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들을 놓치고 있다는 마음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내게 남은 것은 아픈 몸뿐.

by JJU

아일랜드에서 지낸 지 이제 만으로 약 2년이 되었지만, 걸쳐온 해는 세 해가 되었다. 2019년, 2020년 그리고 2021년. 2019년 말, 비자를 연장했던 가장 큰 이유는 어학과 알바 외의도 다양한 경험과 여행을 하고싶은 마음이었다. 그런 것들을 하기에는 1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으니까. 그런데 2020년이 시작되자 마자 한국이 코로나로 난리가 났고 곧 그 불길은 유럽을 포함한 전세계에 번졌다.


처음엔 금방 끝날 줄만 알았고 이렇게 전 세계에 빈틈없이 영향을 미치리란 것을 상상도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가족들과 친구들은 '그래, 거기에 조금 더 있다가 여기 잔잔해지면 들어와'라고 했지만, 그 말이 '얼른 들어오는 게 낫지 않겠니'로 바뀌기까지는 아주 금방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난 아직까지 여기에 있지만.


락다운과 규제 완화가 오고가며 벌써 세번째 락다운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내게는 엄청난 양의 잉여시간이 주어졌고 그 어마어마한 양의 자유시간은, 바깥의 상황과는 별개로 내게 한 편에서 기쁨을 주었다. 언제나 달려왔고 투쟁이었으며, 이곳에서도 여행과 친목보다는 하루하루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이 항상 우선이었던 나의 삶에 처음으로 주어지는 비교적 완전한 휴식이었다. 나는 내가 이렇게 강제로 생활을 제한당하지 않으면 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배우고 싶었던 모든 것을 집에서 할 수 있는 한은 하나씩 다 도전해보고 책도 많이 읽으리라 다짐했다. 그 중에 가장 내 맘을 설레게 했던 것은 드디어 글 쓸 시간을 아주 많이 얻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내가 겪었고, 현재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또 시를 쓰리라 마음 먹었다. 하지만 결국 알게 된 것은 글은 시간이 있다고 저절로 써지는 것이 아니며,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시간은 마음을 갉아먹을 뿐 영양가 있는 무엇도 토해낼 수 없다는 것 뿐이었다. 넘쳐나는 시간에 꿈꿔왔던 어떤 일도 하지 않고 바닥으로 침잠하는 내 자신이 싫어졌다. 이해할 수 없이 피곤하고 가라앉았다. 그런 나날들 속에서 영원히 살 것만 같은 느낌, 무한으로 이어지는 듯한 시간속을 살다가 이따금씩 시간이 유한한 자원이란 지당한 사실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곤 했다.


그러다 지난 여름이 지나갈 무렵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병원도 다녔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살 수 있는 진통제는 모조리 먹어보았지만 몸은 더 아파졌고 결국은 타자도 칠 수 없고, 연필도 쥘 수 없는, 정말로 물리적으로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고통 속에 살기를 몇 달, 해를 넘기기 전 12월에 수많은 검사들 끝에 드디어 우리는 원인을 찾아냈다. 참 웃긴게, 사실 내가 아팠다는 것을 알고나니 '내가 그래서 무엇도 할 수 없었구나'라는 스스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들기에 앞서 '앞으로 시간을 계속 낭비해야 하는구나'하는 아주 가혹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프게 되면 삶의 다양성은 극도로 줄어들어 딱 두가지의 경우만 있을 때가 많다. 정상 생활이 가능한 때와 그렇지 않은 때. 글을 쓰고, 영화를 보고, 산책을 하고, 일을 하는 등의 다양한 구분에서 벗어나 그저 아플때와 아프지 않을때만이 있을 뿐이다. 물론 아프지 않는 동안만이라도 다양한 것들을 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오늘 오후에 내가 아플지 아프지 않을지도 알기 어렵다. 그런 계획된 생산성이 가능은 하겠다만 그렇게 진짜 할 수 있는 사람을 난 존경한다 말하고 싶다.


이제 나의 일과의 온 초점은 '몸을 아프지 않게 하는 것'에 맞춰져있다. 나머지는, 그 무엇이라도 그 다음의 일이다. 아프다는 것, 그리고 이제 그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흘러가는 시간에 아무런 생산도 하지 않는 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세상에서 나라는 사람의 이름이 사라지는 것만 같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닫아둔 창문 덮개를 열며 멀리 내다본다. 이렇게라도 내다 보는 행위가 오늘의 모습을 잡아두는 일종의 기록행위인 것 같아서. 오늘 아침은 그래도 날씨가 꽤 좋은 편이다. 오후의 날씨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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