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이 많은지 궁금한 게 많은지, 가끔 남들이 하지 않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이런 생각.
‘미슐랭 가이드의 비밀 평가단은 모든 음식점의 요리를 다 먹어보고 미슐랭 스타를 선정하는 걸까?’
여행 가이드북을 볼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하곤 한다.
‘여행지의 맛집과 카페를 소개하기 위해 그 여행지의 얼마나 많은 식당과 카페를 방문했을까?’
가이드북 하나를 만들려면 긴 시간 치밀하게 어마무시한 공을 들여야 할 텐데, 정말 재수 없는 생각이다.
하지만 여러 개의 가이드북이 소개하는 맛집과 카페가 상당히 겹치는 경우, 그리고 어느 가이드북에도 없는 정말 괜찮은 식당과 카페를 발견했을 때는 물음표가 더 커진다(그러면서도 여행을 갈 때는 가이드북을 교과서처럼 하나 가지고 떠나는 걸 보면 가이드북의 가이드가 나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치앙마이 가이드북들은 치앙마이의 중심지를 크게 올드시티, 님만해민, 싼티탐, 삥강 주변으로 구분한다. 치앙마이의 지도를 보면 딱 그렇다. 그런데 어느 가이드북도 ‘싼티탐’ 챕터는 없다. 님만해민 챕터에 슬쩍 끼워 넣는 식이다. 추천하는 식당이나 카페도 비슷하다.
싼티탐에 잘 머물고 있는 사람으로서 왠지 억울하지만 이해는 한다. 싼티탐은 치앙마이 서민들의 거주지 같지, 여행지라는 이름을 얻기엔 큰 매력이 없는 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치앙마이 서민들의 거주지 같은’ 점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이 분명히 있을 터. 그중 1인은 나.
타닌시장 가는 길에 개안을 하듯 눈이 확 떠지는 카페가 있다. 지나가며 ‘여긴 뭐지?’ 발걸음을 멈추게 되고, 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와, 감탄이 터지게 하는 카페. 정확히 말하면 카페가 아니라 정원이다. 거대한 나무가 울창하고 사원과 작은 폭포까지 갖춘 정원은 왼쪽의 농아학교와 오른쪽의 카페가 공유하는 공간이다. 카페 이름은 ‘Cafe de Sot’. 맛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커피에 조금도 불만이 없을 만큼, 정원이 주는 느긋한 평화가 값지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몸속의 독소가 빠져나가는 느낌.
2022년 11월에 출간된 치앙마이 가이드북보다 여행자들이 발빠르다. 누군가 치앙마이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린 걸까? 손님들 중 반은 한국인인 것 같다. 한번 와보면 말해주고 싶을 거다.
"싼티탐에 진짜 괜찮은 카페가 있어."
작은 인공폭포의 시원한 물줄기 소리를 들으며 시집을 꺼내 읽었다. 이런 데선 책 정도 봐주는 조그만 사치를 부려보고 싶어진다. 마음에 드는 시구에 밑줄을 그었다.
남의 조금이 내 컵 바닥에
남의 조금이 내 베개 아래에
남의 조금이 내 방바닥에
(……)
나의 조금이나마 컵 바닥에
나의 조금이나마 베개 아래에
나의 조금이나마 이 방에 남아 있는 줄 알았다.
- 임솔아의 시 〈끝없이〉 중
내가 시인의 마음을 얼마나 읽어냈는지 모르겠으나,
한국에서의 일들이 내 컵받침에, 내 머리맡에, 내 가방과 옷가지에, 그리고 저 하늘에 남아,
나의 일부는 한국에 그대로 있는 것만 같다.
* ‘Cafe de Sot’처럼 가이드북에는 소개되지 않은, 아니 가볼 만한 곳으로 소개한 장소 안에 있으나 그만 생략되어버린 올드시티의 카페(혹은 정원)를 함께 적어보려 했는데, 너무 길어져서 다음에!(쓰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