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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Lee Feb 07. 2017

거짓과 싸우기 02

아홉 번째 이야기

나는 병신이고 실패자입니다.


누군가 자신에게 친절히 대해 주거나, 칭찬을 하면 화가 난다던 내담자의 말이다.


자신을 놀리는 것 같다나.


그런 이유로 누구에게도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스스로 고립되었다.


외로웠고, 죽고 싶었다.


팔을 그었다. 목을 매었다.


매번 실패했다.


세상에서 실패를 거듭할수록 좋은 몇 안 되는 일인 자살시도가 그(내담자)에게는 혐오감으로 경험되었다.


난 죽지도 못하는 병신이야.

산에 올랐다. 오늘만큼은 반드시 이루어내겠다. 굳게 마음먹는다.


소주 2병을 내리 마신다. 몽롱하니 세상 어디서도 없던 용기가 솟구친다.


반짝하고 빛나는 것이 햇살을 보니 더 아름답게 보인다.


그것을 들어 본인 배에 그대로 내리꽂는다.


아프지 않다. 역시 술이었다.


.

.

.

.

.



응급실이다.


또 실패다.


아버지 얼굴이 아른거리는 걸 보니 이전보다 스케일이 큰 실패다.


젠장. 이번에도 실패다. 역시 나는 죽지도 못하는 병신이다.




열 번째 만남 속 그(내담자)의 이야기.

잔인함으로는 그 어떤 흥행 영화를 이길 것 같았다.


늘 이럴 때면 그럴듯한 멋진 반응과 말이 정답으로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순간이었다.


겨우 마음을 다 잡고서야,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냥요.."


"저에게 말하고 나니 좀 어때요?"


.............


"선생님은 어떠세요? 제 이런 얘기 들어보시니...?"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어떤 말로 둘러대야 당황한 기색이 들키지 않을까?

나름 전문가임을 증명하고 싶던 내 마음과 달리 입은 솔직함을 토해내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저 가슴이 너무 아파요..."


곤란한 질문에는 질문으로 반응하라던 선배들의 조언은 조언으로 남는 순간이었다.


나의 답을 들은 그(내담자)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10회기 상담이 끝났다.


그(내담자)가 가고 난 뒤, 몇 시간 며칠이 지나도록 떠나지 않는 감정이 있었다.


무서움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난 그(내담자)는 지난번 이야기에 대한 나의 반응을 여전히 궁금해했다.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네."


"무서웠어요."


..........


"한편으로는 제가 느낀 그 무서움이 00 씨가 갖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아니라고 즉답을 했다.


뭐 그럴 수도 있다며 그의 의견을 받아주었다.


그 이후 3번의 상담이 더 진행되던 어느 날이었다.


"사실 저 그때 정말 무서웠어요."


본인의 근황을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요즘 아이들 표현으로 갑툭튀였다.


"네?"


"지난번 선생님이 말씀하셨잖아요.."


"무슨...?"


이럴 때 지레짐작 아는 척은 금물이다.

질문으로 반응하며, 내담자가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가 칼로 저 찔렀다는 얘기 들었을 때... 무서우셨다고..."


"아, 네.."


"정말 무서웠어요."


"그러셨군요. 제 기억에 그때 아니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네, 저도 모르게 아니라고 했어요."


"그럼 오늘 이 얘기를 다시 하시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그냥 말하고 싶었어요."


역시나, 나를 포함한 많은 내담자들의 무기다.


그냥.


"솔직하게 무섭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우셨나 봐요."


"어릴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제가 솔직하게 얘기하면 아버지는 들어주지 않으셨어요. 늘 쉽게 생각하셨어요."



친절한 내담자다.

언제냐고 묻지도 않았는데, 시기까지 언급하며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보충해 나갔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연기 공부가 하고 싶었어요. 어렵게 아버지께 말씀드렸죠. 하지만 아버지는 단호하셨어요. 그딴 생각 말고 공부하라고요.."



.........



"생각해 보면, 단 한 번도 제 얘기를 들어주신 적이 없었어요. 늘 자기 뜻대로 끌고 가셨죠. 모든 상황을. 그 때 저는 죽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어요."



..............





"그 날 이후 아버지가 연기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어요."


"아버지께서 00씨가 원하던 바를 들어주셨군요. 늦었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어요. 분명, 제가 원하는 연기 공부였는데... 싫증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그만두었죠."


.........




"아버지가 옳았어요..."



......




"역시나.. 저는 병신이었어요."


별다른 반응 없이 듣고 있던 나에게 그는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제 생각이 궁금하신 가봐요.?"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따지는 듯한 말투였다.


"제가 어떻게 생각할 것 같으세요?"


"전 그냥 선생님 생각이 궁금해요."


"저에게 듣고 싶은 말이 혹시 있으신가요?"


"이제 지긋지긋해요. 선생님의 그 말장난!"


"말장난을 하려던 건 아니에요. 전 이전에도 몇 번씩이나 00 씨가 본인을 병신 같다 말할 때 분명 아니라고 얘기했었어요. 하지만 지금도 계속 묻고 있는 걸 보니, 00 씨가 원하는 대답이 따로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묻는 거예요."


"없어요. 그런거."


"순수하게 제 의견을 묻는 다면 분명하게 다시 말씀드리죠. 미안하지만, 00 씨의 생각에 1%도 동의하지 않아요. 이게 제 진심이에요"


"거짓말이에요. 내가 자살에 실패했을 때, 아버지를 포함해 반 친구들 모두 그랬죠. 병신이라고요. 죽지 왜 살아났냐고요!! 선생님도 똑같아요! 말 같지도 않은 장난이나 하고! 매번!!!"


당시 그에게 진실이라고 생각되는 거짓이 나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듯했다.

내담자 마음속 거짓이 나를 향해 도전장을 내미는 몇 안 되는 기회였다.

정확하게 그의 거짓과 나는 충돌하고 있었다.

충돌 없이 어찌 성장 이야기가 되겠는가.



"제가 똑같이 생각할까 봐 겁나는 건 아니고요?"


"아니요! 겁나지 않아요!"


"좋아요. 그렇다면 제 생각을 말씀드릴게요. 00 씨가 해보고 싶었던 연기 공부를 했다 포기한 것에 대해 병신 같냐고 묻는다면, 전 그게 왜 병신 짓인지 도무지 동의가 안돼요."


...........


"적어도, 00 씨는 연기 공부가 00 씨와 맞지 않다는 건 확인했으니까요. 어떤 것을 했을 때 반드시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으로만 평가해야 한다면 그건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니까요! 절 그렇게 몇 번이고 가혹한 치료사로 만들어야 마음이 편하다면 그건 00 씨 마음이에요. 하지만 난 그런 가혹한 사람이 아닐뿐더러,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어요!"


이 순간만큼은 단호하고 싶었다.


길어지는 그의 침묵 앞 내 가혹함이 나를 향해 잔인한 평가를 했다.


'아 실패했어. 공감에도 실패했고, 난 또 가르쳤어. 젠장.'


역전이(countertransference)였다.


침묵하던 그는 흐느꼈다.

흐느낌은 통곡이 되어 내 마음속으로 메아리치고 있었다.


어리둥절했다.

사람의 감정은 논리와 별개다.

그 어떤 예측도 빗나간다.


상담시간은 끝났다.


나는 그에게 끝을 알릴 수 없었다.


그의 평생 언제 그렇게 목놓아 울어보았겠는가.


나라고 그와 같은 시간이 없었겠는가.


내가 경험했던 인간상에 스승님(내 치료사)을 끼워 맞추지 않고는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던 나날들...

지칠 줄 모르고 시비를 걸어왔던 내 마음속 파괴적인 에너지들...

그것으로 가득하던 나의 거짓 앞에 삶의 에너지로 꿋꿋이 견뎌 내 주었던 내 스승님...


물론, 내 스승님은 몇 마디 하지 않고도 그 일을 해내었지만...


다만, 속단은 이르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그에게 물어야겠다.


그때 왜 그리 목놓아 울었느냐고...












이번 회 글은 팩션(실화+픽션)입니다. 저는 내담자의 비밀보장에 누구보다 민감합니다. 오해 없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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