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이야기
내 인생이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데!! 너네만 없었으면 네 엄마랑 같이 살지 않아도 될 일이었어!
이 밥버러지 새끼들아!!
이리저리 널브러져 깨진 그릇들은
산산이 부서져 버린 가족의 마음 같았다.
이런 엉망진창 개진창의 시발점은 늘 아빠라는 이름을 가진 저 개자식이었다.
십구 년 동안 우리는 저 자식의 분풀이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아빠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값을 하라고.
참 비싼 값 지불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엄마는 우리를 지켜주지 못했다.
짐승에게 우리를 남겨둔 채 오직 자기 살 길을 찾아 도망치듯 떠났다.
누운 것인지, 앉은 것인 지 분간이 어려운 자세로 삐딱하게 앉아, 한국에만 있다는 온갖 발들을 입 밖으로 쏟아내고 있던 아이.
그 아이의 가정사는 드라마 속,
작가가 흔히 시청자들에게 악역을 설득하기 위한 장치로서 사용하는 불우한 가정환경 자체였다.
10여 분 째, 아이의 불신과 마주하고 있자니,
나는 내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
나를 향해 던지는 아이의 불쾌감 속에 나는 분노했고, 나아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으로 이어졌다. 말 그대로 나는 무너지고 있었다.
"빨리 끝내라고요.. 아 XX..."
끝을 냈다.
몇 번의 의미 없는 설득 이후,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 주었다.
아이가 돌아간 뒤, 한 동안 멍했다.
정신을 차려 평소 친한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한참을 묵묵히 들어주시던 선생님은 어렵게 얘기하셨다.
"그런데.. 선생님.. 그 아이는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세상 누구를 믿을 수 있겠어요.. 당연한 거예요. 선생님 탓이 아니에요..."
핑.. 하고 눈물이 고였다.
그렇다.
당연한 것이었다.
가장 좋은 치료사인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
그 아이가 내가 무엇이라고 만난 지 10분 만에 내게 마음을 열 것인가.
과거, 나 또한 슈퍼바이저(상담 선생님)를 믿지 못해 얼마나 많은 시간 의심하는 데 보냈었던가.
나아가 의심을 빌미로 그를 얼마나 외롭게 내버려두었던가.
이처럼,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한다는 건, 결단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한 마디로 고행과 고통에 가깝다.
때로 그들의 아픔이 무기가 되어 나를 해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대부분 그들이 해칠 때가 치료의 결정적 기회라는 점이다. 그 기회를 잘 활용하느냐가 훌륭한 치료사인지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던지는 상처의 무기를 나의 슈퍼바이저는 잘 알아차렸고, 큰 마음으로 안아주었다.
늘 이 단순한 가르침이 마음으로 깨달아지는 데에상당한 시간과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아쉽다.
하지만, 나는 완전하지 않고 완전해질 수 없기에 다만 애써 볼 뿐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오늘보다 조금 더 그들의 무기를 크게 안아주는 내가 되어 있으리라.
마지막으로, 상처 입어 힘들던 순간 위로가 되어 주었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중 재열의 대사를 끝으로 글을 마치고 싶다.
차별대우하지 않을 테니
특별대우 바라지마.
뚜렛장애가 있어 이해를 바란다는 수광에게 재열이 한 말이다. 어찌나 통쾌하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