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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Lee Feb 20. 2017

거짓과 싸우기 03

열 번째 이야기

묻고 싶었다.


일 주일 만에 다시 만난 그에게 지난주 왜 그리 목 놓아 울었느냐고...


하지만, 되도록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상담시간은 치료사인 내가 아닌 내담자(상담받는 사람)의 것이다.


그(내담자)의 시간과 그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도둑질 하지 말자며 마음을 다잡는다.


10분이 넘도록 지도에 없는 침묵이라는 다리가 그와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것만 같았다.


그를 혼자 버려둔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고 싶었다.


"말이 없으시네요."


짱구를 굴려 겨우 무리 되지 않는 말을 찾아냈다.


아 XX 쪽팔려요..



욕설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반응이다.

본인의 감정을 표현은 해야겠고,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툭하고 올라오는 언어.


왜인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는 내담자의 욕설을 들을 때면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전율을 느낀다.


내담자가 스스로 나와 거리를 좁혀 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랄까?



"이번 주 진짜 오기 싫었어요. 쪽팔려서요.."


........


"선생님은 좋으시겠어요? 쪽 팔린 거 없으셔서..."


"제가 그럴 거라고 생각 되시나봐요."



"네."



"실은 저도 좀 생각이 많았어요."


"네?!"


"지난 주에 제가 솔직하게 얘기 한다고 한 게, 00씨를 몰아세운 것처럼 느껴진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



"그리고 지난 주 그렇게 울고 가셨는데... 걱정도 되었구요...."


"아 쪽팔려요, 사람들 앞에서 운 적 한번도 없는데..."


"우는 게 창피한 건가요?"


"당연히 쪽팔리죠. 선생님은 울어 본 적 있으세요?"


"어떨 것 같으세요?"


"없으실 것 같아요."


"하하.. 저도 사람이예요."


"전 꿈에서도 울어요."


"아, 그래요?"


"네. 울다가 깬 적 몇 번 있어요."


다행이다 싶었다.

그의 무의식이 그를 구원하고자 그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였다.


더 자세히 얘기 해 줄 수 있냐는 나의 제안에 그의 입은 굳게 다물어져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그 후로 그는 내게 나아오길 잠시 멈추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자신을 적극적으로 마주하는 일을 일시정지 한 것이다. 상담은 본래 내담자 본인이 자신을 보는 작업이니 말이다.



원래 마음이란 녀석이 그렇다.


한 동안의 밀물이 지나면 금새 썰물을 만들어 내는 바다와 같다.


밀물 일 때 내담자는 본인 안의 감정을 최선을 다해 쏟아낸다. 어떤 힘이 본인 안에서 그런 용기를 만들어 내는 지 미처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그러고 나면, 이제 썰물의 시간이 온다.

밀물에 휩쓸려 토해냈던 감정의 잔여물이 썰물을 통해 드러나고,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그 자리를 메꾼다.


물론, 그 수치심과 부끄러움은 진실이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며 성장하고자 하는 내담자의 마음을 사로 잡는 거짓이다.


반대 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온전히 왔던 길을 다시 겪어내야만 한다던 헬렌켈러의 말 처럼, 한 동안 그는 수치심이라는 거짓과 싸워내야 한다.



그렇기에 적지 않은 치료사들은 상담 초반(1,2회기)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토해내는 내담자들을 걱정한다.


감당하지 못할 수치심에 괴로워하며 다음 회기 상담을 오지 못하는 불상사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런 내담자였다.

나는 상담을 공부했고, 이러한 일들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쉽지 않았다.


이러한 감정을 경험해 봤기에, 그들에게 이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수치심을 동반한 여러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안내한다.


그러고 나면, 다음 회기에 오는 내담자들의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지기에...



어쩌면 그는 지금 그 썰물의 시간 속 죽을 힘을 다해 홀로 외로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 일지도 모른다.


그런 그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치료책은 '기다림'이다.



이제 나는 예고 없이 또 한번 밀려올 밀물의 시간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가 용기 내어 다가올 때, 진실함으로 그를 대하면 될 일이다.



경보 하다 보면 가장 힘든 게 뭔 지 알아? 뛰고 싶은 거. 그걸 참아내는 거 그게 가장 어려워.

- 영화, 걷기 왕 중에서.







거짓과 싸우기 04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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