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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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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Lee Dec 31. 2016

당신에게 배우다.

지구별 생존기


백영옥, 빨강머리앤이 하는 말.

가까운 회사 동료에게 받은 선물이 궁금하여 잠깐 목록이라도 먼저 보자 싶어 열었던 책의 첫 페이지는 그렇게 나를 향해 융단폭격을 가했다.


7년 동안 일이 전부였던 내 인생에 쉼표가 등장했고, 퇴장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 뜻하지 않았던 휴식기간은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 글처럼 사랑했던 애인은 떠났고, 기대했던 곳의 입사는 계속해서 당당하게 거절당했다.


물론 저 글의 작가와 나의 유일한 차이점은 사직서와 해고 통보서였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생계에 대한 부담은 압박으로 바뀌었다.


계속되는 지원서 탈락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할 수 없었다는 말이 더 솔직한 표현일 수 있겠다.


드디어 취직을 했다. 임시직이었다.

이전 직장의 급여에 절반을 받았고 근무조건은 더욱 좋지 못했다.

클라이언트의 가정을 찾아다니는 게 주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는 관용차량이 없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차가 없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렵게 마음을 다잡고 일을 시작했다.

취약계층 중에서도 상상 불가인만큼 어려운 분들을 만나는 일은 오랜만이었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최근 한 가정을 찾아갔다.

평소처럼 내가 이곳에 온 이유, 면담의 목적과 민감한 사안(도움주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하는 정보들:경 제적인 어려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하는 등의 설명을 짧지 않게 했다.

물론 이 부분은 늘 내 의도와 다르게 길어진다.


어찌 되었건 그렇게 면담은 시작되었다.

쌍둥이 모두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엄마였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장애였고, 그녀는 미혼모였다.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3시까지 계속되는 재활치료에 매일 동참한다고 했다.

보통 다른 어머니들 같은 경우 아이들이 치료받는 동안 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더욱이 재활치료 등 생활고로 인한 채무는 그녀의 삶의 무게가 전해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면담은 무리 없이 잘 진행되었고, 나는 울고 있었다.


'전문가는 클라이언트 앞에서 울지 않습니다.'


늘 느끼는 거지만 개나 줘버렸으면 하는 가르침이다. 아픔과 슬픔 앞에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인간이 되길 포기하라는 편이 더 쉬울 것 같다.


아이러니하지만 동시에 나는 기쁨도 함께 느끼고 있었다.


어떤 이유였을까?


그것은 포기한다 해서 그 누구도 쉽게 비난할 수 없는 그녀의 삶의 무게가 전달되어서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나는 그녀의 삶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면담 마무리에 내 마음 일부를 전했다.


"오늘 많이 배우고 갑니다. 쉽지 않은 얘기 처음 만난 저에게 들려 주셔서 감사하고, 삶에 대한 어머니의 태도, 존경한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진심이었다.

나의 말에 그녀 또한 울고 있었다.

나는 그렁그렁한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 동안 침묵이라는 강 한가운데에서 미처 전하지 못한 서로의 마음을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


늘 그랬다.

나는 포기하고 싶어도, 상담을 받으러 오는 아이들이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본인 삶의 의지를 쉬이 포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살시도자 조차 말이다.


돌아보면, 내 성장의 굽이 굽이마다 그들이 있었고, 그들의 삶 속에서 '포기하지 않음'을 배웠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내 마음 한편에 느껴지는 따뜻함이 이렇게 말해 주었다.


'그래, 내가 이 맛에 이 일을 포기 못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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