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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Lee Mar 03. 2017

말, 그 너머.

열 한번째 이야기

Which country are you from?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직원이 말을 걸어온다.


한국에서 왔다 대답하니 직원이 몇 마디를 더 한다.


대충 여행이 어떻냐느니, 우리 갤러리 어때? 등등의 이야기다.


영어로 말하자니 머리는 바빠지고, 좀처럼 다물어진 입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만날 때였다.


상담사인 내 나름의 정성 어린 관심과 질문에 아이들은 답한다.


'그냥요'


기대로 가득했던 내 따뜻한 기다림의 눈빛은 이내 식어버린다.


그럴 때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힘 빠짐과 무기력은

아이들 내면 안에 있는 공허함과 나를 연결시켜준다.


내면의 상처로 인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상황 속으로 본인들을 던져 넣으며 만들어 낸 그들의 세계를 탐험하는 일은 결단코 쉽지가 않다.


그들이 초대한 그들 세계를 함께 탐험하며,

나는 그들이 사는 세상의 일정한 규칙과 패턴을 배워나간다.


보통 그들의 세상 속 특징은 다음과 같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참을 고민하다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말하기를 포기한다.

한참을 고민하다 엉뚱한 말이 튀어나온다.


상황과 맞지 않는 표현 등이 대표적이다.


도움을 준 이에게 '고맙다'라고 말해야 하지만 여러가지 마음의 어려움으로 '너 잘났다.'며 비아냥 거린다.


본인과 만나주는 상담사가 너무 좋아 '선생님이 참 좋아요'라는 말 대신, '선생님과 자고 싶어요.'라는 성희롱의 가까운 말을 한다.






'선생님과 자고 싶어요' 아이가 있었다.


적잖이 놀랐다.


조심스레 물었다.


'그게 무슨 의미니?'


'(웃음) 말 그대로죠.'


'어떤 이유로 그런 생각이 드는지 알 수 있을까?'


한참을 망설이던 아이가 어렵게 말을 이었다.


'선생님은 절 다 이해해 주시잖아요.'


몇 번의 말을 더 주고받은 뒤 우리는 알게 되었다.


온전히 이해받는 경험을 도와주는 나란 존재가 너무 좋아 일주일에 단 한 번인 50분 상담시간 이외에도 소유하고 싶다던 바람의 표현이었다.


'선생님이랑 자고 싶어요.'가 '날 이해해주는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오래오래 같이 있고 싶어요.'로 번역되는 데 30분이 걸렸다.






영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부딪히며 내 영어의 짧음에 적잖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생존해야겠기에 구글 번역기 어플의 도움을 받았다.


급할 때 나의 입이 아닌 핸드폰 화면 속 번역기가 얼마나 감사하던지..


영어를 못해 느끼는 내 답답함과 불안 속 어찌나 안정감을 주던지..


번역기의 도움을 받고 있자니,

문득 예전에 만났던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생각났다.


상담사라는 번역기가 없이는 세상과 대화가 어려웠던 아이들.


세상 속 그 누구도 그 아이들의 말 너머를 보려 하지 않았던 시선 속에서,


말 하기를 포기하고, 이내 자기만의 세상으로 더 움츠려 들었던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또 나 자신에게 묻고 싶어졌다.




나는 너에게 또 나 자신에게 얼마나 편리한, 정확한 번역기였나.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말이 마음을 담지 못할 때,


혹은, 어떤 말로 표현해 내야 할지 모를 때,


우리는 말한다.


그냥.


어쩌면 이제는 누군가의 그냥이 그저 아무런 의미 없음이 아닌,


그가 내게 용기 내어 다가오려던 마음을 이내 포기해 버린 표현은 아닌지 다시 한번 되물어 줄 일이다.


부디, 당신의 내일은 더 많은 말들로 당신의 마음을 담아낼 수 있길...


나의 신께 멀리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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