 조금 걷다보면 바로 로어 레이크를 만날 수 있고, 한 이십분 - 이십 오분 정도 더 걸으면 어퍼 레이크를 만날 수 있다. 국립공원인만큼 여러 등산 코스가 있는데 우리는 가장 쉬운 코스를 선택했다. 길에서 자주 표지판을 볼 수 있는데 방향마다 다른 색으로 표시되어있는데 난이도를 알려주는 표지라고 한다.


호수를 보는 것도 재밌지만, 위에서 얘기한 것과 같이 나는 뭔가 오래된 모습을 간직한 자연을 보면 멈춰서서 사진도 찍고 이것 저것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걸 좋아해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애초에 빨리 호수에 도달하는건 전혀 우리의 목적이 아니었으니 맘껏 언제든 멈춰서서 이런 나무들을 감상했다. 그저 산책 코스 옆에 보이는 나무들이었는데 아주 오래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모양새여서 마음이 또 뭉클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2020년에 산책로를 걷는 내 옆에 이 오래된 숲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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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길을 옆에 두고 조금 걷다보니 오른쪽에 호수가 보였다. 그게 바로 로어 레이크! 굳이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이 산책로 바로 옆에 호수가 나타났다. 내려가보니 정말 예쁜 호수였다. 호수 자체가 아주 큰 것은 아니었지만 호수를 둘러싼 산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슬픈것은 역시나 마스크를 쓴 사람은 우리 뿐이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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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몇 아저씨들이 바지를 걷고 물에 들어가고 있었는데, 매번 물이 있는 곳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아일랜드 사람들은 물에 들어가는 걸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가끔 이해가 정말 안되는 곳에서조차 물에 들어가서 노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우리동네에 있는 그랜드 카날에서 물놀이를 하는 소년들도 보았고, 심지어 작년 리피강에서 사람들이 떼로 수영하는 것을 보고 진짜 진짜 놀랐다... 물이 별로 깨끗하지 않은데 저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 수영을 하고 있다니...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라 내 친구는 그걸 보고 처음에 날치같은 생선떼인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정도로 많았다...


물에 발을 담그기엔, 바람이 차기도 하고 물을 닦을 수건도 없어서 우리는 납작한 돌을 골라 물수제비를 떴다. 난 물수제비에 소질이 없어 내 인생 최고기록이 단 2회다(이것도 순전히 운). 알렉스는 재미있는지 계속 열심히 돌을 찾으며 던지고 또 던졌다.


어퍼 레이크를 향해 걷기 시작했는데, 길이 단순하고 표지판이 자주 있어서 전혀 헷갈일 일이 없었다. 길은 한국의 흔한 등산로 초입을 걷는 느낌으로 포장도 잘 되어있고 큰 경사도 없이 완만해서 힘들지 않았고, 어린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도 많이 보였다. 어퍼 레이크 근처에 다다랐을때 엄청 큰 나무를 발견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아이들이 엄청 올라가서 장난치고 싶어할 두꺼운 가지가 있는 커다란 나무. 우리는 이 나무를 '코끼리 나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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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도착한 어퍼 레이크! 어퍼레이크는 로어레이크랑 흡사하지만 규모가 좀 더 크다. 역시나 사방이 아름다운 산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호수다. 사실 위클로우는 수도인 더블린에서 차로 한시간 정도 떨어진 지역이니 근교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거리인데, 이 정도만 나와도 이렇게 웅장한 자연을 볼 수 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한국에서도 자연 풍경이 빼어난 일부 경기지역과 강원도 지역이 서울과 그리 멀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개발이 많이 된 국가라 이렇게 규모가 크고 오래된 자연을 만나기는 그리 쉽지 않으니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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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호수가 아름다운 글랜달록이지만 엄청난 기대를 품고 온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수도원도 장엄하거나 화려한 느낌은 전혀 없이 정말 '터'에 가깝고 규모도 그리 크지 않은데다가 두 개의 호수 또한 규모가 크다고 할 수는 없고 아일랜드에 이보다 훨씬 웅장하고 빼어난 경관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더블린에 거주하고 있거나, 방문 후 비교적 근교에서 자연 속에서 가볍게 산책을 하고 싶을때 찾으면 좋을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에겐 거리도 가까웠고 케리를 가는 길에 마침 있었기에 아주 만족했던 여행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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