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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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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Lee Sep 03. 2016

'이나'라는 조사의 불편함

지구별 생존기


'상담이나 하는 건 어때?'


8년 다니던 직장을 관둔 지 8개월이 지난 시점,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가족 저녁 식사에서 아버지가 내게 던진 한마디였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계속되는 딸의 실직상태가 안타까워 보내는 아버지만의 위로의 표현이었다.



'아니, 딸.. 나는 너가 정말 상담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데 그걸 썩히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서..'


'알아요. 아버지. 하지만 아시잖아요. 상담이 얼마나 어려운 지...'




2년 전이었다.


먹고 사는 일에 상당히 지쳐있었다.


거의 매일 '그만 쉬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고,


용기가 없었는지, 그 동안 해 놓은 일들이 아쉬웠는지.. 쉬이 그만 두지도 못했다.


그 때마다 내 머리 속을 스치던 생각.


'아, 결혼이나 하고 싶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작스런 단짝 친구의 결혼이 있었고, 그 사건은 내게 시기심을 넘어 자괴감으로 경험되었다.


결혼식은 쉬워도 결혼생활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다.


근 8년을 결혼에 실패한 피해자들을 만나는 일을 해 왔기에 뜻밖의 수확(?)이었다.


그런 내 입에서 '결혼이나~'라는 말은 결혼생활은 직장생활보다 쉬운 어떤 것이라는 의식의 표현이었다.




결혼, 임신, 출산 3종 세트를 겪어내느라 부단히도 힘들었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 친구 말에 의하면 직장생활은 아무것도 아니었단다.


이렇게까지 아이를 낳고 키워내는 것이 버거운 줄 알았다면 자신은 출산하지 않았을거란다.


그 때 알았다.


내가 결혼에 대해 '이나'라는 조사로 깎아내리는 것이 얼마나 못난 표현인지..


경험의 무게는 객관화 될 수 없다.


각자의 사정과 맥락 속에서 해석되어져야 할 여지가 늘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함부로 타인의 삶에 대해 'ㅇㅇ이나'라는 조사를 붙여 그 무게를 덜어내려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설령, 그것이 내게 위로가 되어 준다할지라도 말이다.






부디, 나의 내일이 오늘보다 더 '이나'라는 조사를 쓰지 않는 자유함으로 나아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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