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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Lee Aug 01. 2016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마음 여행 이야기 07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아직까지 잠들지 못했나요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아직 나는 잘 모르겠어요

잊지 못할 사랑을 하고
또 잊지 못할 이별을 하고
쉽지 않은 마음을 알지만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 인가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걸
담아둬서 무엇할까요
잊어야 할 일은 잊고서
새로운 시간으로 떠날까요


   브로콜리 너마저의 신곡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의 가사 중 일부 내용이다. 워낙 평소에 좋아하는 덕원 씨의 목소리지만, 오늘은 유독 그의 목소리가 나에게 '이제 그만 잊어도 되지 않을까?'하고 조심스럽게 손 내밀어주는 것만 같다.


  어떤 기억은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가두고 삶 자체를 좀먹는다. 철저하게 현재를 누리지 못하게 만든다. 반면 어떤 기억은 온갖 역경 속에서도 삶을 살아가게 하는 하는 힘이 된다. 이렇게 기억은 사람을 살리면서 동시에 죽이기도 한다.


  예전에 1년 내내 하루가 멀다 하고 거의 3시간 단위로 직원들을 괴롭히는 상사와 일을 한 적이 있다. 직원을 괴롭히는 데 원초적인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가히 내가 만나 본 상사 중 베스트 3위에 드는 인물이었다. 나름 전투력 좋기로 소문난 나였지만 그 상사와 일하다 쓰러져 응급실까지 가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그 상사로 인해 레벨업 된 나의 한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억력이다. 그 상사만의 직원 괴롭히기 천기누설 비법은 하루에 한 번씩 5명 정도를 돌아가면서 괴롭히는 것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지속되는 괴롭힘은 우리로 하여금 매일 같이 모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마일리지 쌓듯 상사의 창조적인 괴롭힘을 이야기했고, 어쩌면 그렇게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똑똑하게 기억을 하는지 서로 감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 중 한 사람이 물었다.


'근데 신기하지 않아요? 우리 어쩜 이렇게 그 많은 사건을 자세히 기억할까요?'


 그때, 무심코 내 입을 뚫고 나온 한 마디.


'잊을만한 틈을 안 주자나요.'


  당시 나는 상사의 괴롭힘을 피해 3주 정도 병가를 내고 도망쳤었다. 돌아왔을 때 상사는 여전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그의 만행을 일자별도 모자라 시간별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6개월 요약해서 적은 기록은 30여 장이 되었다. 6개월 뒤 그는 발령이 났다. 상상하지 못한 파격인사였다. 그때 내가 낸 기록이 인사발령에 자료가 된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를 포함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쉴 틈 없이 밀고 들어오는 상처를 온전히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상황에  처해 본 경험을 갖고 있다. 만나보면 어쩜 그렇게 본인이 상처받았던 것에 대해서 또렷이 기억하는지 스스로 감탄하는 걸 흔하게 볼 수 있다. 쉴 틈 없는 잔소리로 아이가 자라는 것을 간섭하고 방해하는 어머니, 꾸준히 술을 마시며 가정의 집기를 부수는 아버지, 성실한 도박으로 100원짜리 하나 자녀에게 허락하지 않는 어머니, 1등도 모자라 2등 될까 전전긍긍하는 어머니 등 다양한 모습으로 참 성실하다.


  보통 그러한 일들은 저항할 힘이 없는 순진무구하던 어린 시절에 일어난다는 점에서 마음이 아프다. 부모가 보여주는 세상이 전부라 믿었던 어린 시절을 지나 그렇게 어른이 된다. 이처럼 어린 시절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아 그 기억으로 평생을 산다는 것. 혹은 감당할 수 없어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공포로 마음속 깊은 곳에 꼭꼭 숨겨놓은 채 사는 것. 둘 모두 기억이라는 감옥에 갇혀 본인의 자유를 박탈당해 고통스럽다는 점에서 어느 것이 더 나은 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나: 언제가 되면 이 모든 기억을 잊을 수 있을까요.

스승님: 잊을 수 있을까요?

나: 잊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더 이상 그 기억이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지 않기를 바라요.


  어려서 몸은 늙어도 마음은 안 늙는 줄 알았는데, 마음도 늙더라는 노희경 작가의 글처럼 요즘 나는 그 말을 실감한다. 너무 생생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 입에 담기도 어려웠던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는 데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기억이 감퇴되는 걸 느낄 때면 나이 들어감을 허락하는 신의 섭리에 절로 감사함을 느낀다.


  너무 많이 기억하기 때문에 혹은 너무 많이 기억할 수 없어서(억압) 마음의 병이 생긴다. 나는 전자 쪽이다. 그렇기에 기억이 희미해지는 요즘이 눈물 나게 감사하다. 이제야 비로소 그 기억으로부터 조금씩 해방되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나 자신의 성장을 바라본다.


  동시에 나는 과거 아픈 기억을 잊고 싶다 하면서도 막상 잊힐 때에 오는 두려운 마음도 함께 느끼고 있었다. 그 기억이 내게 주는 자기연민,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는 오만에 가까운 자부심 등 그 아픈 기억들이 주는 유익을 놓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기억이 날 가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그 속에 갇혔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요즘도 그러한 두려움으로 날 가두려는 내 마음 깊은 곳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럴 때면 이렇게 조용히 되뇌어 본다.


이제 그만 날 좀 놔주라. 그만 헤어지자, 우리.

  내가 어찌해 볼 도리조차 없었던 과거에서 잊어야 할 일은 마땅히 잊음으로써 어제 보다 오늘 한 걸음 더 자유로워지길 소망한다. 부디, 당신 또한 그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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