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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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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Lee Nov 28. 2016

그들이 사는 세상

사과의 지구별 생존기

한 여름, 집 앞.

호떡 가게가 개업했다.


때 이른 겨울 시즌 한정메뉴의 등장은 한산한 가게 앞을 연출하기에 충분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사장님의 민망함을 나는 함께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가을지나 겨울이 찾아왔다.

호떡의 계절답게 가게 앞은 인산인해까지는 아니어도 늘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자연스럽게 줄을 서고 있는 나를 보며, 역시나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싶었다.


어떤 호떡을 먹을까 설렘에 메뉴판을 찾던 눈으로 익숙지 않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주문 안내 문구


'저희는 청각장애인입니다. 주문하실 때 메뉴를 보시고 천천히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일 순간 내 시선을 빼앗았던 문구는 카운터 앞 점원분의 미소로 순식간 장면이 바뀌었다.


정신을 차린 나는 손가락으로 원하는 메뉴를 짚으며, 개수를 손으로 표시했다.


호떡을 기다리며 재료 준비를 하고 있는 다른 점원 분들을 보았다.


수화로 분주히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들이 사는 세상'


그 어떤 소리도 허락되지 않는 곳.

그 어떤 질투와 힐난의 소리도, 달콤한 소리 조차.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마음 한편이 어떤 장면에 사로잡혀, 그 순간이 던지는 수많은 의미들에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그들을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이 그러하리라.


너무 많은 말을 듣고,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은 말을 입 밖에 뱉어내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나로서는 그들이 사는 세상이 부러웠었다.


막상 그들을 가까이 대하고 보니,

소음에 가까운 다양한 소리에 짓눌릴 때면, 차라리 들리는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는 진공상태인 그들의 세상이 부럽다던 나를 포함한 누군가의 고백이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주문한 호떡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수많은 의미들을 한정된 몸짓에 담아 내느라 매일매일 도전하며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삶.


그 삶 속에 이미 주어진 고통만큼의 행복이 찾아들길..


그리하여,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그들의 길을 걸어가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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