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생존기
믹스커피 한 잔이 오늘처럼 그리운 적이 또 있었을까.
하루 종일 내 머리 속 한 곳을 자리잡은 그 녀석에 대한 간절함이 결국 저녁 시간 슈퍼로 이끈다.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작년 12월 다음 직장에서 다시 열어보자 했던 상자를 연다.
애정했던 컵을 꺼낸다.
믹스커피 한 봉지 뜯어 물과 함께 컵에 붓는다.
휘이 젓는 스푼을 보며, 문득.
직장에 있을 때 거들떠도 보지 않던 믹스커피가 그리운 걸 보니,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여겼던 그 시간 속 내가 떠올랐다.
그제야 알아챈다.
그립다. 그들이, 그곳이, 그 속 내가.
과거는 미화된다는 말이 있다.
왜 그럴까.
난 이것을 고통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인간 특유의 생존본능이라 생각한다.
그래야만 살 수 있으니까.
꼭 미화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또 하나의 인간만이 가진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리라.
깊어가는 가을, 그리움이란 녀석을 집어드는 내 마음에게 믹스커피 한잔 처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