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에겐 90점짜리 숙소 뷰도이 맨션

by 나나꽃

올드시티는 느낌이 다르다. 뭔가 무게감과 품위와 진한 농도가 느껴진다고 할까. 크고 작은 사원이 많은 게 한 몫 할 것이다. 어제 알게 된 공동작업공간 ‘Punspace Tha Phae Gate’가 마지막 한 달은 올드시티에서 있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2019년 5주 동안 이곳에서 일했다는 어느 이용자의 리뷰가 그 욕구를 부추긴다. ‘전 세계 내가 가본 최고의 공동작업 공간 중 하나입니다. 머리를 숙이고 중단 없이 작업하고 싶다면 이곳이 당신을 위한 곳입니다.’ 당장 가고 싶잖아. 작심삼일에다 게을러터져 치앙마이에서 해야 할 작업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올드시티에선 매일 정사각형 해자를 산책할 수도 있고(해자를 따라 걷는 건 정말 환상적이다) 매력적인 장소들도 많으니까. 2월에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로.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있다. 숙소와 음식이 좀 비싸다는 것, 그리고 올드시티는 왠지 태국인들의 땅이 아니라 여행자들의 땅 같다는 것.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를 꿈꾸거나 실행하는 것일까. 나의 경우 ‘현실을 떠나보는 잠시의 엑소더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깝깝한’ 코리아에서 잠시 탈출해 자발적 고독 속에 머물러보는 것. 하늘길 약 6시간의 거리에서 별 불편 없이 일도 하고(빵빵한 인터넷 환경) 버라이어티한 타이 푸드 먹으면서. 그리고 내키면 빠이나 먼쨈이나 치앙라이 같은 시골에 며칠 다녀오기도 하면서.

헥. 달력을 보니 치앙마이에 온 지 벌써 18일째네?

<나 지금 치앙마이에 있어>의 어느 글에 이런 댓글이 달렸었다.

‘숙소도 소개해주세요.’

‘기회가 된다면’인가... 뭐 그런 답을 했던 것 같다. 약속은 지키기. 더 미루지 말고 나의 치앙마이 보금자리 뷰도이 맨션Viewdoi Mansion 홍보를 해야겠다. 사실 뷰도이는 홍보도 광고도 필요 없다. 지난해 12월 말에 이미 ‘fully booked until March’라는 안내 글이 붙었을 만큼 조용히 인기 있는 숙소니까. 나도 치앙마이에 오기 석 달 전에 예약했다.


뷰도이 맨션은 인터넷 검색을 하다 알게 되었다. 운 좋게! 수영장도 없고 헬스장도 없고 혹할 만한 내부 인테리어와는 거리가 멀지만 딱 내 스타일이다. 놀랍도록 착한 월세에 꼭 필요한 것만 다 갖춘 실용주의와 합리주의의 결정체라고 할까. 건물주인 아케와 닮은 것 같다. 뷰도이는 장기 체류자들 사이에 ‘가성비 갑’으로 꽤 알려져 있다. 오래됐지만 관리가 잘 되어 있고, 1층 현관문에 보안 장치도 있고, 주택가에 있으면서도 한 블록만 나가면 온갖 상점과 슈퍼마켓, 길거리 간식 노점이 줄지어 있어 생활 조건이 나쁘지 않다.


그럼 먼저 오픈 하우스! 세 컷에 담았다.


뷰도이1.jpg

방이 넓고 적당히 깨끗하다. 큰 침대와 책상, 티테이블, 화장대, 내가 가져온 옷들이 넉넉한 간격으로 걸리는 옷장, 냉장고. 뭐가 더 필요해? 베란다도 좁지 않아 밖에 티테이블 의자를 내다놓고 그 앞에 플라스틱 바구니를 엎어놓고 꽃병을 올렸다(타닌시장에서 800원 주고 산 꽃이 2주 넘게 집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시들기 시작한 꽃을 반 솎아냈는데도 보기 좋다).


이메일로 예약할 때 아케에게 하늘이 보이는 방으로 부탁한다고 했다.

“나는 치앙마이의 하늘을 사랑해.”

게스트의 이런저런 부탁을 최대한 수용하는 아케는 그 날짜에 그런 방이 나올지 체크해 선택할 수 있는 방들을 바로 알려주었다. 방 사진과 함께 평면도까지 첨부해 빵 터졌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이 방으로 결정. 주변 건물들 위로 하늘이 넓게 펼쳐져 있다. 집에 있을 때 잠깐씩 나와 앉아서 하늘멍 하고 있으면 정말 개운해진다.

주방시설은 없지만 베란다의 작은 싱크대에 콘센트까지 있으니 집에서 간단한 음식은 해먹을 수 있다. 필요한 조리기구들은 마련해야겠지?


가끔 베란다에 있다 보면 골목 건너편 작은 호텔 옥상이 줌인되기도 한다. 기타로 올드팝을 연주하는 노부부도 있고(이분들은 동이 틀 무렵 거기서 요가도 하신다), 체표 면적을 최대한 노출시켜 일광욕을 하는 적극적 건강인들도 있다. 큼직한 선베드와 나무 몇 그루, 화장실까지 갖춘 옥상이 부럽다(지금 이웃집 홍보를 하고 있나?). 뷰도이에서 가장 아쉬운 건 옥상이다. 저녁노을 보러 딱 한 번 올라갔다가 1분도 안 돼 내려왔다.

뷰도이의 외관은 내부만큼이나 심플하다. 건물 주위로 초록 잔디가 깔려 쾌적해 보인다. 사진엔 도로가 한가해 보이지만 오토바이들이 심심찮게 지나간다. 소음이 지속적으로 들려오지만 베란다 쪽 유리문을 닫으면 잠드는 덴 지장 없다(치앙마이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듣고 싶지 않다면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항동 같은 곳에서 자연과 함께 지내는 것밖엔...). 뷰도이 뒤편 주차장엔 게스트들이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가 줄지어 있고, 코인 세탁기와 코인 정수기가 있다. 있을 건 다 있다니까.


뷰도이와주변.jpg


뷰도이는 조용한 주택가와 번잡한 상가 거리를 양쪽으로 거느리고 있다. 새소리와 오토바이 소리가 매일 배틀을 하는 것 같다. 주택가 쪽으로 가까운 곳에 그 유명한 아카아마 카페가 있고, 뷰도이 바로 앞엔 젊은이들의 아지트가 될 만한 커피 맛 짱, 커페라떼 아트 짱인 독특한 카페 BULOV도 있다.


뷰도이와주변가게들.jpg


뷰도이와 가까운 골목골목 거리거리엔 시장보다 나은 채소과일가게도 있고, 속이 좋지 않을 때 가볼 만한 죽집도 있고, 집에서 밥을 해먹을 때 식탁을 채워줄 반찬가게도 있다. 두세 블록 더 가면 평점 높은 비건 식당도 있고, 여행자 손님이 희귀한 맛좋은 람(태국 북부 이싼 음식) 식당도 있다. 싼티탐 메인 도로엔 슈퍼마켓 로터스와 도매 식품점, 태국의 다이소 같은 저가 생활용품점도 있고, 출출한 저녁 부담 없는 야식이 될 갖가지 길거리음식 노점이 즐비하다.

뷰도이 바로 옆에는 '오잉'이라는 이름을 가진 판화가가 자신의 판화 그림을 넣어 만든 엽서, 티셔츠 등을 파는 숍이 있다. 세계적인 인물들의 모습을 판화로 작업하는데, 숍의 벽 전면을 채운 살바도르 달리, 프리다 칼로, 고흐 그림이 예사롭지 않다.


이렇게 뷰도이 홍보를 했으나 깔끔한 거리와 예쁜 상점, 핫 플레이스, 인도 차도가 구분된 곳을 찾는다면 님만해민이나 올드시티에서 적당한 숙소를 찾는 게 낫다. 노점이 늘어선 싼티탐 로드는 청결에 민감한 사람들의 미간을 좁아들게 할 것이 분명하고, 줄지어 다니는 오토바이와 자동차 들은 '보행자 우선'은 개뿔인 것 같다(가끔은 양보라는 걸 아는 분들도 있지만). 주택가는 깨끗하고 차분하고 소박한 분위기가 있지만 유동인구가 많은 거리는 이래저래 좀 정신없는, 그 중간에 위치한 뷰도이 맨션. 장점은 누리고 단점은 관대히 눈감아준다면 치앙마이에서 참 가벼운 월세로 나쁘지 않은 시설에서 ‘살아보기’ 할 만한 곳으로 뷰도이 맨션만 한 곳이 있을까.


하지만 ‘강추’하지는 않는다. 숙소도 각자의 취향이 있을 테니. 실제로 구글맵의 리뷰를 보면 대체로 평이 좋지만 여러 가지로 불만을 표한 이용자들도 있다. 그냥, ‘한 달 살기’ 이상 해볼 예정이라면 기꺼이 고려해볼 만한 숙소. 그 정도?

다른 곳에서 살아본다면 님만해민보다는 올드시티 쪽으로 기운다. 님만해민은 나에게 ‘사는 곳’으로 별 매력이 없다. 님만해민은 ‘살기’가 아니라 ‘재밌게 놀고 맛있게 먹고 쇼핑하기’에 더 맞는 곳 같은데, 그쪽으로 잘 가지 않으면서 함부로 깎아내릴 순 없지.


올드시티는 느낌이 다르다. 뭔가 무게감과 품위와 진한 농도가 느껴진다고 할까. 크고 작은 사원이 많은 게 한 몫 할 것이다. 어제 알게 된 공동작업공간 ‘Punspace Tha Phae Gate’가 마지막 한 달은 올드시티에서 있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2019년 5주 동안 이곳에서 일했다는 어느 이용자의 리뷰가 그 욕구를 부추긴다. ‘전 세계 내가 가본 최고의 공동작업 공간 중 하나입니다. 머리를 숙이고 중단 없이 작업하고 싶다면 이곳이 당신을 위한 곳입니다.’ 당장 가고 싶잖아. 작심삼일에다 게을러터져 치앙마이에서 해야 할 작업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올드시티에선 매일 정사각형 해자를 산책할 수도 있고(해자를 따라 걷는 건 정말 환상적이다) 매력적인 장소들도 많으니까. 2월에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로.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있다. 숙소와 음식이 좀 비싸다는 것, 그리고 올드시티는 왠지 태국인들의 땅이 아니라 여행자들의 땅 같다는 것.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를 꿈꾸거나 실행하는 것일까. 나의 경우 ‘현실을 떠나보는 잠시의 엑소더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깝깝한’ 코리아에서 잠시 탈출해 자발적 고독 속에 머물러보는 것. 하늘길 약 6시간의 거리에서 별 불편 없이 일도 하고(빵빵한 인터넷 환경) 버라이어티한 타이 푸드 먹으면서. 그리고 내키면 빠이나 먼쨈이나 치앙라이 같은 시골에 며칠 다녀오기도 하면서.

헥. 달력을 보니 치앙마이에 온 지 벌써 18일째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가이드북에는 없는, 싼티탐의 정원이 있는 카페